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돕자고 WTO 개도국 포기하나

20일 기재부·산자부 등 대외경제장관회의서 논의
농식품부, 농업개도국 유지 ‘사면초가’ 토로
민중당 “미국 부당한 압력, 위험한 선택 말아야”

  • 입력 2019.09.20 15:31
  • 수정 2019.09.22 11:21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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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개방농정이 우리 농업·농촌·농민을 옥죄고 있는 가운데 세계무역기구(WTO) 농업개도국 혜택마저 포기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탓에 한국농업은 또다시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였다.

우리나라는 농업부분만 ‘개도국’으로 분류돼 관세감축, 국내보조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개도국은 선진국의 3분의 2만 의무를 이행하면 된다. 관세감축의 경우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결과 개도국은 10년간 평균 24% 관세를 감축하면 되고 세번별로는 최소 10%까지 관세감축 대상 품목이 된다. 반면 선진국은 6년간 평균 36%, 세번별 15%까지 관세감축 품목 대상이다. 국내보조도 개도국-선진국 간 차이가 확연하다. 개도국은 3분의 2 부담 원칙에 따라 1989년~1991년 보조금 총액의 13.3%를 10년간 감축해 최종 AMS를 결정한다. 우리나라 AMS는 1조4,900억원이다. 선진국은 6년간 20%가 적용돼 더 짧은 기간에 더 많이 보조금을 감축해야 한다.

농업개도국 지위 문제가 더 코너에 몰린 건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서 비롯됐다. 트럼프 미대통령이 WTO의 개도국 지위 개혁을 촉구했다. 현재 개도국 혜택을 누리는 국가들 중에 선진국 수준의 부자나라들이 많다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억지개도국’ 1순위는 중국이지만 G20, OECD 회원국들도 함께 명시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는 부적절 국가들의 명단을 10월 23일 공표하고 불이익도 가능하다고 예고했다.

미-중 무역전쟁에 한국의 처지는 그야말로 ‘고래싸움에 터지는 새우등’ 격이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 한 관계자는 “미국이 여러 통로로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당장 잃을 것이 없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차기 농업협상은 먼 미래고 지금처럼 선진국-개도국 이분법적 논의가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거다. 결국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한국의 입장변화를 종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미국이 WTO 규정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답답해 했다. 게다가 수출에 명운이 좌우되는 농업 외 산업분야의 경우 미국 요청을 따라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다.

정일정 농식품부 국제협력국장이 지난 17일 양재동 aT센터에서 기자들에게 WTO 개도국 동향을 설명했다.
정일정 농식품부 국제협력국장이 지난 17일 양재동 aT센터에서 기자들에게 WTO 개도국 지위관련 논의 동향을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지난 17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WTO 개도국 지위 관련 논의 동향’ 기자간담회를 열면서 상황을 전했다.

정일정 농식품부 국제협력국장은 “현재 미국이 요구하는 내용은 현재의 농업협정 개도국 혜택은 유지하고, 차기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는 것”이라며 농업분야에 당장의 타격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기 농업협상이 언제 열릴지 모르는 상황에, 우리가 개도국 지위를 고집한다면 어떤 불이익이 올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그러나 “정부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강조했고 “농식품부는 농업 보호가 최우선이다”고 덧붙였다.

농업계 여론은 차갑다. 농업개도국 지위 포기를 문재인정부의 농정포기로 간주하고 있다.

민중당 전남농민위원회는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정부는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촉구하면서 “만약 미국이 제시한 10월 23일 이전에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외교주권을 포기한 것이며 한국농업의 미래위험을 들여오는 것”이라고 맹성토 했다.

20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WTO 개도국 지위가 논의되지만 쉽게 결론을 내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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