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정부의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목전에 둔 농민들이 마지막으로 절규했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들릴 뿐이었다. 농민들은 이틀 연속 광화문을 찾아 정부청사의 문을 두드렸으나, 대답 없는 저편을 보며 결국 울분을 담은 채 농촌으로 돌아갔다.
기획재정부는 25일 오전 8시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여부를 결정한 뒤 9시에 관계부처 합동 언론 브리핑에서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WTO개도국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농민공동행동, 공동대표 박행덕‧임영호)’의 농민단체 대표자들은 이날 오전 7시 30분 경 청사 앞에 모여 항의행동을 시작했다. 본관이 아닌 별관에서 회의가 진행된다는 소식에 농민들은 별관 정문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한동안 별관의 차량 출입이 제한됐다.
농민들은 정문 앞에서 바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은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의 발언이 진행되는 도중 농민들을 방패로 밀어내고 끝내 차량진입로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농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등 소란이 일었다.
박 의장은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농민들이 받아들이면) 정부가 이번에도 뭔가 주겠다는 언질을 하고 있지만 농민들은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폐기처분될 것이라는 걸,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다”라며 “이 같은 행위가 농민들과 협의 없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 농민공동행동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농민들은 막다른 골목에 놓여 있고,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혔다.
임영호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트럼프 말 한 마디에 아무런 조건이나 협상 없이 그렇게 갖다 바치는 걸 우리가 묵과할 수 있나”라며 “포기 발표 순간 이후 트랙터 몰고, 황소 끌고 광화문에 모여 청와대로 갈 것이다. 어떤 행동으로 이 정부에 답할지 보여주겠다”고 어제에 이어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김옥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장관들이 하루 세끼 밥을 먹는다면, 농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현장을 가는 사람들이라면 오늘 이 자리는 있어서는 안 된다. 태풍 불어 다 쓰러진 밭에서 울고 있는 농민들 밭에 가야 맞고, 농산물 값에 자살한 농민 유골함 앞에서 미안하다 해야 맞다”고 절규했다.
농민공동행동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계속되는 수입개방정책으로 국내 농산물 값은 연쇄폭락을 맞았고, 농지투기정책은 과반 수 이상의 부재지주를 낳았다. 농가소득 대비 농업소득 비율, 국가예산 대비 농업예산도 역대 정권 중 최저치를 찍었다. 한국농업은 적폐농업정책으로 무너져 버린 지 오래”라고 되짚었다.
이어 “이 상황에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것은 한국 농업을 미국의 손아귀에 갖다 바치겠다는 것이다. 국익은 통상주권을 지켜내는 것부터 시작되며 농업을 살리는 것은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문재인정부가 기어코 농민의 애원을 무시하고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한다면 우리 농민들은 강력한 투쟁으로 응답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한편 정부는 9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결국 WTO 개발도상국 지위의 포기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