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랭지무 폭락 … 출구가 없다

2만6천톤 과잉에 8천톤 격리
‘찔끔’ 수급대책에 원성 가득
후기작형 도미노피해 불가피

  • 입력 2019.08.18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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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무·배추 폭락세가 호전은커녕 한층 심화되면서 강원도 고랭지 출하자들이 큰 피해를 겪고 있다. 배추는 소위 ‘A급’을 출하하면 몇 푼이나마 만질 수도 있지만 무는 A급조차 밑지고 팔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하지만 양파·마늘에서 그랬듯 정부 시장격리 대책은 제한적이다.

최근 가락시장 무 20kg 박스 도매가격은 6,000원대에 형성되고 있다. 산지에서 박스당 생산비를 5,000원, 출하비용을 3,500원 정도로 잡으니 대략 2,000원가량씩 손해가 나는 셈이다. 더욱이 대형 산지수집상이 아닌 농협이나 개인자격 출하는 박스당 2,000~3,000원대 가격도 흔하다는 소문이다.

평창군 진부면의 농민 고승희씨는 최근 무 5,700평을 전부 갈아엎었다. 정부 폐기지원을 기다리다 상품성이 떨어져 자체폐기를 한 것이다. 그는 “5톤트럭 몇 대를 출하해보긴 했는데 두 대 출하에 400만원 적자를 봤다. 도저히 작업할 수 없어 밭을 갈아엎고, 후작조차 지을 게 없어 올해 농사는 아예 포기했다”고 푸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밭떼기거래가 일반적인 고랭지 지역에서도 산지수집상은 손을 거둔 지 오래다. 벌써 어지간한 물량을 확보해 둔 수집상들은 파산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산지수집상 조직인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한유련)가 파악한 바로는 올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산지수집상이 4명이며, 현장에선 9명까지 소문이 돌고 있다. 고승희씨는 “자살한 사람도 있지만 중상들이 다 무너져버리니 내년 농사도 비전이 없다. 기껏 심어 봤자 사러 올 수 있는 상인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양파, 마늘에 이어 무까지 가격이 대폭락하자 채소가격 안정을 위해 산지폐기가 논의되는 가운데 지난 12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간평리의 한 들녘에 폐기된 무들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다. 이날 만난 한 농민은 “돈 들여 작업해도 생산비마저 안 나오는 상황이라 아예 수확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양파, 마늘에 이어 무까지 가격이 대폭락하자 채소가격 안정을 위해 산지폐기가 논의되는 가운데 지난 12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간평리의 한 들녘에 폐기된 무들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다. 이날 만난 한 농민은 “돈 들여 작업해도 생산비마저 안 나오는 상황이라 아예 수확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 8월 관측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노지봄무 저장 잔량은 평년대비 2,828톤 많고 고랭지무 예상초과생산량은 2만3,978톤이다. 정부 추산 총 2만6,806톤이 과잉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격리 물량은 8,400톤 뿐이다. 채소가격안정제 2,900톤을 제외하면 비상대책 물량은 5,500톤으로, 국비 1억7,100만원, 도비·시군비 5억1,300만원, 농민 자부담 1억7,100만원이 투입된다. 강원도 자율감축으로 발표됐지만 사실상 농식품부가 기획한 대책이다. 지역구 염동열 의원이 최근 농식품부로부터 고랭지무 수급예산 17억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는데, 사실 이는 위 8,400톤 격리에 들어가는 국비·지방비·농협부담·자부담을 모두 합친 액수로 정부 총 지출은 3억600만원에 불과하다.

이광형 한유련 사무총장은 “정부가 8월과 9월에 각각 1만1,000톤씩의 과잉출하를 예상하고 있는데 최근 산지폐기 신청이나 출하동향을 보면 8월에만 2만톤에서 많게는 4만톤까지 과잉될 것 같다”며 “8,400톤을 폐기해선 가격은 꿈쩍도 않는다. 최소한 농경연에서 과잉으로 잡은 것만큼은 폐기해야 하는데, 정부가 언제부턴가 농민을 너무 바라봐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김종수 평창 진부농협 과장은 “산지폐기를 결정하고 빨리 진행이라도 하면 농민들 화가 덜할 것이다. 한다고 말한지가 벌써 2주째고 그 사이 밭에 있는 무가 다 망가졌다. 물량도 진부면에만 무밭이 30만평인데 정부 지원액수론 5만평도 처리할 수 없다”며 한숨지었다.

강원도는 지난주에 신청을 마무리하고 이번주부터 본격적으로 산지폐기를 시작할 계획이다. 정부·지자체 물량 8,400톤과 별도로 진부농협에선 550톤을 자체폐기하고 있다. 하지만 제한적인 격리물량에 가격반등 가능성은 어둡고, 업계 관계자들은 후기작형까지 계속 피해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농식품부는 현재로선 추가 수급대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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