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식 대형 도축장 만능론에서 벗어나자

[창간 20주년 특집] 20년 전 한국농업 그리고 오늘
20년 전 실패 입증된 LPC사업, 오늘날 패커사업으로 되살아나

  • 입력 2020.07.12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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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20년 전, LPC사업의 실패는 이후 축산물 유통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도축장들 간 경쟁이 과열되며 도축장 구조조정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나기도 했다. 지금도 도축장의 평균 가동률은 60% 내외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축산업계가 패커사업에 관해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홍기원 기자

<한국농정>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2000년 11월 창간호부터 2001년 12월까지 본지의 지면을 돌아보고자 한다. 20년 동안 450만명에 달하던 농민의 숫자는 300만명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시의 농업계 현안이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것도 많았다. 이에 본지는 20년 전 농업계를 조명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농정은 제26호 4면 특별기획을 통해 축산물종합처리장 사업을 진단했다.
한국농정은 제26호 4면 특별기획을 통해 축산물종합처리장 사업을 진단했다.

축산물 유통은 20년 전에도 현재에도 뜨거운 감자다. 정부는 유통구조를 선진화해 유통비를 경감하겠다고 하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통비 비율은 좀체 낮아지지 않는다. 성급한 규모화 정책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만 더 도드라지기 일쑤다.

본지는 제26호(2001년 6월 21일자) 4면 특별기획을 통해 축산물종합처리장 사업을 진단했다. 머릿기사 제목은 ‘축산물종합처리장 사업 실패, 축발기금 손실 눈덩이. 책임지는 공무원이 없다’이다.

정부는 앞서 1994년 총사업비 1,164억원을 투입해 축산물 생산에서 가공, 도축, 판매를 계열화한 축산물종합처리장(LPC)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업 추진 7년이 경과한 당시엔 천문학적인 축산발전기금만 축낸 채 사업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지 보도에 의하면 9개소의 LPC 중 4개소에서 부도가 발생했으며 축발기금은 261억원이나 손실을 봤다. A업체는 부도 이후 10여차례의 경매 끝에 회수해야 할 축발기금 융자액 186억원의 11%에 불과한 20억원에 낙찰됐다. 부도는 안났지만 B업체는 123억원의 축발기금을 융자했는데 모기업의 기업구조조정으로 완공한 지 2년이 넘도록 가동조차 못했다.

이같은 부실은 예견된 면도 있었다. C업체는 회사 설립 이후 아무런 영업실적이 없었는데도 신용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채 축발기금 융자가 실현됐다. 이 회사는 사업자가 지원받은 축발기금 일부를 유용한 혐의로 구속되며 자금회수에 들어갔다. 회수금이 총 102억원에 달했지만 불과 3억원만 회수됐으며 담보물 평가액은 12억원에 그쳤다.

이같은 사업실패에 국정조사가 실시돼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본지는 “한 업체의 경우 간이 신용조사에서 부채비율이 3148%인데다 매출액 경상이익율이 -85%인데도 186억원의 대출이 이뤄진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면서 “공적자금에 대해 책임소재가 분명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을 감안하더라도 반드시 손실에 대한 책임이 밝혀져야 한다”고 보도했다. 대상자 선정과 융자 과정 절차가 법이 정한 원칙대로 집행됐는지를 지적한 것이다.

본지는 나아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물었다. 선진국에서 실시하는 사업을 무조건 모방하는 경향이 사업실패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본지는 “선진국에서 추진된 이 사업은 우리처럼 초현대식 시설을 갖춘 대규모 시설이 아닌 그 지역 축산 실정에 맞는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며 “우리는 LPC만 건설하면 축산물 유통이 선진화될 것이라는 단순 논리에 입각해 이 사업을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현실을 무시한 전시형 모방 정책 입안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라고 평했다.

정부는 1994년 축산물종합처리장 사업을 계획해 추진했지만 7년 뒤,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1994년 축산물종합처리장 사업을 계획해 추진했지만 7년 뒤,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LPC가 기업형 패커로 이름만 바꿔

농림축산식품부는 2016년 11월 축산 패커 육성으로 유통단계를 축소해 유통경로별 경쟁체계를 강화하겠다고 축산물 유통구조 개선 방향을 밝혔다. 특히 거점도축장을 민간패커로 육성하기 위해 평가체계를 마련해 우수업체는 인센티브 자금을 지원하고 미흡업체는 지정 취소 또는 자금회수를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농식품부는 산지와 소비지의 가격연동을 제고하려면 일관유통체계를 구축해 유통단계를 기존 4~6단계에서 2~3단계로 줄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고정적으로 필요한 유통단계가 있으며 설령 유통단계를 축소해도 소비자가격 인하로 직결될지는 미지수란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특정부위에 소비가 집중된 식육문화는 우리나라에 패커가 맞지 않는 첫째 이유로 꼽힌다. 비인기부위의 소비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대형패커는 막대한 재고부담을 안게 된다. 또, 다품종 소규모 생산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흐름에 역행하는 감도 지울 수 없다.

현재는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패커사업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도드람양돈농협은 2018년 8월 전북 김제시에 도드람 김제FMC를 준공했다. 김제FMC는 1일 3,000마리의 돼지를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원라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도드람은 연면적 4만2,975㎡ 규모인 김제FMC에 약 1,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했다.

이어 그해 12월엔 제주양돈농협이 1일 1,500마리의 돼지를 처리하는 축산물종합유통센터를 준공했으며 부경양돈농협과 대전충남양돈농협도 머지않아 대규모 축산물종합유통센터가 가동될 전망이다. 이들 협동조합형 패커는 앞으로 민간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관건은 기업형 패커의 움직임이다. 선진은 지난달 경기도 안성시에 대규모 축산식품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지역주민과 축산업계 내부에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업 강행 의사를 거듭 드러낸 것이다. 투자규모만 물경 2,000억원을 웃돌며 1일 4,000마리의 돼지를 도축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20년 전, LPC사업의 실패는 이후 축산물 유통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도축장들 간 경쟁이 과열되며 도축장 구조조정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나기도 했다. 지금도 도축장의 평균 가동률은 60% 내외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축산업계가 패커사업에 관해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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