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사 그만 지을 수 있는 기회
[기자수첩] 농사 그만 지을 수 있는 기회
  • 한우준 기자
  • 승인 2019.11.03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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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대구에는 공항이 있다. 본래 공항은 도심에서 적당히 먼 곳에 있었지만, 도시는 수십 년 동안 농촌의 인구를 빨아들이며 팽창을 거듭했다. 결국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시가지는 시 외곽까지 잠식해나갔고, 결국 활주로 바로 옆에도 다세대주택과 아파트가 늘어서있는 기이한 형국이 됐다.

공군비행단의 활주로(K-2)도 겸하고 있는 이 공항에서는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서 이착륙 소음이 가장 시끄러운 항공기가 뜨고 내리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도입된 이후 대구공항에 배치된 최신예 전투기 F-15K의 소음은 민항기는 물론이고 여느 군용기와도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 꼭 이곳이어야 했을까 싶지만, 독도 영공을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비행장이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0년도 안 돼 공항 이전 여론이 형성됐고, 시달리던 대구시는 결국 장고의 노력 끝에 지난 2017년 공항과의 작별을 허락받았다. 그런데 공항은 아직 어디로 갈지조차 정해지지 못했다. 놀라운 건 이 공항을 받고 싶어 하는 지역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 공항을 탐내는 두 지역이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탓이다.

국방부가 공항 이전 최종 후보지로 지정한 경북 군위군과 의성군은 지금 공항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소멸 위험’ 순위 최상위권에 나란히 자리한 두 지자체는 (대구 입장에서는) ‘혐오시설’인 공항의 이전·유치만이 지역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라 굳게 믿고 있다.

서로 경쟁하듯 전담부서까지 신설해 공무원을 배치하고 직접 찬성여론을 주도하는 와중에 농토와 녹지를 지키고자 하는 다른 한편의 목소리는 묻혀 사라졌다. 각종 시민단체의 이름이 적힌 채 군내를 뒤덮은 현수막들이 하나같이 통일된 디자인을 품고 있는 모습은 민주주의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과 함께 오싹한 느낌마저 든다.

공항이 어디로 가든, 또 한 번 수백만평의 농지와 산림이 사라질 예정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농업을 살려보려 하지 않고 공항 유치를 선택한 군정이야 비난할 수 있을지언정, 어찌 이에 찬성하고 동조하는 농민들까지 쉬이 비난할 수 있으랴. 분명 유치 여론 형성에 행정이 개입했지만, 고된 삶에 지친 농민들은 사실 이제 아무래도 좋은 것 같았다. “공항이 들어와서 이주하고 보상 받으면 이제 이 힘든 농사 안 해도 돼서 너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하며 들깨를 털던 도암리 고령농민들의 바람 속에서 우리 소농과 농촌의 현실이 또 한 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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