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적반하장도 유분수

  • 입력 2020.06.21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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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종자, 농약, 농기계. 농민들이 농작물을 생산해내는데 필수적으로 구매해 사용하는 농자재다. 하지만 농민들은 농자재를 사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해도 적당한 보상은 물론 당연한 사과마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되레 잘못한 쪽에서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지난 15일 전남 나주에서 만난 농민 역시 종자 업체 측 잘못으로 1년의 영농계획이 무산된 처지였다.

농민의 말을 들어 보니 업체에선 종자가 선별·검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피해는 다른 지역에서도 다수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피해를 신고 받은 뒤 새 종자를 가져다주는 일련의 과정에서 업체 관계자는 잘못에 대해 미안해하는 태도를 보이지도,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다른 농가들은 전부 합의를 봐줬는데 왜 버티고 있느냐는 식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농민은 법률구제공단을 통한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농산업 담당 기자로 3년 넘게 취재하다 보니 종자, 농약, 농기계 등 다양한 농자재 분쟁 사례를 접하게 된다. 대개 업체와의 다툼으로 지칠 만큼 지친 농민들은 단 하나 남은 실낱같은 희망으로 기자에게 연락을 하지만 그 어느 경우도 농민들의 피해 상황에 견줘 마땅한 배상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대목이다.

변명을 하자면 농작물 재배가 워낙 다양한 환경의 영향을 받다 보니, 종자나 농약에 문제가 발생해도 피해 원인을 특정 짓기가 매우 어렵다. 이는 ‘농업계 최대 연구기관’인 농촌진흥청에서도 확실히 이렇다 저렇다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한다. 반면 업체 입장에선 ‘빠져나갈 구멍’이 확실한 것이다. 때문에 농민들은 피해 구제를 위한 ‘농자재 분쟁조정기구’ 설치를 오랜 기간 요구해왔다.

농자재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농민들이 요구하는 건 과도한 보상이 아니다. 또 농민 잘못으로 발생한 피해도 아니기에 마땅한 보상 전 잘못에 대한 인정과 사과, 그리고 진정어린 태도가 선행돼야 한다. 농민 스스로 피해 원인을 증빙해야 하는 구조는 물론 잘못을 인정하고 농민에 사과할 줄 아는 ‘미덕’이 농산업계 전반에 뿌리내리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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