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우리 사회의 n번방

  • 입력 2020.03.29 18:00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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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다 죽여 버려야 해.” 딸들의 SNS엔 분노에 가득 찬 글이 넘쳐납니다. 다양한 국민청원엔 수백만명의 사람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단죄할 수 있을까?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소름끼치는 범죄가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일어났습니다.

아니 그전에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 했습니다. ㅇ양, 장자연, 버닝썬 등 당장 기억하는 사건들입니다.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은 그 어떤 죄를 지어도 권력만 있으면 용서가 되고 면죄부를 받고 처벌받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는 더욱 더 은밀하고 잔혹하게 범죄의 소굴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왜곡된 성의식, 성범죄에 대한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과 맞물려 우리사회 전반에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만연해 버린 듯합니다.

악마도 아니며 우리 주위에서 함께 생활하는 평범한 사람들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여전히 나를 향해 혀를 끌끌 차며 아들 하나 없는 것에 연민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성을 밥상에 올려두고 낄낄거리는 상황 또한 여전합니다. 술 한 잔이라도 여자가 따라야 맛있다며, 북어와 여성은 때려야 더 맛있어진다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 중심의 문화가 조금씩 조금씩 평등한 방향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 기를 쓰며 발악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n번방 가해자는 끝까지 피해자를 향한 사죄의 발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 어디에도 반성은 없었습니다.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유희의 도구로 여기며 사고파는 ‘강간문화’의 적나라한 현실이 n번방을 통해 송두리째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디지털 성착취는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명백한 살인범죄입니다. 일부 남성들은 n번방 사건 탓에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로 일반화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자칭 ‘n번방 안 본 남자들 일동’이라는 이들 네티즌은 ‘#내가 가해자면 너는 창녀’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할 수 없고 성평등한 사회의 진입을 거부하며 남성중심의 문화를 더욱더 공고히 하려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입니다.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노예화하며 자신의 권력욕을 과시하는 것처럼 바보짓이 또 있을까요?

n번방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우리사회 전반에 깊이 내재된 여성혐오와 폭력의 문제를 이제는 끝장내야 할 때입니다. 내 딸, 내 여자친구가 지금 바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내 아들이 가해자의 일원이 될 수도 있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성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그 어떤 행위도 이제는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디지털 성범죄법을 만드는 법사위원들의 회의록은 남성문화의 백미를 보여줍니다. 그들도 공범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욱 큰 충격의 디지털 성범죄, 다가오는 4월 총선 ‘단두대’에 무엇을 세울 것인지 역사적 판단을 해야 할 때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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