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말에 서울 변두리에서 세를 살았는데, 그때 단칸방 사글세 보증금이 5만원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같은 집에서 세를 살던 포천댁 아주머니가 5만 원짜리 낙찰계를 들지 않겠느냐고 은근하게 권하는 거예요. 낙찰계? 난생 첨 듣는 말이었어요. 영문 모르고 그러마했지요. 어쨌든 그 때 들었던 낙찰계의 곗돈을 탄 덕분에 사글세 보증금을 10만원으로 불려서, 방 2개짜리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지요.”
45년생 해방둥이인 박영임 할머니가 들려준 얘기다. 목돈 마련의 한 방법으로 한 때 대단히 성행했던 계가 이른바 낙찰계였다. 하지만 나도 말만 들었을 뿐, 계의 운영 방식은 물론 그 계의 이름이 왜 낙찰계인지조차 깜깜 먹통이었다. 당시 신혼이었던 박영임 씨에게 포천댁이 들려둔 얘기는 이랬다.
-열 명이서 5만원짜리 계를 들면 달마다 5천원씩 넣는 건데, 5천원이 다 안 들어가. 어떤 달은 4천원도 들어가고 재수가 좋으면 3천원만 내는 달도 있다니까.
낙찰계를 해본 사람이야 그 계의 운영방식을 훤히 꿰고 있겠지만, 경험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들을수록 오히려 머릿속만 복잡해진다. 박영임 할머니는 “낙찰계에서 곗돈을 타는 것은 입찰 봐서 공사 따내는 것하고 같다”라고 말한다.
그럼 각설하고, 1970년대 초의 어느 날, 계원 열 명이 가입한 100만원짜리 낙찰계의 계모임 현장으로 따라가 보자. 물론 이 낙찰계는 1인당 월 10만원이 기본 곗돈이다.
중국음식점에 10명의 계원들이 모였다. 계주가 행사를 진행한다.
-다들 곗돈 10만원씩 갖고 왔겠지? 자, 그럼 시작해볼까? 이번 달에 누가 곗돈 탈래?
-우리 시동생 결혼시켜야 되니까, 이번 달엔 내가 탔으면 좋겠는데.
-아이고, 우리 친정 아부지 병원비 때문에 이 달엔 꼭 내가 타야겠는데요.
-뭔 소리들 하고 있어. 난 오늘 곗돈 못 타면 우리 큰아들 대학 등록금을 못 내게 생겼는데.
-흠, 서로 타겠다고 야단이니까 입찰을 봐야겠네. 용지 나눠 줄 테니까 금액들 써내라구.
저마다 사정이 급하다고 호소하던 열 명의 계원들이 종이에다 금액을 적어낸다. 드디어 계주가 입찰용지를 수합하여 발표한다.
-숙희 엄마 5천원, 길님이 엄마 1만2천원, 찬호 엄마는 0원이라고 썼네. 금동이 엄마 2만5천원, 영수 엄마는 3만원 써낸 걸 보니 급하긴 했나 보네. 순심이 엄마 2만원…. 자, 이렇게 해서 3만원을 써낸 영수 엄마한테 낙찰됐습니다. 각자 7만원씩 내서 70만원 만들어 주면 되겠네요. 일단 박수 한 번 치고 짜장면 먹읍시다!
다시 설명을 하면, 계원 10명이 핸드백에 10만원씩을 넣고서 계모임 장소로 나온다. 그 중에서 누군가가 급히 곗돈을 쓸 사정이 생겼다면 10만원씩을 모아서 100만원을 만들어 주면 된다. 원리는 그러하나, 그렇게 되면 깎는 맛이 없어서 재미가 없다. 그래서 너도나도 곗돈을 급히 써야 할 것처럼 위장하고서 한바탕 ‘쇼’를 한다. 그러니까 입찰용지에 30만원을 써낸 영수 엄마는 기본곗돈 100만원에서 30만원을 제외하고 70만원만 가져가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셈이다. 사정이 급해서 이번 달에 반드시 곗돈을 타야겠다고 생각하면 남들보다 더 큰 금액을 써내야 한다. 2만원이 낙찰 금액이라면 계원들은 8만원씩만 내면 되고….
이 낙찰계는 계모임에 가입한 열 명 전원이 곗돈을 탈 때까지 유지된다. 맨 마지막 사람의 경우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100만원 전액을 고스란히 받을 수가 있다. 물론 마지막 사람이 지난 10달 동안에 불입한 곗돈의 총액은 100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다. 낙찰계의 운영 원리가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