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겨울 하늘 별빛은 초롱초롱하다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겨울 하늘 별빛은 초롱초롱하다
  • 최외순(경남 거창)
  • 승인 2019.12.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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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12월이다. 한해 농사가 끝이 났다. 11월은 추수를 통해 걷어 들인 농산물을 팔고 정리하며 한해살이 살림을 다시금 살펴보게 된다.

쌀농사, 사과농사, 농사소득에 대한 셈법은 이렇다. 우리 집 농민은 “그냥저냥 농사가 이런 것이지”라며 체념하고 우리 집 여성농민은 “요리조리 꼼꼼 따져보면 농사가 이리 답답한 것인가” 걱정만 된다. 젊어서 버텨낼 수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퇴직금이 쌓이는 것도 아니고 연금이 쌓이는 것도 아닌 농사. 15년간 희망고문 하듯 시작되고 낙담하고 희망하고 절망한다.

작년부터 포도농장을 만들어 포도농사를 시작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온창고 보조를 해준다는데 저온창고를 신청해야 하는지? 자부담이 얼마가 들어갈 것인지? 묻는다. 계속되는 투자가 부담되고 포도를 수확해도 얼마의 수익이 보장될 수 있는지 막연하고 불안하다는 이야기이다. 으레 농사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따라오는 것쯤으로 여기기에 겪어야 될 과정을 생각하니 불현 듯 설움이 스친다.

전화통화의 마무리는 “그래도 농업이 미래 산업이라는데 기후변화가 도래하면 식량문제가 가장 걱정인데 길게 보고 우리 자식들 세대를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서 해봐야 되지 않겠느냐”였다. 그러나 정작 내 자신도 그렇게 진심으로 생각하고 확신하는지. 이런 말이 무책임한 말이 아닌지 되물어 본다. 마음 속 고함소리는 좁은 벽을 마주하고 주고받듯 반복된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을 선택한다는 것이 무슨 죄도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고난의 연속이다. 농사과정이 고행이고 농사의 결과가 고난인 세상이 정상이란 말인가.

십 수 년의 농사살림은 마치 밑 짚단을 빼서 윗 짚단을 쌓는 것처럼 겉모습은 커지고 부풀어 오른다. 그 사이에 놓인 구멍은 점점 커지고 큰 짚단은 엉성해지고 헝클어진다. 해를 거듭하다보니 어느새 청년은 중년이 됐고 의욕적이던 몸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고 어느새 빚도 자산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공익형직불제 또한 우리네 농사살림을 닮았는지 꼭 밑단을 빼서 윗단을 쌓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기분 탓인가. 농촌을 유지하기 위해 겸업농, 부업농, 은퇴농을 유입하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농업을 업으로 여기며 살며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은 농민들에게 미래를 보장해주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농촌은 희망이 있는 곳이고 유지될 수 있다.

근본적인 농업의 역할 즉 식량을 생산하고 그 식량의 든든한 보장 속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설계하는 것. 그래서 식량은 안보가 되고 미래이기도 한 것이 아닌지, 중학교 사회만 배워도 대충은 알고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 것을 외면하는 무지와 무책임은 왜 그렇게 우리사회에서 당당한 것인지 따져 묻고 싶다.

12월, 농사는 길고 수확은 간단하고 극복해야 할 고개는 끝이 없다. 차가운 겨울 하늘엔 별이 더 선명하게 반짝거린다. 어둠이 내리고 차갑게 가라앉은 겨울공기를 느끼며 맑게 빛나는 별빛을 볼 수 있어 여전히 행복하지만 농민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 다만 별빛 하나여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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