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계모임② ‘계갈이’를 아십니까

  • 입력 2020.06.14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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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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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동면 백전리에서는 여느 마을과는 달리, 집집마다 절구를 갖고 있지도 않았고 디딜방아도 없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물레방아가 곡식을 빻고 찧는 일을 도맡아 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물레방아가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다. 흐르는 물길을 돌리고 모아 한 곳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작업이야 기본이고, 나무를 베어다 자르고 깎고 못질해서 물레를 짓고, 석수장이에게 돌확을 주문해서 앉히고, 절구 공이를 깎고, 방앗간 건물을 짓고…여럿이 협업을 하지 않으면 엄두를 못 낼 일이었다.

-몇몇 사람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니까, 사람을 모아서 계를 만듭시다.

-좋은 생각입니다. 당장 계원 모집에 착수하고, 회칙도 만듭시다.

그래서 생긴 것이 ‘물레방아계’였다. 방앗간이 완성된 뒤에도, 도중에 어느 부분이 부러지기라도 하면 재빨리 손봐서 수리를 하고, 방아를 찧으러 몰려든 사람들을 관리하는 등의 일도 계원들이 순번을 정해서 담당하였다.

“이웃마을에서 방아를 찧으러 올 경우 가령 곡식 두 말 찧는 데에 한 됫박, 하는 식으로 현물을 사용료로 받기도 했고, 혹은 현금으로 얼마씩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모아봤자 돈벌이가 되는 것은 아니고 방앗간 수리하는 데에 다 들어갔지요. 그런데 어느 해던가, 홍수가 나서 물레방앗간이 통째로 떠내려 가버렸어요. 다시 지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방앗간을 재건할 때 제갈이를 크게 해서, 마을사람들 모두가 계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백전리의 한 할아버지가 들려준 얘기다. 얘기 중에 ‘제갈이’라는 말이 나온다. ‘길’을 ‘질’이라 하고 ‘김치’를 ‘짐치’라고 하는 것처럼, ‘계(契)’를 지방에 따라서는 ‘제’나 혹은 ‘지’라고도 했다. 이런 음운현상을 ‘기역(ㄱ) 구개음화’라 부른다는데, 이왕 시작한 김에 낱말풀이를 좀 더 하자면 ‘갈이’는 낡은 것을 정비해서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화분의 화초를 옮겨 심는 것을 ‘분갈이’라고 하는 것처럼. 따라서 ‘계갈이(제갈이, 지갈이)’는 계의 운영 상태를 점검하고 계원을 정비하는 등 계를 업그레이드하는 행사를 일컫는다. 지방에 따라서는 계모임을 ‘지추’, 그리고 곗날을 ‘지춧날’이라 부르기도 했다.

계갈이 하는 날은 계원들의 잔칫날이었다.

“계원들이 각자 음식을 장만해서 제갈이 하는 장소로 갖고 나가지요. 강원도엔 북어가 흔하니까 그걸 삶아서 양념해서 내가고, 두부도 부쳐갖고 가고…야외에서 할 때는 아예 솥단지를 걸어놓고 닭을 여러 마리 잡아서 삶기도 했어요.”

내가 나고 자란 남해안의 생일도라는 섬은 큰 산을 에둘러가며 다섯 개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는데 내 어린 시절, 섬을 통틀어서 아부지의 동갑나기가 서른 명 가량이나 되었다. 그 서른 명을 계원으로 둔 동갑계가 봄가을로 마을을 번갈아가며 계갈이를 했다. 계갈이를 마친 아부지는 밤이 이슥해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난 그날만은 악착같이 졸음을 이겨내고 버텼다.

드디어 아부지가 온다. 어김없이 김을 건조할 때 사용하는 발장 두 개를 포개서 싸들고 오는 묵직한 것이 있었다. 돼지고기였다.

-도야지를 큰놈으로 잡었네.

엄니는 고기 덩이만 보고도 돼지의 크기를 척척 가늠했다. 아부지의 계갈이가 있는 날 밤은, 내가 삶은 돼지고기를 포식하는 날이었다. 잠에 떨어진 동생 녀석들이야 아침에 돼지고기 국이나 맛보면 될 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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