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노니 뭐하겠노’ 통일 얘기하는 벼농사

  • 입력 2020.06.14 18:00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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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지난 6일 거창에서도 손모내기 행사가 있었다. 벼농사의 소중함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소원하는 손모내기 행사는 거창 아림고 행복학교 프로젝트 ‘노니(논이) 뭐하겠노’와 공동체지원농업의 일환으로 농가와 토종벼 활동가들이 함께하는 통일쌀공동체와 연계해 진행됐다. 무더위가 시작돼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구름이 끼고 손모내기 하기 좋은 날씨였다.

손모내기에는 아림고 학생, 교직원 및 통일쌀공동체 회원가족 70여명이 참석해 요즘은 보기 드문 풍경을 만들어냈다. 대부분 서툰 몸짓이었지만 진지하면서도 성실하게 모를 심으며 논을 채웠다. 낯설고 호기심어린 표정이 순수하게 보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심기 이후 다양한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선 밥은 “빵보다 맛있는 것이다”, “힘의 원동력이다”, “생명이다” 등의 내용과 통일은 “밥처럼 중요한 것이다”, “반드시!”, “행복이다” 등 재미있고 의미있는 글들이 보였다.

한편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논을 보면 하루 종일 모내기를 하고 온 엄마의 부은 얼굴이 늘 생각난다. 허리를 굽혀 하루 종일 모를 꼽아야 했던 얼굴, 손은 물에 퉁퉁 불어있던 모습이 어린 눈에도 고생스러워 보였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당연한 듯이 그 모습이 떠오른다.

농사일을 거의 배우지 못했던 내게 주어진 과제는 모를 쪄내는 것이었다. 길러진 모를 손으로 뽑아내는 일은 단순하지만 나름 끈기가 있어야 했고 그것이 부족했던 나는 조금 일하고 못자리 옆에 모여 있는 올챙이를 구경하거나 오빠가 끌어주는 고무대야에 앉아서 논물 미끄럼을 탔던 그야말로 방해꾼 역할을 주로 했었던 것 같다. 결혼 후 거창에 와서 기계모를 심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고생스럽게 모내기를 했던 엄마,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몰래 훔쳐내기도 했다.

통일쌀공동체는 작년에 토종벼농사를 지어보겠다고 모인 생산자 여섯가족 벼꽃모임으로 구성돼 시작은 장대한지라 처음에는 300평 넘는 토종 채종포를 모두 손모내기로 진행했었다. 하다 보니 “누가 이거 하자고 했냐부터 이앙기 가져오라는 아우성까지”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피우며 채종포 모내기는 마무리됐다.

통일쌀공동체 모내기에선 400평을 70여명이 2시간 넘도록 심어보니 힘든 안색이 역력했으나 오로지 손으로 마무리한 논에서 보람이 깃든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풀 뽑기, 논두렁풀치기를 거쳐 채종용 토종벼 홀태기작업까지, 수확은 조금 수월할 줄 알았지만 토종벼의 긴 까락을 제거하는 일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일부 쓰러진 부분을 수확하다 등장한 콤바인에 모두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기도 하면서 벼농사의 만만치 않음을 서로 나누기도 했다.

때로는 무모하고 뒤죽박죽될지라도 농민이라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해보는 것도 보람이다. 토종벼에 애착을 가지고 함께 활동 중인 친구와 공유텃밭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어린이집을 다니며 토종벼에 대해 알아보고 심어보고 키우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친구의 텃밭 수업으로 흙과 물에 집중하는 아이들의 빛나는 눈빛과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여성농민으로서 긍정적인 역할과 또 밝은 미래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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