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거버넌스와 예산부터 갖추자

  • 입력 2019.10.20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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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반복되는 채소값 폭락에 지난 7월 대통령의 입에서 ‘가격안정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왔고, 이후 정부가 채소 수급정책 개선에 한창 골몰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농식품부의 ‘산지 압박형 면적조절’ 시도로 인한 한 차례의 소란 외엔 이렇다 할 뭔가가 보이지 않는다. 희망보다는 걱정과 답답함이 앞서는 상황이다.

수급정책 개선에 앞서 반드시 준비돼야 할 것으로 두 가지를 꼽고 싶다. 하나는 품목별 농민단체의 정책 참여다. 전국의 수십 수백만 농민들을 아울러야 할 농산물 수급관리엔 조직력을 갖춘 품목별 농민단체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책 민주화 개념을 떠나 단순히 정책의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품목 농민단체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끌어들여야 한다. 만성폭락 상황에서 생산을 조절해보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다.

최근 정부가 의무자조금을 매개로 품목단체의 손을 잡으려 하고 있지만 품목단체 일각에선 의심의 눈길이 걷히지 않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수급개선 밀실 TF 구성과 일방적 면적조절 압박으로 물의를 빚었던 정부이기에 어쩌면 당연하다. 자조금과 상관없이 우선 최대한 신생 품목단체들을 지원하고 정책파트너로 끌어올려 처음부터 모든 논의를 함께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다른 한 가지는 당연하게도 예산 확충이다. 산지 압박형 면적조절 강요도 결국은 예산 부족이 초래한 자충수다. 새로운 정책은 고사하고 기존의 주요 수급정책인 ‘채소가격안정제’조차 예산 부족으로 한 걸음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채소가격안정제는 그동안 수급조절에 필요한 물량을 확보해본 적이 없는 농식품부가 처음으로 그것을 확보하고자 의욕적으로 마련한 정책이다. 이미 만들어진 핵심 정책조차 예산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책을 마련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은 마냥 공허하게만 들린다. 정말로 수급정책 개선 의지가 있다면 필요한 예산부터 쥐어줘야 할 일이다.

거버넌스와 예산. 생각건대 지금 정부의 수급정책 개선이 뭘 하든 뜻 같지 않은 것은 가장 먼저 갖춰져야 할 이 두 가지가 결여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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