[농정춘추] 생태문명, 그린뉴딜 그리고 합리의 정치

  • 입력 2020.07.19 18:00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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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부터 29년 동안 격월간으로 <녹색평론>을 발행해온 김종철 선생님이 지난달 25일 우리 곁을 떠났다. 김종철 선생님의 녹색사상을 지지하고 <녹색평론>을 아껴온 많은 독자들은 그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비통해했다. 발행인 김종철로서는 마지막이 돼버린 <녹색평론> 통권 173호를 우편으로 받고서는 한동안 개봉할 수가 없었다.

김종철 선생님의 마지막이 돼버린 글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은 코로나19로 인해 거의 칩거생활을 하면서 적은 단상에 관한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전 지구적인 전염병이 발생하니 우리 사회가 소홀했던 직업군, 예를 들어 농어민,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 불을 끄는 사람, 노약자와 환자를 돌보는 사람 등이 얼마나 우리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에 반해 대기업 간부, 관료, 판사, 검사, 국회의원, 금융업자, 부동산 투기꾼, 대학교수, 언론인 등 소위 잘나간다는 직업군들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지에 관한 얘기였다.

또 하나 ‘대동세상과 밥, 무위당의 생명사상’의 글에서는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는 유토피아사상인 대동(大同)사상이 실상 함께 밥을 먹은 것을 말하는데 선생님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인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식사를 하고 얘기를 하는 모임들이 단절이 돼버린 현실에 우울해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임 중에 하나가 ‘김밥모임’, 즉 ‘김종철 선생님과 함께 밥 먹는 모임’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밥장사는 그냥 장사가 아니고, 사람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직업’이니 곧 ‘하나님의 직업’이라고 말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사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암튼 김종철 선생님은 이 글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사실 선생님의 가장 큰 화두는 ‘생태문명’이었다. 선생님은 <녹색평론>이 지향하는 바와 같이 오랜 세월에 거쳐 별 생각 없이 우리 삶의 관행이 돼버린 ‘서구식 근대’에 따른 산업경제와 그것에 의존한 문명을 근본적인 각도에 의심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했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생태계와 공동체는 파괴됐고 이러한 형태가 지속된다면 여하한 문명도 지속가능하지 않기에 ‘지혜롭게만 실행한다면 거의 영구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생존·생활 방식이 농사’라는 점을 주창했다. 그리고 농사의 근본이 되는 토양을 잘 보존하고 순환적 삶의 질서 회복을 강조하며 이러한 활동의 주체가 되는 농민을 존중하고 그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본소득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내용들은 선생님께서 지난해 10년 동안 <녹색평론>을 통해 발언한 내용을 담아 엮은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 나와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사회에서는 ‘생태문명’이라는 단어는 잘 쓰지 않고 익숙하지도 않다. ‘생태’라는 용어의 범용성, 여기에 ‘문명’이라는 용어가 더해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문명의 발달과정이 농업문명, 산업문명, 생태문명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생태문명이 환경과 기후위기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인류건설 정도로 해석될 수 있지만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 ‘생태문명’ 건설을 국가 어젠다로 설정해 문명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시진핑 집권 이후 ‘생태문명 건설’을 국가의 핵심의제로 설정해 전 국가적으로 문명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생태문명의 목표를 국가 헌법에도 명시하고 국가적인 정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한 엇갈린 평가도 존재하지만 최근 중국의 환경이 점점 개선되고 이촌향도의 중국농촌이 역전되는 결과도 있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최근 우리정부도 그린뉴딜을 포함한 한국판 뉴딜정책을 내놓았다. 환경과 기후위기 그리고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으로 이해된다. 역대급 위기 국면에서 ‘대전환’을 시도한다는 이번 한국판 뉴딜정책이 얼마나 근본적인 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정부가 내놓은 이번 정책이 우리사회의 ‘대전환’을 이루기에는 사상적, 철학적 논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농촌에 태양광을 깔고 거기에서 나오는 전기를 팔아 농촌기본소득 재원을 만들고 부족한 농산물은 스마트팜 등을 통해 보충한다는 한 에너지 전문가의 농업부문 그린뉴딜 설명을 듣고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농업기술의 발전이 농촌공동체를 불필요하게 만든다면 그게 진정한 발전인지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김종철 선생님은 오늘날 ‘환경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라는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합리적 의사결정의 정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생태적 삶의 전환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땅끝 해남에서는 농민의사와 반하여 간척지 땅에 대규모 태양광단지가 들어선다니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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