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ㅣ농업재해대책, 20년째 ‘제자리걸음’

[창간 20주년 특집] 20년 전 한국농업 그리고 오늘

  • 입력 2020.06.14 18:00
  • 수정 2020.06.18 10:57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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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2001년 [한국농정] 신년호는 새해 농정 변화의 주요 대목으로 논농업 직불제와 재해보험제의 첫 도입을 손꼽았다. 한승호 기자
2001년 [한국농정] 신년호는 새해 농정 변화의 주요 대목으로 논농업 직불제와 재해보험제의 첫 도입을 손꼽았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2000년 11월 창간호부터 2001년 12월까지 본지의 지면을 돌아보고자 한다. 20년 동안 450만명에 달하던 농민의 숫자는 300만명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시의 농업계 현안이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것도 많았다. 이에 본지는 20년 전 농업계를 조명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 발생 시 농업 생산자인 농민의 피해를 보전하고 농가 경영 안정화를 위한 ‘농업재해대책’은 오늘날 농작물재해보험과 농업재해복구비 지원 등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도입 20년차인 농작물재해보험은 갈수록 농업계 피해 보전과 농가 경영 안정 등의 본래 목적보다 사업 운영자에 유리한 구조로 개정되고 있으며, 재해복구비 지원은 현장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 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농민들이 재해보상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이유다.

2001년 5월에 발간된 [한국농정] 제21호에선 소멸성 보험인데다 보상기준까지 불합리한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에 부정적인 농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한승호 기자
2001년 5월에 발간된 [한국농정] 제21호에선 소멸성 보험인데다 보상기준까지 불합리한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에 부정적인 농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한승호 기자

 

도입 20년, 여전히 말 많은 재해보험

2001년 3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빈번한 자연재해에 따른 농가 피해를 보전하고 소득 불안을 해소해 농가가 안정적으로 농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농작물재해보험을 개시했고, 농가 가입희망률이 높은 사과·배를 대상으로 보험 가입을 신청 받았다. 이에 2001년 1월 4일 <한국농정>은 신년특집호를 발간하며 논농업 직불제와 재해보험제 첫 도입을 새해 농정 변화로 소개했다.

당시 약관에 의하면 사과·배 재배농가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할 경우 태풍과 우박, 동상해로 인한 피해 발생 시 평균생산액의 70% 또는 80%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아울러 농식품부는 재해보험 제도를 조기에 정착시키고 농가 가입을 확대시키기 위해 농가부담 보험료의 30%와 보험 사업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 50%를 국고 지원했다.

하지만 2001년 5월 17일 발간된 본지 21호에는 농작물재해보험에 대한 농가 호응이 미미하단 내용이 주요기사로 실렸다. 1년의 보험기간이 만료되면 보험료가 무효화되는 소멸성 보험인데다 생산량의 20% 이상 피해를 입었을 때만 피해액의 80%를 보상받을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단 이유에서다. 특히 농가들은 보험료를 납부하고도 피해 정도가 20% 미만일 경우 보험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단 사실을 불합리하다고 여겼다.

도입 20년이 지난 지금, 농작물재해보험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선 사과·배 2개에 불과하던 가입 작목이 67개로 대폭 늘었다. 가입기간이 지나면 효력이 사라지는 ‘소멸성’ 보험임에는 변함없지만, 시범사업 중인 작목 26개를 포함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작목의 개수가 늘어났다는 점에서 보험은 도입 당시와 비교해 많이 성장했다. 가입하는 상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장 재해 역시 대부분의 자연재해로 늘었고, 고추 등 일부 품목의 경우 재해로 인한 병충해 피해까지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보장하는 재해가 늘어난 만큼 보험료 부담은 높아졌고 농가 가입 확대를 위한 농식품부의 ‘노력’ 역시 전보다 강화됐다. 오늘날 농식품부는 보험료의 50%를 국고 보조하는 한편 지자체에서 많게는 40%까지 보험료를 지원해 농가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또 보험사업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 지원은 지난 2018년부터 농작물재해보험 예산과 별개로 농작물재해보험 운영사인 NH농협손해보험에 지원하고 있다.

반면 도입 당시와 달리 현행 농작물재해보험은 보상제도와 절차 등이 더욱 복잡하고 까다로워졌다. 상품이 세분화되고, 재해의 보상수준이 ‘현실화’됐지만, 농민들 입장에서는 농작물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을 수 없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최근의 보상률 인하 논란은 농민들로 하여금 보험 지속 여부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농식품부와 NH농협손해보험은 보험금 지급을 노린 과수 농가의 ‘과도한 적과’를 막기 위해 기존 80% 수준의 보상률을 50%로 낮췄다고 설명했지만, 농민들은 “몇 푼 되지도 않는 보험금을 타겠다며 수세를 망치는 농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현장의 상황을 무시한 일방적 개정을 규탄하는 상황이다.

[한국농정] 제7호는 폭설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농업재해보상법 제정’ 촉구 목소리를 담았다. 20년이 지난 현재, 농업재해보상법은 여전히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 제7호는 폭설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농업재해보상법 제정’ 촉구 목소리를 담았다. 20년이 지난 현재, 농업재해보상법은 여전히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재해보상법 제정 요구만 ‘20년’

겨울 폭설 피해에 이어 심각한 봄가뭄까지 지속되자 2001년 농민들은 재해보상법 제정을 촉구하며 나섰다. 당시 1월 18일자 본지 “농업재해보상법 제정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농민들은 20년만의 폭설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농민단체들은 각기 성명을 통해 ‘농업재해보상법 제정’을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특히 전농은 재해대책법이 하우스 작물피해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고 복구자금에 대한 선지급 역시 되지 않고 있는데다 시공 때보다 10~20% 비용이 더 드는 철거에 대한 보상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시설을 다시 설치하는데 농자재부가세를 그대로 부담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폭설 한파 피해에 대한 신속한 조사와 함께 재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국가 보조를 확대하고, 농업 재해대책법 개정기구를 농업재해보상법 추진기구로 개편해 농업재해보상법을 즉각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재해보상법 제정 촉구 목소리는 2001년 2월 22일과 6월 14일, 7월 12일 등 본지 기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농업재해보상법 제정을 촉구하는 농민들의 목소리는 20년 전이나 20년이 지난 2020년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20년 전 주장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농민들은 분에 넘칠 정도의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농업재해보상법 제정의 가장 큰 목표가 재해로 인한 농업 피해에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것인 만큼 농민들은 ‘재생산 가능할 정도의 지원’만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겨울 이상고온과 4월의 이상저온 등 자연재해는 갈수록 빈번해지고, 그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이제 농민들이 감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라도 미약한 현행법과 제도를 보완할 수 있게 농업재해보상법을 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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