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00] 다원적·공익적 기능 상실의 시대

  • 입력 2020.06.21 18:00
  • 수정 2020.06.21 22:04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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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중앙대 명예교수)

농사일기가 100회가 되었다. 2주에 한번씩이니 어느새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기고할 기회를 준 농정신문사와 기자님들께 새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자칭 100회 특집 기념으로 뭘 쓸까 하고 잠시 고민해 보다가 지금까지 현장에서 느낀 조금 무거운 얘기를 써보기로 했다.

4년여의 귀농ㆍ귀촌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문제 인식은 ‘이론과 현실’, ‘정책과 현장’, ‘현장의 농민’이 서로 아귀가 맞지 않고 각자의 지향점이 다른 것 같다는 점이다. 지향점이 다르니 헛바퀴를 돌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한곳을 보지 않으니 연구는 연구대로, 정책은 정책대로, 농민은 농민대로 그냥 굴러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당연히 이론과 정책은 농업과 농민과 농촌의 현실과 현장에 기반을 두어야 하고, 그 지속가능성에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시대는 이미 불평등의 심화와 계층간ㆍ국가간ㆍ인종간 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 성장 지상주의라는 이념에 빠져 인간과 환경과 생태계의 조화로운 균형을 파괴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기후변화의 위기, 코로나19와 같은 괴질의 유행 등에 대해 경제학은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근대경제이론과 계량경제분석을 아직도 농업ㆍ농촌ㆍ농민에 대한 연구분석기법으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학계의 다수의 논문과 연구결과물들은 그들만의 연구 논문일 뿐 농업ㆍ농촌ㆍ농민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 대부분이다. 변화된 현실에 기반을 둔 새로운 이론을 찾아 내거나, 아니면 노력이라도 해야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질 않는다.

현장을 살리지 못하는 정책 대안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코로나19 이후의 농업부문 대응방안으로 인공지능이니, ICT기술이니, 사물인터넷이니, 정밀농업이니, 스마트농업이니 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연구자나 정책당국의 한소리를 들으면 씁쓸해진다. 뭔소리인지나 알고 말하는 것인지 의아할 뿐이다.

현장의 농민들은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1년에 농사지어 1,000만원 버는, 그것도 10년이 넘도록 그러고 있는 농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먼 나라 얘기로 들릴 뿐이다. 이 무더위에 땀범벅이 되도록 풀을 안 매도 되고, 시원한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나 두드리면 되고, 제초제ㆍ농약ㆍ화학 비료도 안 쳐줘도 되고, 검게 그을은 얼굴과 굵은 손마디가 아니여도 되고, 생산만 해놓으면 팔곳도 얼마든지 있는 농사인가 보다고 어색한 쓴 웃음으로 받아 넘긴다.

먼 훗날 이런 농업이 대세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이런 농업이 대세가 된다면 이미 그 농업은 다원적ㆍ공익적 기능을 논할 수 있는 농업이 아니다. 자본과 기술력에 좌우되는 농업이 가족농에 의해서 영위될 필요도 없고, 환경과 생태적 가치 즉, 다원적ㆍ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농업일 필요는 더더욱 없다.

농촌 공동체는 또 어떤가. 지금 60대인 내가 죽고 나면 나의 자녀들이나 그 다음 세대들이 농촌에 와서 살것 같지 않다. 더군다나 조그만 과수원에서 농사지을 후계자도 보이지 않는다. 나의 개인 가족사만 이럴까. 아마도 대부분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달리 얘기하면 10~30년 아니 넉넉잡아 50여년이 지나면 현재의 읍ㆍ면 소재지 등을 제외한 농촌 마을은 사라질 것이 뻔하다. 결국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사라지면 농촌의 공익적 기능도 함께 사라진다.

내생적이던 외생적이던 자본과 기술을 가진 자가 농업노동자를 고용해 농업을 하고, 농촌에 가족농이 살지 않는다면 다원적 가치나 공익적 기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현재 추진되거나 추진 중에 있는 공익형직불제니 농민수당이니 기본소득이니 하는 것들의 의미 자체가 없어진다. 우리시대는 지금 그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방향을 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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