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 위에 세대주?

  • 입력 2020.06.07 18:00
  • 기자명 강정남(전남 나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정남(전남 나주)
강정남(전남 나주)

본격적으로 농번기가 시작되고 논으로 밭으로 다니느라 바쁜 계절이 왔다. 와중에 이곳 나주는 배 냉해가 심해서 배까지 제대로 달리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그런 것에 대비해 농작물재해보험을 들었으나 작년에 농협의 손실이 컸다고 계약을 일방적으로 변경하여 농가에서는 작년만큼의 보상도 받지 못할 상황이 돼버렸다. 아카시아향기가 날리는 상큼한 5월은 그렇게 잔인하게 지나가 버렸다.

이제 배 농가에서는 그나마 달린 배에 봉지를 씌우느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천지삐깔로’ 바쁘다. 우리 여성농민은 전날부터 그래도 대충이나마 다음날 인부들 음식도 준비해 놔야 하고 여러모로 바쁘다. 논은 논대로 모내기 하느라 들녘은 들녘대로 바빠 정신이 없다.

요즘은 동네 할머니들이 내놨던 농사를 다시 가져가시는 분이 느는 듯하다. 소농 직접지불제 영향이다. 직접 짓는 농사범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농협에 맡기면 농약부터 해서 모내기까지 일사천리로 다 해준다. 이 소농 직불금을 받으려고 내놓았던 농사를 가져가는 것은 좋은 현상이나 반대로 농지 300평만 지으면서 준도시에 살면서 농지를 취득해 소농 직불금을 받아가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자기 땅이 없는 농민은 땅을 얻어서 농사짓는데 점점 힘든 구조가 돼버렸다. 과거의 직불금이 대농 위주여서 그 폐해를 줄여보려고 나온 소농 직불금이 또 그런 식으로 악용되니, 법과 제도가 큰 틀은 만들 수 있어도 결국 잔꾀를 부리는 사람은 당하지 못하는 꼴이 됐다.

어쨌건 직불금은 빼고 농민수당이니 코로나 사태 지원금이니 전부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하는데 최근에 정말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들었다. 코로나 지원금 중 국가 지원금은 본인 이외에는 타가지 못하게 되어 있는지라 세대주에게 그 권리가 있다.

한 마을에서 남편이 바빠서 부인이 대신 가서 타려고 했다가 시간만 버리고 집에 들어왔는데 그 남편이 부인에게 “거 봐라 너는 내 덕에 먹고 사는 거다. 내가 없으면 이런 것도 못타지 않느냐. 다 내 덕이니 내 말 잘 듣고 살아라”라고 했단다. 그 부인도 노는 게 아니라 농사지으면서 직장도 다니는데 말이다.

세대주의 권력을 새삼스레 느끼게 해주는 일화였고 농업정책에서 농가라고 뭉뚱그려 대표선수를 세대주로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그 인식의 천박함을, 인격적 모독을 묵묵히 감내할 이유가 왜 여성농민에게 있는가! ‘나도 농민이다, 여성농민도 농민수당 지급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던 말들은 전부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지는 꽃잎이 돼버리고 말았다. 행정은 예산과 편리함을 앞세워 여전히 세대주 중심의 사고를 하고 있다.

정말 농업정책을 제대로 세우려면 개별농민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농사짓는 아무개의 부인이 아니라 농사짓는 남편과 함께 농사짓는 여성농민으로 인정하고 정책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본다. 여성농민 위에 세대주가 있는 게 아니다! 이 땅에 함께 농사짓는 여성농민으로 존재한다. 유령 취급하지 말길 바란다. 우리가 바라는 건 내가 하는 역할만큼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 참 좋은 사람들, 먹을거리를 정성스럽게 길러내는 사람들, 그 사람이 바로 나, 너, 그리고 우리, 바로 여성농민이다. 여성농민이여!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키워드
#사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