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제17호 태풍 ‘타파’가 수확을 앞둔 농심을 할퀸 채 지난 23일 독도 동쪽 해상으로 빠져 나갔다. 제13호 태풍 링링에 의한 상처가 아물기 전 또다시 불어 닥친 태풍은 농민들로 하여금 큰 상심을 야기했다.
태풍이 지나간 지난 24일 경주시 천북면 신당리 일원에서 만난 농민 황형대(52)씨는 피해 복구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오전 내 떨어진 사과를 줍고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세웠다던 황씨는 “쉴 틈이 없다. 사과를 가리고 있는 잎도 따내야 한다. 아래서 보기엔 멀쩡하지만, 나무에 달려있는 사과도 멍들고 다친 상태다. 잎에 가려서 안 보이는 것뿐이다”라며 “예년엔 50kg 작업 상자로 3,200~3,300개 정도를 판매했는데 올해는 1,200~1,300개 수준일 것 같다.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지금으로선 피해율을 60%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황씨는 “재해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겠지만 사실 들어간 자재비나 인건비를 따지면 받으나 마나 한 수준이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 정부에서 영농자금 상환기간을 연기해주거나 이자를 감면해주는데 농민이 영농을 재개하도록 돕는 게 목적이라면 차라리 그 대상에 담보대출을 포함해주면 좋겠다”며 “대다수 농가가 담보대출을 받아가면서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 정상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없을 땐 이자라도 감면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재해가 한 번 들이닥칠 때마다 농가 부채는 산더미처럼 불어난다. 직접 과원을 운영한 지는 28년 됐고 3대째 사과를 하는데 물가는 치솟고 사과 값은 30년째 비슷한 수준이다. 농사를 지을수록 느는 건 빚밖에 없는 것 같다. 갈수록 농사짓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탄했다.
또 천북면 갈곡리에서 1만2,000평 규모의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농민 김종율(73)씨는 이번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약 80% 수준이라 전했다.
김씨는 “수확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조기에 수확한 농가는 조금 덜할 테지만, 태풍으로 수확할 배의 과반 이상이 떨어졌다”며 “올해엔 보험도 들지 않았다. 국고와 지방비 보조를 받지만 농가 입장에선 영농 규모가 클수록 보험비용이 부담인데다 약관이 보험회사에만 유리해 사실상 쓸모가 없다. 농가가 입은 피해에서 20%를 감해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도 그렇고 착과 조사와 피해 산정까지 전적으로 농민에게 불리하다. 재해보험이 농민을 위한 장치라면 약관부터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태풍 타파의 순간 최대 풍속은 초당 35.9m, 누적 강수량은 최대 783.5mm에 달했다.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에 제주와 전남, 경남·북 등을 중심으로 농작물 피해가 속출했으며, 농림축산식품부 잠정 집계 결과 지난 25일 기준 농작물 피해 면적은 9,886ha를 기록했다.
벼 도복 피해가 6,423ha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월동무·양배추 등 채소류 피해 면적은 1,958ha로 집계됐다. 낙과 등 과수 피해는 1,038ha며, 감자·콩·옥수수 등 밭작물 피해 면적은 358ha로 나타났다.
지역별 피해 면적은 △제주 2,190ha △전남 2,025ha △전북 1,697ha △충남 1,593ha △경북 742ha 등이며, 전체 시설물 피해는 56ha로 합산됐다. 과수는 작물별로 △사과 831ha △배 77ha △참다래 60ha 등이 피해를 입었으며, 채소류 피해는 △월동무 1,300ha △양배추 350ha △당근 155ha △배추 153ha 순으로 집계됐다.
한편 농식품부는 정밀 조사 이후 피해 규모가 늘거나 줄어들 수 있으므로 농가 신고 접수가 마무리되고 피해 규모에 대한 윤곽이 잡히는 대로 재해복구비와 재해보험금 지원 등의 재해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