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지미 어르신, 오늘도 안녕하신가요?

[한국농정신문 창간 20주년 기획] - 충북 진천 관지미의 1년②

  • 입력 2019.07.21 18:11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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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6일 밤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당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유주영 이장(왼쪽 아래) 주재로 마을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지역 행정의 주요 변동사항을 비롯해 마을 현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한 시간 가량 이어졌다. 한우준 기자(오른쪽 두 번째)가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취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6일 밤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당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유주영 이장(왼쪽 아래) 주재로 마을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지역 행정의 주요 변동사항을 비롯해 마을 현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한 시간 가량 이어졌다. 한우준 기자(오른쪽 두 번째)가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취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날, 도시는 점점 팽창하고 농촌은 몰락해갑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농촌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농정>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려 연재기획을 시작합니다. 30년을 도시에서만 자란 청년이 1년 동안 한 농촌마을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경험을 공유하며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자 합니다.

서울여대 농활대와 함께 마을에 처음으로 눈도장을 찍었던 지난 방문에 이어, 이번에는 모든 가구가 모인 자리에서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며 본격적으로 농촌공동체 속에 발을 딛었습니다.

 

지난 6월 28일, 관지미(사당마을)가 너무 좋아서 농활로 올해 두 번이나 마을을 찾아 온 서울여대 농활대 틈에 끼어 저는 마을에 처음으로 제 존재를 알렸습니다. 이제 모든 주민들과 서로 이름을 나누고 얼굴을 익힐 차례입니다. 다행히도 좋은 기회가 곧 찾아왔는데, 이장님께서 모든 가구가 모이는 마을회의가 곧 열린다는 정보를 주신 것이죠.

관지미는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당리’라는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사실상 아직 유일하게 공동체가 살아 있는 마을입니다. 그래서인지 관지미라는, 옛 지명에서 따온 마을 이름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로당에는 법정리 이름을 따 ‘사당마을회관’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죠.

관지미로를 따라 집들이 일자로 죽 늘어서 있고, 그 앞엔 농경지가 펼쳐져 있는 작고 아담한 동네입니다. 한 때는 30가구가 넘는 집들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많은 사람들이 떠나거나 혹은 돌아가셨고, 관지미의 가구 수는 여덟 가구까지 줄었다가 작년에 두 가구가 귀촌하면서 간신히 두 자리 수를 회복했습니다. 이제 주민 대부분은 70세가 넘은 고령의 어른들이지요.

누가 사는지 들여다볼까요? 마을 대표 유주영(52) 이장님 집은 시어머니 김숙자(80)씨를 모시고 두 아들을 키우며 쌀과 수박 농사를 짓는 가족농입니다. 올해부터 진천군여성농민회장도 맡아서 여성농민의 권리신장을 위해 애쓰고 계신데, 남편인 김기형(53)씨 역시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으니 그야말로 농민운동가의 집이기도 하죠. 부부가 아직 둘 다 50대 초반이니, 마을에서 가장 젊은 가구이기도 합니다.

김상만(75)씨는 지난 호에서 ‘스윗가이’로 특별히 소개한 적이 있지요. 그때 학생들을 살뜰히 보살핀 것처럼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당연하지만 부인 강창성(75)씨도 지극히 챙기신다고 합니다. 이장에서 은퇴하신 뒤 지금은 노인회장님이 됐는데, 농사 기술에 있어서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로 능력자라고 하네요.

논농사를 짓는 윤영중(76)·유경애(74)씨 부부, 인근 대소면에서 오리농장을 하는 홍현길(74)·위옥자(79)씨 부부, 장애로 몸이 약간 불편한 딸을 데리고 사는 박순자(76)씨, 그리고 농사일이 제일 많아 동네사람들도 얼굴보기 힘들다는 김홍덕(77)·김순덕(76)씨 부부도 있습니다. 모두 농촌살이와 농사 이외의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중소 가족농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어른인 신옥순(92) 할머니는 결혼 안한 젊은 여자를 다 잡아가려고 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열다섯도 안 되는 어린 나이에 이 동네로 시집을 왔습니다. 마을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제 연로하셔서 농사일은 외지의 큰아들이 주말마다 와서 돌보는데, 그도 농촌으로 돌아오고 싶지만 워낙 뛰어난 기술자라 도시에서 쉬이 놔주질 않는다고 합니다. 김순희(88) 할머니도 혼자 살고 계신데, 안타깝게도 약간의 치매 때문에 요양원을 다니고 계셔서 이번에 만나 뵙지는 못했습니다.

관지미는 농촌이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가구도 있습니다. 김영창(63)씨는 도시에 살다 얼마 전 귀향했습니다. 부인 엄춘옥(59)씨는 부녀회장을 맡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온 김관형(65)·최준식(61)씨 부부도 귀촌한 가구입니다. 불과 두 집이지만, 이장님은 지난 해 이 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나서 마을에 다시금 활기가 생겼다고 할 정도로 좋아하고 계시죠.

유주영 이장님은 매월 열리는 이월면 이장단협의회 회의를 다녀오신 뒤 마을회의를 주재합니다. 농촌에서는 이장단협의회를 통해 지역 행정에서 벌이는 새로운 사업의 공고나 주요 변동사항 들이 이장들에게 먼저 공유됩니다. 또 이 자리를 통해 이장들끼리 지역현안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기도 하죠. 마을회의가 열린 지난 16일에도 각 가구에서 최소 한명씩은 나와서 이장님의 설명을 경청했는데, 직접 얼굴을 보며 정보를 전달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인터넷과 텍스트에 익숙한 도시 사람에게는 매우 신기한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대형 폐기물 처리 비용이 지난 1일부터 대폭 올랐다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나눈 이후 마을 사람들은 관지미의 미래에 대해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전 호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관지미는 현재 진천군이 벌이고 있는 산업단지 유치사업의 예정지로 거론되고 있어 마을의 존속 여부를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진천군의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면 마을 전체가 공장부지를 위해 땅을 내어주고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관지미는 입지가 좋은데다 원주민 수가 매우 적으니 사업을 하려는 입장에선 이보다 매력적인 목표물도 없긴 하겠네요.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한 얘기는, 늘 그랬다곤 합니다만, 이번에도 ‘한명도 빠짐없이 똘똘 뭉쳐 반대하면 막을 수 있다(윤영중 선생님 曰)’로 결론이 났습니다.

서로의 의지가 변함없음을 확인한 유 이장님과 관지미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뭔가 일을 하나 치러보기로 했습니다. 추석이 지난 뒤 적당한 날을 잡아 특별한 잔치를 열기로 한 것이죠. 누구를 부르는고 하니, 이곳이 고향인 사람들과 도시로 올려 보낸 자식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과 멀리 살고 있는 친지까지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다 부르겠다고 합니다. 이 마을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모든 사람을 불러 관지미의 상황을 알리고 하나 된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결의를 보면서, 발붙인 동네에서 ‘혼자’ 살고 있는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떤 지역에서 꽤 오래 거주한 사람들은 으레 ‘이 동네를 잘 안다’, ‘꿰고 있다’는 표현을 쓰곤 하죠. 최근 홀로 서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인천광역시의 ‘간석2동’에서 14년을 살았던 저 역시 누군가 물어보면 그 동네를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실상(?)을 이곳 농촌 주민들이 들으면 과연 동의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인사하는 사이는 앞집 아저씨네 가족뿐, 그나마도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전혀 모르고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죠. 저 뿐만 아니라 제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주요한 인간관계는 이제 대부분 동네를 벗어나 있습니다. 사실 아마 정말, 정말 많은 도시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을 테죠. 제게 동네를 잘 안다는 기준은 맛집이 정말 없는 이 동네에서 그나마 돈 주고 먹을 만한 밥을 하는 집이 어디 있고, 마트는 여러모로 가장 편한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어딘가를 가기 위해선 이 거미줄 같은 교통망 속에서 어떤 수단과 무슨 길을 선택해야 효율적인지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가, 정도일 것입니다.

도시에선 아파트의 입주민대표가 누군지 몰라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농촌에서는 과연 어떨까요. 귀농한 가구가 마을 주민들하고 가까워지려하지 않아 벌어지는 갈등을 종종 듣곤 합니다. 귀농한 선생님들이나 청년농민을 만나보면 이장은 물론이고, ‘마을 주민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더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도시의 동네는 땅에 그어진 선으로 나뉘는, 물리적 구분에 기초한 느낌인 반면 농촌의 마을은 공간적인 개념을 넘어 관계로 이어진 사람들의 집단, 흔히 말하는 ‘공동체’의 많은 요소 또한 함께 포함하고 있는 것이죠.

이날 취재목적을 설명드리며 인사를 마친 저는 짧은 시간이나마 관지미 공동체의 일원이 돼 보기 위해, 그리고 농촌살이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제 여기 사는 모든 주민과 일대일로 관계를 맺어보기로 결심합니다. 누군가에게선 ‘절대 내려와서 농사지으려 하지마라’는 얘기(사실 이미 간단하게는 들었습니다만)로 시작되는 농사꾼의 힘겨운 삶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어른은 결국 지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마음의 소리도 들려주시겠죠. 그렇게 관지미 어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농촌에 대한 이해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마을 입구에서 바라 본 사당마을 전경. 마을 진입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한승호 기자
마을 입구에서 바라 본 사당마을 전경. 마을 진입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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