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나의 미래 그리고 어머니의 현재

  • 입력 2020.06.28 16:33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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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우리마을 권역이름은 ‘효장수권역’이다. 지리산 아래 장수마을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효’라는 이름을 덧붙였다. 그 이름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왜 내게 들었을까? 장수에 효를 붙여 놓으니 노인의 돌봄은 가족이 그것도 가까이 사는 며느리가 책임져야 함을 강조하는 단어로 가슴팍에 다가왔던 것에 대한 심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드러내놓고 반대의견 한 번 제시하지 못했다. 무엇이든지 잘해야 하고 야무져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아마 농촌에 들어온 날부터 내게 생긴 병인 듯싶다.

요양보호사교육원에 드디어 등록을 했다.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여성농민들 대부분이 요양보호사 자격증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가족을 돌보든 타인을 돌보든 농업수익만으로 살아가기 힘든 조건에서 이중의 일을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가족 돌봄의 정당한 비용을 정부가 책임지게 하는 시작이기도 했다. 함께 하자고 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부부가 함께 장수하고 계신 분들도 계시지만 마을 구성원의 대부분은 홀로 사는 할머니들이다. 남편의 병수발을 하다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아 농촌을 지켜내고 계신다. 물론 자식들 대부분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2대가 3대가 함께 사는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들다.

우리 어머님이 몸져누운 지 벌써 반년이 넘어간다. 노인요양시설에 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씀을 하신다. 아마 주위 어르신들 거의 대부분이 그러하신다. 심지어는 현대판 고려장이라며 시설에 자식들이 나를 버렸다 말씀하시기도 한다. 멀쩡하던 사람도 한 번 가면 죽어서나 나올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요양시설의 환경에 대한 불신의 골은 깊다.

전 세계 노인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대한민국. 아마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가족이 아닌 남에게 돌봄을 맡긴다는 것을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떳떳하지 못한 일로 치부한다. 물론 인식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러나 당위성을 주장하기 전에 우리는 가족이 노인을 돌볼 수 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가족이 노인을 돌볼 수 있는 여건이 안 돼 있는 상태에서 가족이 돌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행여나 불효자로 자식들이 찍히면 어쩌나 하는 마음은 가족 돌봄을 정당화시키는 사회에 홀로 고독사나 자살을 하도록 떠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팔십이 넘어 구십을 향해 가는 마을 어르신 대부분이 요양시설을 이용하거나 재가 서비스를 받고 계신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더 이상 가족이 돌봄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음을 그들은 이미 알고 계신 것이다.

장마다. 관절이 쑤시기 시작한다. 비 오는 내내 쑤셔댈 것이다. 나의 미래이자 어머님의 현재,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호미와 낫을 든 손에 무엇을 더 쥐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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