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마을의 한해 마무리, ‘대동계’
농촌 마을의 한해 마무리, ‘대동계’
  • 한우준 기자
  • 승인 2020.01.12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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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정신문 창간 20주년 기획 ] - 충북 진천 관지미의 1년⑬

 

‘대동계장’ 김기형씨가 김상만 노인회장과 함께 마을 통장을 들여다보며 한해의 수입과 지출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대동계장’ 김기형씨가 김상만 노인회장과 함께 마을 통장을 들여다보며 한해의 수입과 지출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날, 도시는 점점 팽창하고 농촌은 몰락해갑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농촌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농정>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려 연재기획을 시작합니다. 30년을 도시에서만 자란 청년이 1년 동안 한 농촌마을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경험을 공유하며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자 합니다.

아직 공동체가 살아 있는 농촌에서는 연말이 되면 흔히 ‘대동계’라고 하는 마을총회를 엽니다. 보통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권을 가지는 마을의 재산을 ‘대동계장’의 주재로 점검하는 자리가 됩니다. 지난 2019년의 마지막 토요일, 관지미에서도 대동계가 열렸습니다.

‘산업단지 저지 기념 마을잔치’가 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관지미의 마을회관은 다시 한 번 북적였습니다. 그새 달리 또 좋은 일이 생긴 것은 아니고, 이번에는 원래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 왔을 뿐이죠. 어디서건 사람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연말이나 연시에 총회를 하는데, 농촌에서는 그것을 보통 ‘대동계’라 한다고 하네요. 2019년 관지미의 대동계는 12월 28일이었습니다.

“서준석이는 스피커가 매달린 전봇대를 피해 얼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동계장이 회관에서 방송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는 이장이 하기 마련인데, 일 년에 한 번 마을 대동계가 있는 날만은 동계장이 주관인 만큼 그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데 이장이 에에, 하고 헛기침 몇 번 끝에 본론에 들어가는 것과 달리 동계장은 꼭 시끄러운 음악을 한바탕 틀고 난 뒤에 마이크를 잡았다. 그래야 마을 사람들이 집중을 해서 듣는다는 별 근거 없는 주장이 그의 변이었다….”

지금은 우리 신문에 ‘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를 쓰고 있는 최용탁 소설가가 2013년 경 연재한 장편 소설 ‘들녘’의 한 문단입니다. 연재를 막 시작하던 초기에 김상만 노인회장님으로부터 마을의 ‘자리’들을 배울 때 ‘대동계장’이 잠깐 언급 됐었죠. 마을에 사람이 제법 살았던 전성기 시절에야, 마을의 돈을 혼자 관리하는 대동계장이 속칭 힘깨나 쓰는 자리였겠지만… 지금의 대동계란 그저 연말에 한번 모여 정산을 핑계로 밥 한 번 먹는 자리에 불과한 모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적자면, 사실 관지미를 만나기 전에는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취재를 다니며 ‘대동계’라는 단어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창간한 지 20년이 된 우리 신문 이곳저곳을 뒤져봐도 최용탁 소설가의 글 말곤 대동계가 등장하는 기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 농업의 쇠퇴와 함께 대부분의 농촌에서 그 역할이 유명무실해진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의 농촌은 그 ‘밥 한 번 먹는 자리’의 가치가 예전과는 다르죠. 달리 보면, 그 핑계로라도 아직까지 대동계가 남아있다는 건 그래도 마을의 결속이 끈끈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마을 이장을 새로 뽑아야 할 경우 이 대동계의 날에 정한다고 하니, 어쨌거나 마을 최고의 의사결정기구 역할은 여전한 셈입니다.

오전 열시가 되자 관지미 마을회관에 하나둘 사람이 모여듭니다. 엄춘옥 부녀회장님을 필두로 몇몇 여성주민들은 오늘도 제일 먼저 나와서 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입니다. 물론 남성 주민들도 회관 바깥에서 아궁이 불을 때는 등의 보조는 하고 있지만 보건대 늘 음식을 하는 것은 거의 99% 여성 주민들의 몫입니다. 비록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 노고를 강조하고 챙겨주시긴 하지만… 이 풍경에 대해서는 나중에 여성인 유주영 이장님과 함께 따로 다룰 계획입니다.

마을회관 한쪽에서는 김상만 노인회장님과 함께 종이 통장 하나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수첩에 뭔가를 적는 이가 있습니다. 이장님의 남편 김기형씨입니다. 딱히 여쭤 확인하지 않아도 그가 대동계장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공동재산이 있다곤 하지만 마을에서 들어둔 적금이 전부, 대동계 당일 아침에 벼락치기를 해도 전부 파악이 가능할 만큼 통장의 입출내역이 적습니다. 마을의 활동량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죠. 작업이 끝나고 마을 사람 대부분이 모이자 김씨는 일어나서 보고를 시작합니다.

“에… 그러니까, 올해 수입은 적금 이자랑 원금 100만원해서 141만8,000원이 일반 통장으로 넘어왔고, 그 다음에 이제 뭐가 있느냐면 작년에서 이월된 것 146만원, 그리고 여행 경비 잔액이 원래 예상 지출로 한 150만원을 뺐는데 절반 밖에 안 써서 75만원, 오늘 한근석님이 20만원, 등 해서 총 수입이 382만원입니다.”

곧 이어지는 지출 내역을 보면 마을의 한 해 활동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지출한 건 딴 건 없고요, 노인회 회비랑 노인회장 여행경비로 11만원, 사회단체 기부금 10만원, 산업단지 현수막 38만원, 나중에 또 3만원. 이월면 체육대회 회비가 11만원, 마을 여행 경비가 75만원. 추석 식사 8만5,000원, 산업단지 문제로 농식품부 방문 갔을 때 경비로 6만8,000원, 얼마 전 현수막으로 또 30만원. 마을회관 태양광 장치 수리비 30만원, 그리고 오늘 식사로 12만7,000원으로 총 323만원 정도 지출이 됐고, 해서 현재 잔액은 일반 통장에 59만 7,765원, 정기적금 X,XXX만원이 있는 게 동네 재산으로 보시면 됩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주민들에게 마을의 한해 재정 결산을 보고하는 김기형 대동계장. 주민들은 봄에 전체 인원이 나들이를 가는 것으로 2020년 첫 지출 계획을 잡았습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주민들에게 마을의 한해 재정 결산을 보고하는 김기형 대동계장. 주민들은 봄에 전체 인원이 나들이를 가는 것으로 2020년 첫 지출 계획을 잡았습니다.

지난해 마을이 본격적으로 산업단지 저지 활동을 시작하면서 관련 지출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래도 워낙 돈을 쓸 일이 없었고 더군다나 그 전 해에는 대부분의 금액을 남긴 나머지 씀씀이가 늘었어도 여전히 흑자입니다. 대동계에 새로 참여한 인사도 한 몫을 했죠.

이날 대동계에서는 한근석(63)씨가 처음으로 마을에 인사를 했습니다. 한씨는 경기도 용인에서 축산업을 하고 있었는데 주변 민원을 신경 쓰다 결국 10년 만에 터를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을진입로를 기준으로 관지미를 남북으로 구분했을 때 북쪽 끝에 새로 들어선 축사가 바로 한씨의 것입니다. 그런데 축사를 짓자마자 산업단지 얘기가 들려오는 바람에 거주지는 아직 옮기지도 못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적금을 통해 마을의 기금이 제법 쌓인 현재는 구성원들에게서 ‘곗돈’을 따로 걷지 않고, 새로 전입하는 가구에게서만 찬조금을 받는다고 합니다. 즉 한씨는 아직 관지미에 집은 얻지 못했으나 이날 부로 관지미의 일원이 된 셈입니다. 한씨와 밥상을 함께한 마을 어른들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환영했습니다.

그래도 ‘대동계’란 이름 때문인지, 그 동안 뵙기 어려웠던 마을 어른들께도 오랜만에 얼굴 도장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주말마다 신옥순 할머니를 찾는 장남 신경재씨와, 농사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좀처럼 마을회관으로는 눈길 주지 않는 김홍덕씨, 윤영중씨의 아내 유경애씨도 처음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신씨를 제외하고는 아직 인터뷰를 하지 못한 어른들이기도 합니다. 한창 추청(관지미에서 주로 심는 벼 품종)의 작년과 올해 쌀값 이야기가 터져 나온 것을 기회 삼아 어르신들을 찔러봅니다.

“어르신들, 올해 못자리는 언제하세요?”

“4월 15일쯤. 그 때서부터 한 20일쯤 사이지.”

“못자리 하실 때 저 구경 좀 가도…?”

“…”

겨울이 가고 봄이 와, 이것저것 하느라 바빠질 때쯤 ‘밀착취재’가 가능하겠느냐 요청 드리지만,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들이십니다. 그래도 늘 웃으며 제 인사는 받아주시는 모습에서 언젠가 마음을 열어 주시리란 희망을 (애써) 품어봅니다.

“맨날 동네 숙원 사업 신청하라는데, 생각나는 게 없어. 그거 하구, 놀러가자구요? (가야지~)아니 우리 아줌니들, 동네 여행 가, 또?”

“예전에 4월 초에 가지 않았었나? 아, 못자리하고 갔던 것 같다.”

“4월 15일 투표 얼른 하고 단체로 가.”

대동계의 마무리는 이장님이 짓습니다. 산업단지 반대 운동 같은, 최근 생긴 ‘별일’을 빼면 그저 나들이 한 번 잘 갔다 오고 가끔씩 맛있는 밥을 다 같이 먹는 것이 대동계를 잘 굴리는 거라 할 수 있겠죠. 정확히 언젠지, 어디론지도 정해지지 않았으나 어쨌든 4월 언젠가 즈음 꽃을 보러 가는 것은 확실해진 것 같습니다. 다 함께 모여 내년을 바라보는 마을의 2019년 마지막 일정도 이렇게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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