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없다. 계사 특유의 악취도, 대규모 산란을 위한 공장식 케이지도, 가온이나 점등을 위한 전기시설까지. 서천마산협동조합 자연양계 농장 중 한 곳인 벽오리농장은 일반 산란계 농장과 사뭇 달랐다. 겨울비가 내리던 지난 6일 충남 서천군 마산면 벽오리농장을 찾았다.
닭의 습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연양계, 그 법칙에 따라 만든 계사는 사방이 막힘없이 뚫려 있었다. 암탉과 수탉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계사 바닥은 발효 황토와 짚으로 만들어 폭신했다. 닭들이 자유로이 올라 홰를 칠 수 있는 횟대도 충분했고 암탉을 위한 산란상자까지 별도로 둬 유정란 생산을 위한 최적의 시설을 갖췄다.
협동조합 이사장이자 벽오리농장 대표인 박대수(48)씨가 집란을 위해 산란상자 문을 열자 알을 품고 있던 닭들이 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칸막이가 쳐진 계사 한 곳당 면적은 약 120㎡, 여기에 400수 정도의 닭을 키웠다. 1㎡당 9마리 이하 사육을 권장하는 동물복지농장보다 훨씬 넓은 사육 면적(한 마리당 0.3㎡)이다.
협동조합 회원들은 닭에게 먹이는 사료 또한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청치와 쌀겨, 볏짚, 황토, 고추씨, 석분, 팥 등 10여 가지 우리 곡물과 유기농 배합사료를 섞어 만든 NON-GMO 자가사료를 매일 한 번씩 닭에게 먹였다. 이날 만든 자가사료만 400여kg, 농장에서 키우는 닭 2,000수 정도를 충분히 먹이고도 남을 양이었다.
박 이사장은 “닭만큼 정직한 동물이 없다.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 유정란의 상태와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며 “자가사료를 먹고 자란 닭의 배설물은 퇴비로 사용한다. 자연스럽게 농사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계사 특유의 악취가 없는 이유도 자가사료를 비롯한 친환경적인 사육환경에 있다고 귀띔했다.
계사에서 거둬들인 달걀을 농장 근처의 협동조합 작업장으로 옮겼다. 작업장은 이미 다른 농장에서 갖고 온 달걀로 가득 차 있었다. 최영란 팀장과 권현식 팀장은 택배 물량 작업에 이른 아침부터 달걀 포장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권 팀장은 컨베이어 벨트에 달걀 한 판을 올려놓더니 형광등 불빛을 이용해 흠집이 나거나 깨진 달걀을 골라냈다. 최 팀장은 모든 검사가 끝나고 농장 바코드까지 찍힌 달걀을 여러 포장재에 나눠 담았다.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지 않는 한 끊임없이 달걀이 쏟아지는 탓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바쁜 와중에도 최 팀장은 “자연양계 유정란의 제 맛을 알려면 날계란을 먹어봐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날계란 하나를 깨 기자에게 건넸다. 맑고 투명한 흰자 위로 선명한 노른자가 도드라졌다. 일부러 우물우물 씹어 넘기자 비린내도 없이 입안에 고소한 풍미가 가득 퍼졌다.
자연양계 유정란은 농가들이 철저한 소량생산을 고집하는 탓에 일반 달걀보다 가격이 비싸다. 달걀 한 판(20알) 기준 1만1,000원(택배비 제외)이다. 박 이사장은 “닭과 농부 모두가 행복한 양계를 실천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더 많이, 더 빨리 등 순리를 거스르는 대규모 사육방식에 맞서 친환경적인 자연양계를 실천하고 있는 농부들의 가치에 대한 투자라고 여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혹, ‘그 조그만 달걀이 다 똑같지, 뭐가 다르겠어’라고 여긴다면, 일단 한 번 맛보시길! 충남 서천군 관내 학교급식에도 보급되고 있는 자연양계 유정란은 영양사와 학생들에게 더 인기다. 삶아도 구워도 “정말 맛있다”고 하니 1만1,000원 투자가 절대 과하지 않다. 그러니 이 맛, 궁금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