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쓰러짐으로 끝나지 않는다

  • 입력 2019.10.20 18:20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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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추수를 해야 하는 가을날 노오란 파도를 만들어내야 하는 벼들이 연이은 태풍에 쓰러졌다. 달라붙듯이 땅에 납작하게 누워버린 논도 있고 이리저리 뒤엉킨 논도 있고, 와중에도 말쑥하게 꼿꼿함을 유지하고 시원스럽게 흔들리는 논도 있다.

곡물 통을 실은 트럭을 농로에 세워두고 타작하는 풍경을 지켜보자니, ‘또 걸리나’하는 불안과 걱정이 반복된다. 논에 납작하게 누워버린 벼줄기는 든든한 콤바인도 멈추게 한다. 농사지은 논 주인의 미안하고 애타는 표정과 타작해주는 남편의 답답한 표정이 각자의 허공으로 비껴서고 두 사람의 손은 뒤엉킨 지푸라기를 잡아내기에 바쁘기만 하다.

곡물트럭 그늘에서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엇을 할지, 벼 쓰러짐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막연하다. 해마다 이런 일 저런 일, 농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하늘이 도와야 되고, 세상이 마땅히 알아줘야 그나마 농사일에 대한 가치를 보전 받을 수 있다.

벼 쓰러지고, 타작이 어려워지고, 기계가 자주 멈추고, 고장 나고, 시간이 더 걸리고, 보조 인건비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더 나가야 되고, 젖어 있는 땅에 쓰러진 벼의 이삭은 싹을 틔우기도 하고, 알이 덜 차서 허무하게 왕겨로 날아가는 양은 많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벼 재해보험의 피해산정과 보상은 어떻게 된다는 건지 설명을 들어도 선뜻 셈법이 이해가 되지 않고 보상율이 너무 낫다는 소식만 들릴 뿐.

올해 처음으로 토종벼 작목 모임 ‘벼꽃’공동체를 구성해서 토종벼 6종을 심었다. 채종포 120평과 무주도 150평, 공동체지원농업 공동 손모내기로 심은 노인도 200평, 다다조 200평, 다백조 500평을 심었다. 모두 4곳의 논에 심은 토종벼들의 모습은 각각 다르고 키가 큰 편이지만 다행히 150평 무주도와 화도를 제외하고는 쓰러짐이 심한 곳은 없었다.

농사짓는 품종이 다양하다면 자연재해에도 위험이 덜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년부터 이곳 거창에서는 수매하는 품종이 추청벼라고 하는데, 추청벼는 비바람에 약하고 잘 쓰러져서 이상기후가 심해지는 요즘에는 수매품종으로 부적합하지 않는가라는 걱정을 한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품종을 보급하기 위해 농가에서 시범재배를 할 수 있다고 하니,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된다.

종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육성하듯 이제는 우리사회에서 희귀해져만 가는 여성농민과 농민의 소멸을 보기 전에 그 눈부신 노동과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역할이 필요하다. 농민이 재해로 쓰러진 벼를 일으켜 수확하듯 정책도, 재해보험도 할 일은 해야 하고, 농민의 고민을 감당해내야 되지 않을까. 그들의 몫이자 책임인 것이다.

쓰러져도 끝이 아니기에 농민은 거기서부터 다시 감당하고 삶을 이어간다.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라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생각나는 하루, 오늘도 해냈으므로 농민은 아름다고 눈부시다. 농업정책도 재해보험도 눈부시게 활약할 11월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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