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 이 땅에서 함께 살고, 농사지을 권리가 있다”

‘살아갈 권리’ 사수하는 제주 제2공항 예정지 주민들

  • 입력 2020.07.12 18:00
  • 수정 2020.07.12 20:58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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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3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일출봉농협에서 열린 ‘농민학교’에서 윤병선 건국대 교수가 농민 50여명을 상대로 ‘유엔농민권리선언’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지난 3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일출봉농협에서 열린 ‘농민학교’에서 윤병선 건국대 교수가 농민 50여명을 상대로 ‘유엔농민권리선언’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제주 제2공항의 진행여부는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에 제주신공항(제2공항)을 세우겠다는 사업을 5년째 추진하고 있는 국토교통부가 지난 2일 ‘쟁점해소 공개토론회’에서 내놓은 논리다. 원희룡 도지사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공항이 착공될 경우 수많은 녹지는 물론이고 농민들의 생존권이 걸린 농지가 강제 수용될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산지역 주민들이 이룩한 결사와 그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파악해보면, 이러한 주장은 그들의 인권을 명백하게 침해하고 있다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제주도는 육지 농촌과 마찬가지로 ‘리’가 기초행정구역이지만, 육지의 그것과는 규모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인구만 놓고 보면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2,000명을 넘어, 일개 리의 규모가 전남·경북 등 소멸 위기 지역의 면보다 큰 경우도 있다. 때문에 주민들의 행정편의나 주민자치활동을 위해 육지에서는 보기 어려운 리사무소가 운영된다. 행정기관의 역할도 일부 담당하고 있지만, 리를 대표하는 이장은 육지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다. 공항의 영향을 받는 마을마다 제2공항 반대 활동을 펼치는 이들이 리를 대표하고 있다는 점은 이 지역 민심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라 할 수 있다.

김형주 난산리 이장이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인사들을 상대로 마을의 여론과 투쟁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형주 난산리 이장이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인사들을 상대로 마을의 여론과 투쟁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돌담과 난향이 가득한 마을’, 난산리는 월동무 농사를 주력으로 하는 농촌마을이다. 리사무소에는 ‘제2공항 관련 공무원, 사무실 무단 출입금지’, ‘우리는 죽어서도 우리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제2공항 물러가라’ 등의 문구가 입구에 여기저기 붙어있다. 자신도 농사를 짓고 있는 김형주 난산리 이장은 공항 건설 계획이 처음 공개된 2015년 말부터 리사무소를 거점으로 반대 투쟁을 하고 있다. 5년 가까이 싸우다 보니 비행기니, 공항이니 하는 평생 알 필요도 없었던 항공업계에 대해 이제는 해박한 지식을 쌓았을 정도다.

“제주공항은 소음피해지역이 반경 28km에요. 근데 그것도 여기는 14km에요. 부지는 기존 공항보다 훨씬 큽니다. 이유가 뭐냐, 따지니까 저소음 비행기의 점차적 보유를 항공사에 권유해서 그 소음치를 여기에 대입시켰다는 거에요. 그건 국토부 생각이고, 항공사는 지금 적자나서 죽느니 마니 소리가 나오는데 그럴 생각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항공사에 대체를 위한 자금을 줄 거냐하니까 그냥 권유만 할 거랍니다.”

최근 신공항 계획을 세운 경북에서도 심각한 수준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쪽은 찬성과 반대의 대립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두 지자체가 서로 공항을 유치해야 한다고 싸우는 탓이다. 예정부지의 농민들조차 공항이 지역 발전을 이끌 것이라는 지방정부의 생각에 동의하며 ‘관제데모’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 광경이 떠올라 마을의 여론을 물으니, 김 이장은 외지에 나가 있는 이라면 몰라도 지금 이 순간 마을에 속한 주민이 찬성표현을 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답한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농촌공동체 의식 덕이다.

“제주도의 ‘마을’이라는 개념은 아직 육지와는 다릅니다. 1,000년 전 이 마을에 사람이 정착을 했다는데, 오랜 세월을 지나며 이웃들 사이는 멀리 떠나있는 형제들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죠. 공동체 성격도 강하고, 마을이라는 영역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뚝 잘라서 누구는 나가고, 누구는 남아있는 상황은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죠.”

옆 마을 신산리에선 지난 2018년 말 강원보 이장이 새로 취임했다. 기호 3번, 공항 반대 투쟁이 한창 전개되던 와중 마을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제2공항 반대 투쟁’을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했는데 나머지 두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처음에 공항이 발표됐을 때는 방송사 여론조사에서 70%가 찬성을 했는데 당시엔 공항 들어오면 좋지, 하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지만 1년, 2년이 지날 때쯤에는 팽팽해지다가 지금은 오히려 역전된 것으로 나오네요. 깨닫기 시작한 거에요. 중국 사람들 들어와 봐야 중국 자본에다 주로 돈 쓰고 가고, 농어촌 지역에 우후죽순 지어놓은 펜션이니 게스트하우스들 망해가고 있거든요. 관광자본이 호텔방을 5만원에 내놓는데, 2, 3만원 한다지만 누가 거기 가서 자겠어요.“

무엇보다도 농사짓는 사람들은 경작권이 직접적으로 침해된다. 농어촌 난개발이 이뤄지는 가장 큰 이유는 농지가 팔리기 때문인데, 농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임차농들은 땅값 따라 오른 임차료를 내야하는 고통을 넘어 아예 농사지을 땅까지 잃을 처지에 놓인다. 땅을 가진 농민들은 공항 계획 발표 이후 우후죽순 늘어난 외지인들의 부동산 사무실을 보며 제주를 지키는 길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살던 땅을 판다는 건 결국 뺏기는 거에요. 당장 힘드니까 10만원하던 땅 100만원에 산다고 하면 팔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 마을만 해도 3개 밖에 없던 부동산이 30개씩 들어오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땅을 지키고 여러분들이 농사를 더 잘 짓는 것이 제주도를 지키는 것이란 생각을 농민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강원보 신산리 이장이 제주 제2공항 계획안을 근거로 마을에 예상되는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강원보 신산리 이장이 제주 제2공항 계획안을 근거로 마을에 예상되는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농민운동에 몸 담은 성산지역 농민들 사이에선 생존권과 경작권을 지키기 위한 ‘논리무장’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성산읍농민회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 성산읍지회는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대표 윤병선)’ 인사들을 강사로 초청해 지난 3일 성산일출봉 농협 대강당에서 ‘농민학교’를 열었다. 농민들이 이들을 찾은 것은 유엔이 지난해 공식 채택한 ‘농민권리선언’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개발의 억압에 맞서기 위해 농사짓는 이로써 어떤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지 공부하기 위함이다.

“농민이 지켜온 농촌에서 그 농민을 몰아내는 일이 21세기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대로 땅을 경작해왔던 농민과 농촌에 대한 아무런 배려 없이, 개발이라고 하는 토건적 관점으로만 접근이 이뤄지고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농민에 대한 권리, 농민이 가지고 있는 농민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을 새롭게 한 것이 바로 이 권리선언입니다(윤병선 건국대 교수).”

“‘제2공항은 국책사업으로 숙의형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도지사의 이 발언의 근거는 어디서 온 걸까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헌법을 해석해보자면 오히려 숙의형 공론화 대상인거죠. 모든 개발사업에는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당사자인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절차를 통해 결정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발언은 인권 침해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진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원).”

이번 제2공항 추진사업을 선언을 통해 들여다보면 굉장히 많은 농민의 권리를 침해한다. 농민들은 자연자원을 지속가능하게 이용하고 관리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국가의 개발계획이 이 자원에 영향을 미칠 땐 사회·환경영향평가 및 신의에 입각한 협의를 마쳐야 한다(5조 자연자원에 대한 권리). 또 스스로의 삶과 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러한 정책이나 사업이 벌어질 때는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가 있다(10조 참여의 권리). 마찬가지로 이러한 경우에 관련 정보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권리(11조 정보에 대한 권리)도 있다. 유엔에서 많은 나라들이 공감대를 형성한 권리가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농민학교를 열며 경작권 침해와 토지강제수용에 맞서기로 했다.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도 농민들을 도와 제주 성산의 투쟁이 유엔농민권리선언의 국내 첫 실천사례가 되도록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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