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주권 운동은 문화·공동체·여성/농민 운동이다

  • 입력 2019.10.13 18:00
  • 수정 2019.10.14 11:47
  • 기자명 오미란 (전)젠더 & 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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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란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여성정책팀 과장 / (전)젠더 & 공동체 대표
오미란  (전)젠더 & 공동체 대표*

식량주권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일까? 우리가 쌀도 자립한다는데…(현재는 자립도 85%). 의아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대의 밥상을 분석해 보라. 국내산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아마도 25~30% 정도면 감지덕지일 것이다. 보조금의 산물로 저가로 물밀 듯이 들어오는 수입농산물이 이제는 식탁과 우리의 내장을 휘젓고 들어와 주인인양 버틴 지 오래이다.

그렇다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의 식량주권 운동이 단순히 우리농산물 먹기라는 얘기는 아니다. 전여농의 식량주권운동은 내부자료에 ‘식량주권운동은 <문화운동, 공동체운동, 여성운동, 여성농민운동이다. 식량주권은 처음으로 종자를 발견하고 농사를 시작하였으며 전 세계 식량생산의 70%이상을 담당하면서 땅, 물, 종자, 전통지식, 전통문화를 만들고 발전시켜온 여성농민들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존중하고 실현하는 운동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생태 페미니즘적 내용을 담고 있다.

누구의 주권인가?

식량주권은 그동안 생산수단으로부터 소외당해온 여성농민들과 농민들이 씨앗이라는 생산수단을 농기업으로부터 찾아오고 자가채종, 육종한 우리의 토착화된 씨앗의 권리가 농민들에게 있음을 알려내는 사업으로 규정하고 유전자원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은 땅과 노동 그리고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식량주권의 실천은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할 권리를 가진 소비자와 함께하는 먹거리 주권운동이고, 자유무역을 지원하는 WTO, FTA를 반대하는 운동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가공된 식품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찾고 우리의 식문화를 바꾸는 운동이다. 바로 이러한 운동의 지향은 전여농이 전개하는 식량주권 사업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식량주권은 단순히 생산만이 아니라 토종종자 보존, GMO 반대, 토종농산물 축제, 제철 꾸러미 먹거리 판매 등 다양한 형태로 사업이 전개되고 있고 사업의 방식도 소비자 조직인 여성연대와 공동으로 식량주권실천단을 구성하여 추진했다.

식량주권은 근원적으로 국민을 이해당사자로 하는 농업체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도농이 함께 논리를 개발하고 실천하는 공동체운동이다. 따라서 사회적 연대와 동맹에 기반한 농정패러다임 마련과 국민농업으로의 전환을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하는 대안운동으로의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 신자유주의적 농업생산을 극복하고 생물종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서 대안적인 생산과 소비체계의 확립과 실현을 만들기 위해 친환경농업, 자원순환농업, 지역생산과 지역소비를 기본으로 하는 농업 등 생산과 소비, 도시와 지역, 교육, 문화 등과 연계하는 끊어진 관계를 소통하는 것을 추구한다. 따라서 식량주권은 생산자의 권리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권리가 공동으로 실현됐을 때 지속가능한 운동이다. 식량주권운동이 국민과 함께 신자유주의 농업정책을 강요하는 농정질서를 전환하고, 남성중심의 폭력적인 패권주의에 도전하는 가부장제에 투쟁하는 여성운동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식량주권 운동의 전개과정

식량주권 운동은 2004년 세계농민조직인 비아캄페시나 운동과 흐름을 같이한다. 전여농은 2004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더불어 비아캄페시나에 가입한 이후 식량주권 운동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했다. 2005년 토종씨앗 보존을 위한 씨앗 수집에서 시작하여 최근에는 채종포 운영, 토종음식, 토종가공식품, 토종씨앗 축제로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확장했다.

식량주권 운동은 세계화 전략 속에서 농촌의 위기가 가속화됨으로써 미래의 지속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심각한 인식에서 출발했다. 특히 2007년 초부터 국제곡물가가 상승하면서 전 세계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식량자급률이 OECD 국가 중 3번째로 낮은 우리나라의 경우 식량안보 차원에서 주권을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를 수 있고 식량의 무기화가 도래했다는 것을 누구나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대신 산업적인 식물성연료로 사용해 탄소배출을 줄이고자하려는 선진국들의 기후정책은 사람들을 위한 먹거리 정책이 아니라 자동차와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먹여 살리는 정책이라는 비난에 직면했고, 자국의 먹거리와 농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정책을 수립토록 하는 식량주권 운동의 필요성은 강화됐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은 생산과 소비의 분리가 아닌 가치를 나누는 훈련을 통해 다른 작물, 농산가공품까지 확대시켜야 한다는 방향이 제기됐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먼저 생각하는 여성들이 앞장서서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일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이 여성운동 조직인 여성연대에 확대되면서 여성농민회와 적극적인 연계가 이뤄졌다. 2009년 출범한 여성농민회의 식량주권 사업의 일환인 <우리텃밭> 사업의 목적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홍성 씨앗도서관 개관식 자료.
홍성 씨앗도서관 개관식 자료.

<우리텃밭> 사업의 목적

-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우리 농산물 안전성, 우수성 등에 대한 교양·홍보·교육을 통해 우리 농업 지키기에 공감대를 형성함.

- 도시와 농촌에서의 활동을 통해 도·농간, 소비자와 생산자 연대의식을 강화.

- 농업과 농촌을 국민적이고 전국적인 관점으로 일깨움.

- 지역농산물의 지속적인 소비·육성에 이바지.

- 농업·농촌 문제의 국민적 공감대로 국민농업이라는 인식을 확대하여 도시와 농촌, 소비자와 생산자가 공동운명체임을 자각하고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함.

이를 위해서 여성과 여성농민이 함께하는 직거래 장터를 실시하고, 농촌체험을 실시하는 것을 활동 방향으로 제시했다. 당시에는 주로 딸기잼, 사과즙, 포도주 등 여성회원들의 구매 중심으로 사업이 전개됐고, 농촌체험은 여성농활로 이어진 지역이 많았다. 또한 사업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여성연대의 식량주권사업단과 전여농의 식량주권위원회가 긴밀한 연계를 통해서 여성이 중심이 되어 식량주권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후 사업은 점점 식량주권 운동이라는 미래지향적인 운동의 가치실현보다는 텃밭, 직거래라는 소비자 운동, 먹거리 운동처럼 범주가 축소된 것이 현실이다. 여성들의 연대사업으로 식량주권 운동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지만 전여농의 여성농민운동으로서 식량주권 운동은 토종씨앗 영역에서 조례제정, 제도, 기록물, 가공품, 축제, 채종포의 확대, 1인1토종씨앗 갖기 실천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으로 성장하고 토종씨앗 지킴이(씨드림, 씨앗도서관 등)들과 연대하여 꾸준히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토종텃밭, 우리텃밭은 언니네텃밭이라는 생산자 공동체 조직인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토종씨앗·종자주권·전통지식의 보존

2005년 통일텃밭이란 이름으로 엉성하게 시작된 사업은, 2006년 5월에 발표된 쌀과 식량주권 아시아 태평양 회의 선언문에서 <쌀은 생명이며 문화이고 긍지이다>라고 선언하면서 더욱 구체화됐다. 2007년 종자산업법 개정을 앞두고 농민들의 종자주권 문제가 침해될 수 있다는 위기로 다가오면서 전농과 전여농은 종자법 개정시 ‘자가채종 인정 조항 신설’ 등을 주장한 의견서 제출, 유전자원에 대한 접근성 보장 및 불량종자 피해보장 보험시행 등을 주장했다.

종자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인식하에 2007년부터 토종씨앗 지키기 사업이 시행됐고, 2008년은 급기야 토종 옥수수 심기, 토종씨앗 채종포 사업을 실시했다. 이후 2008년 식량주권위원회를 설치했고 우리먹거리사업단을 만들어, 2009년 <우리텃밭>으로 개편하고 새로이 결성된 전국여성연대 식량주권단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소비-생산이 연대한 직거래 및 연대활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의 흐름은 2007년 세계 시민사회 포럼의 주제가 GMO 문제로 인한 환경파괴와 식량주권 문제가 다뤄진 영향도 있을 것이다.

당시 비아캄페시나에서 전개한 종자캠페인 운동의 구호는 식량주권 운동이 왜 종자주권으로 연계돼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아캄페시나는 1996년 세계식량정상회의에서 식량주권을 선포하고 이를 실천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 나갔다. 비아캄페시나가 밝히는 식량주권의 요체는 식량정책이 시장의 논리가 아닌, 식량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는 물론 그 정책실현의 최고단위인 국가가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권리이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자본의 요구에 따른 농업정책이 아니라, 각 나라 고유의 문화와 전통, 생산방식에 기초한 농업과 식량정책을 마련해간다는 것이다. 2007년도 식량주권 7대원칙을 밝힘으로써 자본 중심의 식량체제의 결함에 대응하는 실천적 영역의 것으로 분명한 위치를 갖게 되었다.

제주 토종씨앗 자료집.
제주 토종씨앗 자료집.

비아캄페시나 종자캠페인 운동

- 원주민들의 종자를 모아 관리하자.

- 여성들로부터 채취한 종자를 보호하자.

- 식량주권의 핵심인 종자는 생산사이클의 처음과 끝이다.

- 종자는 상업화돼서는 안 된다. 자유롭게 교류될 수 있어야 한다. 종자의 특허권은 누구에게도 속한다고 할 수 없다

- 우리의 삶이 상업화 될 수 없다. 물론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 종자는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지식이며 윤리이다.

- 정치적 윤리적 개념으로 접근하여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자.

당시 만들어진 우리텃밭의 핵심 구호는 <얼굴 있는 생산자,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우리텃밭>으로 농민들의 책임의식, 농민의 마음을 알아주고 식량주권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른바 지역 식량체계 구축을 위한 6개월 모델이 실험됐다. 꾸러미는 그냥 물건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토종씨앗 강사단 교육이 실시됐다. 실제로 소비자에 대한 교육이 지속적으로 실시되긴 했지만 현장 농민이 직접 교육에 참여한 것은 많지 않다.

자라는 씨앗, 강화되는 식량주권

어느덧 15년을 지나면서 여성농민운동과 식량주권은 떼어 놓을 수 없는 한 몸으로 성장해 있었다. 물론 식량주권보다는 토종씨앗으로, 토종씨앗보다는 언니네텃밭으로 더 익숙한 사업으로 성장해서 근본적인 식량주권 운동이라는 줄기가 약화됐다는 자성의 평가도 있지만 어쨌든 15년 동안 식량주권운동은 많은 변화를 거듭하며 나아가고 있다.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여농은 식량주권을 여성농민의 한 축으로 성장시켰고, 협업을 통한 여성농민의 생산주체화, 농촌에서 마을공동체와 결합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토종씨앗 운동의 뿌리를 내리고, 삶의 주체, 경영의 주체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토종씨앗 조례를 만들고, 1인1토종씨앗 갖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실시했고 토종씨앗 관련 책자도 발행했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전통지식을 스스로 지키는 법을 실천하고 있고, 토종밥상과 함께 나누는 토종축제까지 많은 성장을 이루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성장을 이룰 것이다.

2013년부터 식량주권 운동은 근본적으로 농사방법을 변화시키는 농생태학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고 이제 어느 정도 모양새를 구축했다. 그러나 여전히 농생태학이든 토종씨앗 운동이든, 꾸러미를 통한 직거래 운동이든 농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농정의 단계까지 접근하지는 못한 실정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여기까지 잘 왔다. ‘전여농, 쓰담쓰담.’ 전여농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문득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라고 했던 어느 시인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전여농이 있어서 토종씨앗이 지켜졌습니다.”

 

*오미란 (전) 젠더&공동체 대표는 현재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여성정책팀 과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모든 자리에 있었지만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했던 여성농민에 주목합니다. 새해를 맞아 ‘오미란의 한국여성농민운동사’를 월 1회 연재합니다. 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가 시간을 되짚으며 풀어내는 여성농민운동의 역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셨나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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