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농업 가치

정책보다는 가치 전환이 요구된다

  • 입력 2020.05.24 18:00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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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교수
우희종 서울대 교수

근대역사에서 1, 2차 세계대전의 혼란은 세계질서를 종종 전전과 전후로 나누게 하는 역할을 해 왔다. 시대적 혼란이 새로운 사회 변화를 촉발하고 새로운 사회 문화와 체제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동안 생산성과 효율을 위한 무한 경쟁 속에 노동시장 유연화 등으로 생태계 파괴와 양극화를 불러온 신자유주의 시대를 넘어 다음 시대의 가치가 무엇이 돼야 하는지는 근대사회의 한계를 고민해 온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신자유주의 이후에 우리 사회를 이어갈 새로운 사회적 가치로서 생명을 제시한다. 또 사재기의 첫 대상이 식료품인 것처럼 먹거리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국내 농업 상황은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맞이한 위기상황을 풀어가기에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경험한 포스트코로나 사태가 생명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기에, 이를 사회의 새로운 가치로서 공유한다면 농업의 또 다른 시도는 가능하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1차산업으로서의 농업은 존중되지 못하지만, 포스트코로나 사회에서 생명 가치가 재인식된다면 생명 산업인 농촌은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다. 정책과 제도는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적 가치, 생명

현재 우리 생활에 가장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코로나19(COVID-19) 사태다. 비록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화 상태를 보이고 있으나,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인 유행(팬데믹)으로서 여전히 지구 전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생명 안전에 직면해서 대부분의 사회활동이나 경제활동마저 멈췄다. 식료품 사재기도 새롭지 않다. 이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있어서 사회 체제의 변화가 생명 위주로 재편돼야 함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코로나 사태라는 비극이 전개되면서 기후변화와 직결된 이산화탄소 배출이 무척 감소했다. 인도 뉴델리나 북경의 공기가 깨끗해졌다는 뉴스도 있고, 도시에 야생동물들도 돌아오는 현상이 보인다. 그동안 다보스 포럼이나 국제기구 논의와 같은 유명 정치인의 활동이나 국내외 정당 혹은 단체들이 내세우는 기후 온난화 대책 등, 그 어떤 주장이나 활동보다도 뚜렷한 효과가 코로나19로 인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우리 각자의 생명안전 문제라면, 전 세계적 규모로 그 어떤 변화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며, ‘생명 가치’를 재확인해준 셈이다.

사회나 환경 변화는 거창한 정치인의 구호나 전문가들의 논의가 아니라 일반인들의 협조와 능동적 참여로 가능하다. 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들의 인식 전환에 의해 얼마든지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어, 인류의 새로운 가치 체계에 근거한 정책과 제도가 마련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제대로 된 원인 분석과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으로써 새로운 사회 체제와 문화가 필요함은 이미 사회적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 대응 방식은 방치한 채, 단지 당장에 유효한 단기문제 해결에만 집중한다면 새로운 가치 제시는커녕 근본적인 문제 해결도 불가능하다. 이미 많은 생물학자들이 경고한 것처럼 이번과 같은 전 세계적 전염병 유행은 또다시 반복돼 인류의 고통과 혼란은 이어진다.

전염병의 생태계는 특정 지역, 나라, 문화권을 넘어 전 세계적이고, 또한 언제 어디서 새로운 질병이 등장할지 모른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이런 인식을 근거로 코로나 이후의 세계질서를 생각할 때, 우리 정부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염두에 두고 최근 들어 제시하고 있는 대응 방법에는 아쉽게도 생명 가치에의 전환은 물론 이와 직결되는 농업에 대한 장기적 접근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생명 평화에 근간한 남북 통일농업에 대한 정책 제시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방역 보건 분야의 대응으로서는 그동안 진행되던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로부터 벗어나 블록화가 진행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팬데믹 국제 대응을 위한 보건의료 분야의 국제화와 바이오헬스 분야의 규제 완화를 언급한다. 원격 진료 문제, 유전자 조작 단계적 허용 문제, 개인정보 관리 규제 등을 보다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닥 잡고 있다.

공공의료의 원격 진료와 같은 비대면 디지털 전환 추세는 비대면 재택 경제, 화상회의 체제, 디지털 화폐 허용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5G나 반도체 관련 IT 산업 발전과 함께 진행되며, 온라인 쇼핑 등 신산업을 위한 규제 완화이기도 하다.

구체적 정부 정책으로는 한국형 사회안전망 강화, 보건의료 확대를 위한 누진세 확보, 양극화 심화에 따른 격차 해소 방안, 한국형 취업지원제도 및 저소득층 보호, 노약자 시설 강화, 기본소득 일상화 그리고 유전자 치료 규제 완화 및 개인정보 활용 논의가 있다. 이런 흐름은 소상공인의 퇴조가 예상되고 공공 보건 강화에 따른 세금 확보 등과 같은 상황도 필요하기에 다양한 층위의 고민이 요구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경기 침체를 직면한 정부의 고민은 대부분 현 코로나 사태에 대한 단기적 대응이다. 이는 드러난 현상에 대한 처방일 뿐으로서,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 인류가 직면하게 된 코로나 사태가 던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거리가 멀다.

생명의 순환과 공생을 우선으로 하는 농업·농촌의 가치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지난달 20일 전남 진도군 고군면 석현리 마을회관 앞에서 농어민 공익수당을 받은 주민들이 봉투를 들어 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한승호 기자
생명의 순환과 공생을 우선으로 하는 농업·농촌의 가치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지난달 20일 전남 진도군 고군면 석현리 마을회관 앞에서 농어민 공익수당을 받은 주민들이 봉투를 들어 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한승호 기자

생태적 가치에 대한 성찰 필요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산업화 속의 무한경쟁과 생산성에 우선 가치를 둠으로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나 노인 고독사,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의 근대사회를 ‘위험사회’라는 말로 표현했다. 코로나19 사태도 전형적인 위험사회의 한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절감했듯이 위험사회를 넘어서는 다음 시대의 기본 가치는 생명이며, 이는 ‘생명행복사회’를 통해 구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있어서 ‘생명과 생태적 가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근거한 미래세대의 새로운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 채, 사회경제 체제의 표면적인 재정비 내지 단기 정책만으로는 또 다른 팬데믹 위험 상황을 막을 수 없다. 푸코나 아감벤 등의 ‘생명정치(biopolitics)’나 기존의 녹색운동으로서의 생태주의보다 포괄적이고, ‘위험사회’에 대응하는 ‘생명행복사회’는 재택근무가 증가할 포스트코로나 시대에서 더욱 중요해질 여성의 역할과 함께 여성성이 보다 작동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무한경쟁과 세계화의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놓친 것이 생명의 가치라면 이제 우리 사회의, 지구상의, 방향을 ‘생태를 넘어 생명’을 논의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접근 방법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생명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고, 모든 지구 구성원이 대등한 지위를 인정하고 풀어갈 ‘생명 지혜’가 필요하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생명행복사회’에 대한 가치와 정책을 제시하고 준비하는 정권이야말로 한국의 미래사회를 이끌 것이다. 사회변화와 농업이 함께 할 때, ICT 첨단 기술적용에 대한 적극적 자세는 필요하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있어서 단기적으로는 농민수당제, 농산물 공공수급제 등의 정책은 시급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감소하는 농촌 인구를 생각하면 좋으나 싫으나 첨단 기술과 농업의 접목은 굳이 부정적으로 생각할 이유는 없다.

장기적으로는 요즘 거론되듯이 스마트팜에서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ICT 기술을 농업에 접목하고 농산물 유통 및 안전한 먹거리 관리 내지 지역 급식 체제와의 통합 추진을 통해 기본적인 안정된 생산 구조와 소비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이는 전문가에 맡기고 농업인들은 정책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생명 가치에 주목하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 발달의 기본 취지가 사람들의 삶을 보다 편안하고 안락함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공지능이나 산업자동화에 의해 일자리를 잃는 현실이 또 다른 생계 위협이 되기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에 쫓기지 않고 여유 있고 느긋한 삶을 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첨단 과학기술과의 접목으로 인한 실직 등의 상황 변경이 생존을 위해 열심히 노동해야 했던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느긋한 느린 생활(slow life)로의 전환이 되려면 요즘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모든 이에게 지급되는 재난 기본소득처럼 다양한 형태로 지급되는 각종 국민 지원금 등과 통합된 형태로 농촌 생활을 경제적으로 보장하도록 추진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코로나, 보편적 기본소득 추진해야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농촌 사회는 인류가 인간 자신과 생태계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생태계 구성원으로서의 동물과 생명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하는 가장 첨단에 선 분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사회 발전에 따라 노예제도가 개선돼 소유물에서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자리잡고, 여성이 남성과 같이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되찾아진 역사에서 보듯이 동물도 인간과 대등한 생태계 구성원으로의 기본 권리가 인정되는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의 새로운 농축산 가치이며, 생명을 위한 먹거리 분야가 시대의 기본이 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우리 인식 전환은 더 이상 성장률이 사회 발전 지표로 인식되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성장률이 아닌 ‘휴식률’로 사회 건강성을 알 수 있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런 포스트코로나의 새로운 시대는 국가가 양극화를 좁히면서 누구에게나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확실하게 추진해야 가능하며, 이런 시대에는 생명의 순환과 공생을 우선하는 농업이 공업에 밀려 후순위가 되는 사회가 아니라 그 무엇보다 존중되는 시대다.

위험사회로부터 생명행복사회로 전환돼야 하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있어서 기본봉급이 아닌 기본소득의 개념이 자리 잡음으로서 농축산은 생명사회의 근간을 유지하게 하는 기본 산업분야로서 위치된다. 농촌의 기본소득 체제 확립과 함께 코로나19 사태가 보여준 생명 가치 재발견을 통해 농업 현장은 비로소 소욕지족의 행복한 삶이 가능한 미래의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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