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더위에 염장 지르는 소리
이 더위에 염장 지르는 소리
  • 이중기
  • 승인 2008.07.07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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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저거를 우야노. 가시나 보지 째지듯이 다 째진다. 야가 약을 잘몬 쳤나. 올게는 벨시럽게 터지네. 마 작대기로 두드려뿌고 말지, 저게 무신 돈 되겠노.”

오전 내 풀을 베고 땀범벅이 되어 나오는데 어머니가 복숭아밭 들머리에 퍼질러 앉아 하염없이 타령을 늘어놓는다. 안 그래도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이 더위에 어머니는 염장을 지르고 있다. 힐끗 돌아보니 조생종 천도가 쩍쩍 갈라져 있다. 올해는 복숭아좀벌레 탓에 도장지가 별로 발생하지 않아 햇볕을 많이 받으니 더욱 심하게 갈라진다. 베어버려야지, 베어버려야지 한 것이 벌써 몇 해째, 망설이고만 있다.

“올해는 복상 따자마자 비뿌라. 안 볼 수는 없고, 해마다 저 꼬라지 볼라카이 피채이가 터진다. 어떤 호로자슥들이 저따구 종자를 팔어처묵노. 에, 망할 늠들!”

어머니의 분노는 이제 묘목상인에게로 넘어간다. 길 건너 포도밭에서 앞집 형수가 일하다가말고 어머니 곁에 와 앉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케 말이시더. 우리도 어제 약하러 가보이까 어떤 늠이 도끼로 찍어 놓은 거 같이 짝짝 갈라져 있는데 식겁할 노릇이더마. 세현이 아부지요, 올해는 와 이카는기요?”

“그 놈이 누구겠노. 짓기 싫은 농사 지으라카이 형수 영감이 도끼로 찍었겠지 머.”

“지랄한다. 우리 영감이 와 그라까바.”

태환이 형님은 작년에 평당 만 원이 넘는 보상을 받으려고 복숭아 폐원 신청을 해서 선정이 되었는데 지난봄에 포기를 하고 말았다. 직장 다니던 스물다섯 살 둘째딸이 뒤늦게 전문대에 들어가고, 전문대를 졸업한 막내아들이 4년제 대학 3학년에 편입하는 바람에 형수가 농사를 더 지어야 한다고 한사코 우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세현이는 공납금 내라고 연락 안 왔던기요? 참말로 식겁하겠다. 올 농사 지어가 돈 십 원 한 푼 몬 샀는데 돈 달라는 소리사 언가이도 일찍이도 하는기라, 3백만 원이 훨씬 넘더라. 이 가시나 눈에 눈물 흘리는 거 안 볼라꼬 하이 등골이 휜다.”

두 여자 타령은 죽아 돌아간다. 나는 씻으러 가다말고 죽치고 앉아 담배를 꺼내 문다.

“그케, 아가 다섯이나 되는데 여간 벌어가는 부모 짓 몬한데. 어제 아침에는 까스가 떨어져가 불렀디 세상에 4만 원이나 달라고 하는기라. 참 식겁할 노릇이제. 니도 인자는 전지했는 나무 남 주지 마라. 밥도 나무 때가 해묵어야지, 이래가사 우예 살겠노.”

“아이고, 그만치나 올랐던기요? 씨발, 보자 보자하이 해도 너무 하네. 인자는 겨울에 몸 베루지 말고 어디 가가 돈을 벌어야지 복상 팔고 포도 팔어가야 우예 살 수가 있겠노.”

“봄부터 가을까지 그만치나 설쳐댄 몸, 겨울에 안 베루믄 이듬 해 농사는 우예 짓노.”

“그래도 우야는기요. 새끼들 공부나 끝내줘야 허리 좀 필란가.”

“하이고, 공부마 시키믄 되나. 시집보내고 장개는 우야고?”

“그케요. 세현이 아부지도 좀 더 살어바라. 종문이까지 대학 가믄 식겁 할끼다. 아이고, 아부지요 참말로 고생했니더, 소리가 저절로 나올끼다. 아이까지는 천지도 모리고 깨춤을 춘거지. 그때 되믄 담배도 끊는다고 할끼라. 아이 더 살어바라. 내 말 맞제?”

맞다. 나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하늘을 본다. 더 살지 않아도 허리가 휘는 모습이 보인다. 이홉들이 소주가 비싸 대병으로 사다 마시는 태환이 형님이 몇 년 후 내 모습일 것이다. 형수의 성화에 못 이겨 담배를 끊고는 자주 내 담배를 축내며 느그 형수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하는 형님에게서 나는 자주 생의 비애를 느끼곤 한다. 고통이 없는 생이 있을 수야 없겠지만 농사꾼들처럼 외부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가해지는 고통은 너무 가혹하다. 그러나 이 무지렁이 촌 아지매는 그것을 모른다. 지난 십 년을 빼고는 언제나 정부에 순종했고, 복종을 한다. 그것만이 영남무림 추종자의 미덕이다.

“세현이 아부지는 아래(그저께) 촛불 데모하는데서 또 마이꼬 잡았다메? 그카믄 안 된다. 명박이가 대통령 한지 얼매나 됐다고 그카노. 두고 바라, 잘 하끼다.”

이 더위에 또 염장 지르는 소리. 나는 재빨리 장화를 벗어 던지고 목욕탕으로 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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