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일자리 만든다고 농촌이 살아납니까?”
“공장 일자리 만든다고 농촌이 살아납니까?”
  • 한우준 기자
  • 승인 2019.12.08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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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정신문 창간 20주년 기획 ] - 충북 진천 관지미의 1년⑪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관지미와 마주보는 미잠리와 바로 붙은 이월전기전자농공단지 입구. 이 길로 들어서면 농촌도, 도시도 아닌 애매한 풍경이 나타납니다.
관지미와 마주보는 미잠리와 바로 붙은 이월전기전자농공단지 입구. 이 길로 들어서면 농촌도, 도시도 아닌 애매한 풍경이 나타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날, 도시는 점점 팽창하고 농촌은 몰락해갑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농촌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농정>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려 연재기획을 시작합니다. 30년을 도시에서만 자란 청년이 1년 동안 한 농촌마을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경험을 공유하며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자 합니다.

관지미는 진천군의 산업단지 조성 계획의 예정부지로 꼽혀 마을이 없어질 위기라고 전했었지요. 사실 관지미를 덮칠지 모를 그 산업단지 외에도 이 일대에는 이미 많은 공장들이 들녘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농촌에 농가와 들녘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 너무 많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전달해봅니다. 

관지미를 다닌 지 어언 6개월이 됐습니다. 최소 2주에 한 번, 잦으면 한 주에 두 번도 갔으니 아마 모르긴 해도 마을 사람이 아닌 이들 중에선 지금껏 관지미에서 찍은 방문도장 수가 상위권은 되리라 스스로 추켜세워 봅니다.

수도권 서남부 소도시인 경기도 군포시에 살고 있는 제가 관지미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농촌을 들여다보는 기자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빚까지 내며 차를 사지 않았더라면 아마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 취재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만 이번 일은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 아닐까 돌아봅니다.

차가 막히지 않는 시간에는 쉬지 않고 달렸을 때 한 시간 반이면 관지미에 닿을 수 있으니, 서울의 사무실까지 출근하는 시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만약 훨씬 더 먼 곳의 마을이었다면 다른 일도 병행해야 하는 제가 이렇게 자주 들락날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겠죠. 진천군까지 최단거리로 뻗은 도로가 없기 때문에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하지만, 그 끝은 항상 평택-제천고속도로의 북진천 나들목(IC)으로 동일합니다.

그런데 이 나들목은 농촌 지역으로 들어가는 다른 나들목들과는 달리 첫인상이 조금 특별했는데요, 줄지어 선 화물차들 뒤에 저도 줄을 서서 짧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야 완전히 나들목을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잘못 입력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거기에다 이후로는 여러 차례 위험한 순간을 목격했고, 또 직접 겪기도 했습니다. 커다란 화물차들이 서로 들이받아 손상된 채 멈춰서 있는 현장을 슬금슬금 조심하며 지나간 것만 두 차례. 하루는 앞선 화물차의 높이와 복잡한 교차로 구조 때문에 전방 시야를 완전히 확보하지 못해 바뀐 신호를 그만 못 보고 말았죠. 결국 다른 방향에서 출발을 시작한 화물차 앞을 (굉음의 경적소리를 들으며) 간신히 지났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곳에서 난 사고는 얼마 전 포털 뉴스 가판대에도 크게 오른 적이 있고,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위험하다며 원성이 자자한 곳이었습니다. 종일 너무 많은 통행량. 그 상당수를 차지하는 화물차들. 그리고 그 원인의 끝엔 진천 북쪽에 들어선 수많은 산업단지들이 있었습니다.

나들목에서 가장 가까운 순으로 광혜원농공단지, 이월전기전자농공단지, 이월농공단지, 이월산업단지, 신척산업단지 등 일일이 세기도 어려운데요, 나들목을 벗어난 뒤에도 관지미에 다다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차례 왕복 2차선 도로 반대 방향에서 달려오는 화물차 때문에 긴장을 하곤 했습니다. 특히 곡선 구간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진천 북쪽 지역의 관문인 북진천 IC 앞은 항상 화물차들로 북적입니다. 17번 국도와 맞붙는 이 교차로는 항상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있습니다.
진천 북쪽 지역의 관문인 북진천 IC 앞은 항상 화물차들로 북적입니다. 17번 국도와 맞붙는 이 교차로는 항상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있습니다.

 

수도권에 사는 제가 이토록 관지미에 닿기 쉬운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일대는 두말 할 필요가 없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고속도로 두 개의 교차점을 지녔고 전 국토 어디와도 크게 멀지 않죠. 너른 평지도 곳곳에 있으니, 지자체의 의향만 있다면야 산업자본을 끌어들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천군은 1990년대 전후 조성된 소규모의 낡은 농공단지보다 몇 배는 더 큰 산업단지들을 계속 유치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25년에는 인구 15만의 ‘시’로 승격을 노린다며 지속적으로 홍보 중이죠. 관지미를 부지 삼아 지어질 ‘진천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역시 그 연속선상에 있는 계획으로, 35만평에 이르는 방대한 크기로 지어질 예정이었죠.

그러나 관지미 어르신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 입장에선 으레 이런 개발 사업이 날벼락에 가까운 일이 되곤 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선 관지미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미잠리의 이장님, 송관섭씨가 좀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계시다하셔서 말씀을 청해들었습니다.

“논을 가지고 농사짓는 사람들은 태반이 남의 걸 가지고 짓는 사람들이에요. 산업단지 지어버리면 농사지을 땅을 없애버리는 건데 그렇게 되면 60 넘게 먹은 사람들이 이제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평택-제천고속도로가 연장공사를 하며 진천 북쪽에 닿을 때, 미잠리 사람들은 그 고속도로에 집과 땅을 내어주고 단체 이주를 한번 겪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마을 옆에는 얼마 후 또 이월전기전자농공단지가 들어섰죠. 대부분의 농민은 어렵게 구한 임차농지로 농사 지어 소득을 얻는데, 이러한 개발사업은 농민들의 경작권을 너무나 쉽게 무력화하는 게 문제라고 송 이장님은 강조했습니다.

“나라에서 하는 사업으로 큰 기업 유치하면 관리라도 잘 하고 그나마 나은데, 보통 민간 유치다보니까 무슨 공장, 업체 많이 들어와서 복잡하고 이래저래 피해 주고…. 또 그거 짓는다고 하면 한동안 시끄럽고 먼지 날리죠. 왜 먼저 살고 있는 주민들 생각은 안 하는 건지….”

5년 전 이월면 동성리 동곡마을에 귀촌한 남중우 씨도, 원래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왜 공장을 들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 동네는 주택이 반, 공장 반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라고 하소연합니다.

“이월면이 살기 좋은 줄 알고 5년 전에 귀촌했죠. 근데 그 5년 사이에만 해도 주변에 공장이 엄청 생겼어요. 운영이라도 잘 하면 모를까, 공해도 심하고요. 군에서는 절대농지가 아니고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했으니 허가를 줄 수밖에 없다고 하고. 우리로선 힘이 없으니 별 수가 없죠.”

관지미를 오래 다니다보니 이월면 쪽엔 단골로 가는 식당들과 편의점도 생겼습니다. 관지미 인근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할 경우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죠. 하다못해 담배가 떨어져도요. 기회 삼아 농업을 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어떤지도 살펴봅니다.

“근처에 혁신도시도 들어서고, 교통량이나 이런 것들을 봐도 그렇고 제가 처음에 올 때랑은 많이 달라졌죠. 그런데 이 안, 이월면 안에서 보면 솔직히 별로 발전은 없어요. 십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없어요.”

“그러면 느껴지는 변화는, 그냥 오가는 사람만 많아졌다?”

“그렇죠. 저도 언젠가는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고, 애가 좀 크면 청주나 어디로 빠져나간다든지. (교육 문제 때문에요?) 네. 여기는 중학교까지는 그래도 다닐 수 있는데, 고등학교부터는 아이가 힘드니까 보통 학군이 있는 쪽으로 가려고 하죠.”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한 아이의 엄마로부터 10년 동안 느낀 이월면의 변화를 물어봅니다. 이날로 아마 네 번째로 점심을 먹으러 갔었던 내촌리의 한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분이죠. 담배와 캔커피를 사러 자주 들르는 길 건너 편의점의 청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3년 전 편의점 창업을 하며 청주에서 들어온 그 역시 유동인구가 늘어 매출에는 도움이 됐다면서도 이곳에서 사는 것에 대해서는 ‘훨씬 불편하다’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입니다.

청주에 살다 관지미로 돌아 온 김영창·엄춘옥씨 부부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먼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김씨 또한 오랜 시간 이곳의 회사를 다니면서도 청주에서 살았고, 진천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이들이 모두 장성하고 제 밥벌이를 마련해 독립한 뒤에나 생각해볼 수 있었죠.

당장 인구가 늘어날 수는 있어도, 군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그것이 지역의 미래로 그대로 연결된다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들녘과 아스팔트, 농가와 공장 건물이 마구 뒤섞여 있는 농촌의 모습에서,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남들처럼 똑같이 살아보려 애쓰지만 속은 곪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지난 10년 동안 진천군의 인구는 벌써 2만 명 넘게 늘어났지만 이월면에서는 올해 이 시점까지 아직 단 한 건의 출생신고도 없었다고 하니, 이것은 올바른 접근법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사람 중심의 친환경 미래도시 생거진천’이라는 진천군의 표어 아래 수많은 공장들의 이정표가 붙어 대조를 이룹니다.
‘사람 중심의 친환경 미래도시 생거진천’이라는 진천군의 표어 아래 수많은 공장들의 이정표가 붙어 대조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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