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위기상황에서 정부의 무관심은 핍박이나 다름없다. 마늘 폭락이 코앞에 닥쳤는데 정부 대책은 과거의 실패한 대책을 반복하고 있다. 재난급 냉해를 맞은 과수농가에 보험 보상률을 삭감하는가 하면 코로나19 대책엔 유독 농업부문만 빼놓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참여코자 자제하고 자제했던 농민들의 울분이 결국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박흥식)·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김옥임)·전국마늘생산자협회(회장 김창수)·전국양파생산자협회(회장 남종우) 등 4개 농민단체는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현대캐피탈 본사 앞에서 △농산물 가격보장 △냉해보상 현실화 △코로나19 농업대책 마련을 구호로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 띄엄띄엄한 대열 간격으로 치러진 다소 생경한 풍경의 집회였다.
박흥식 전농 의장은 대회사에서 “지금껏 농산물 개방정책으로 일관했으면 최소한 개방한 만큼의 농업 대책을 세우는 게 도리 아닌가. 정부가 끝까지 농민을 홀대하며 유령취급하고 있다”며 “더 이상 요구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자. 전국 농민들의 하나된 목소리로 농업을 살리고, 농민이 온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길, 4,000만 겨레가 바로서는 그 길에 함께하자”고 농민들을 고무했다.
김옥임 전여농 회장은 “전체 예산의 3%에도 못 미치는 농업예산을 세울 때부터 이 정부가 농민을 포기했다는 걸 알았지만, 코로나19 농업부문 대책 예산이 2차 추경에서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는 6월 3차 추경에서도 농업의 장기 전망을 담은 대책과 예산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궁지에 몰린 농민들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정상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이날 집회엔 폭락 위기에 노출된 마늘농가, 중국산 수입에 불안해하는 양파농가, 냉해 보상이 대폭 깎인 과수농가 등 농번기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400명의 농민들이 참석해 저마다의 답답한 심정을 호소했다. 현장발언에 나선 최재석 마늘협회 경남지부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올해는 좀 농정체계가 바뀌지 않을까 했는데 지금까지 바뀐 게 추호도 없다. 중국산 김치에 밀려 우리 양념채소가 이토록 푸대접을 받는 게 현실인데 정부와 국회는 농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 이런 식이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전남 영암의 배 냉해농가 강성환씨는 “올해부터 재해보험 냉해 보상률을 80%에서 50%로 낮췄다. 80%를 보상해도 부족한데 50%로 낮추면 어떻게 살라는 건가. 또한 과실은 한 번 상처나면 부패해 못쓰게 되는데 보험은 100%·80%·50%로 피해과를 구분해 보상한다. 이런 제도들은 반드시 원천적으로 없애버려야 한다”며 분개했다.
농민들은 결의문에서 △근본적 농산물 가격보장 제도 도입 △농작물 냉해 국가보상 강화와 대응체계 마련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농업피해 대책 마련을 주문했으며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 자연재해보상법 제정, 농민 정책참여 보장 등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덧붙여 양념채소류 가격안정을 위한 ‘김치자급률 목표치 법제화’를 별도로 제안하기도 했다.
집회 직후 농민 대표들은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장)을 만나 이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향후 국회와 정부 등에 요구안을 전달하며 그 실현을 위해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마늘협회는 농민대회를 시작하기 1시간 전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정부의 이번 제2차 마늘 수급대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관련기사 하단 링크). 김창수 마늘협회장은 “정부의 마늘 수급대책은 지난해 정책실패의 대안을 제시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정책을 그대로 되풀이함으로써 우리 농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며 “오늘 농민들은 마늘 가격 100~200원을 더 받으러 모인 게 아니다. 우리 농민들이 위임해준 그 권력, 농민과 국민을 위해 식량주권을 지키라고 위임해준 그 권력을 바로 쓰라고 모인 것”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