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야간통금① 통행금지·막차·총알택시
[그 시절 우리는] 야간통금① 통행금지·막차·총알택시
  • 이상락 소설가
  • 승인 2019.06.2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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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벌써 막차가 끊어진 것 아냐?

-그럴 리가 있나. 지금 몇 시지? 어이쿠, 어느새 열한 시가 훌쩍 넘어버렸네?

-아이고, 그럼 우리 집 가는 버스는 이미 끊어져버렸는데…. 큰일 났네. 어, 저기 택시 온다. 택시! 택시! 정릉이요. 정릉 한 사람! 아, 수유리 간다고요? 그럼 미아리고개 너머 길음시장 입구에 잠깐 내려 주시면…. 예, 고맙습니다. 친구야, 나 먼저 간다!

그래, 잘 가라. 에이, 마지막 소주 한 병, 그건 안 마시고 일어났어야 하는 건데. 어? 66번 왔다! 막차가 아직 안 끊어지고 있었어. 야호, 이거야말로 주택복권 당첨이다!

-빨리 빨리 타요! 출발!

-이봐요, 차장, 스톱! 아, 막차가 사람 놔두고 그냥 가면 어떡해! 나, 길에서 얼어 죽으라고?

-빨리 빨리 타셔야죠. 오라이!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각, 서울도심의 버스 정류장 풍경이 가히 전쟁판이다.

퇴근 후 직장 인근의 대폿집에서 동료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샐러리맨들은 밤 열 시가 넘어갈 즈음이면 슬슬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술은 입으로 들어가지만 눈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기에 바쁘다. 시장에서 가게 문을 닫고 귀갓길에 나선 채소장수도 전대를 풀어 챙기고는 정류장으로 내달아, 초조한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막차를 기다린다.

이윽고 구세주 같은 마지막 버스가 도착한다. 막차는 늘 통쾌하고 화끈하다, 막차가 도착한 정류장에서는 탈까말까 따위의 주저나 에누리가 통하지 않는다. 버스는 동동거리던 무리를 가차 없이 쓸어 삼키고는 잰 걸음으로 꽁무니를 뺀다.

이제 버스가 완전히 끊어졌다. 하지만 그런 뒤에도 귀가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열한 시 반으로 향해가는 시각, 영등포역 맞은편의 도로변에서는 총알이 빗발친다. ‘귀가 전쟁’이라는 말이 그냥 수사가 아니다. 실제로 총알이 난무하는 최후의 일전이 벌어진다. 바람잡이 호객꾼들의 입이 바쁘다.

-자, 부천 합승 한 자리 남았어요! 부천 한 사람! 어디 가세요? 시흥이오? 시흥은 저 쪽 택시 타세요. 자, 부천이나 인천이오! 아, 인천 간다고요? 인천 네 사람 만원 됐어요. 출발! 어이, 거기 광명 가는 택시 이쪽으로 빨리 빼! 광명 타세요, 광명!

서울의 도심이나 부도심에서 수도권의 위성도시로 가는 합승택시가, 거리에 남아 있던 나머지 사람들을 주워 싣고 내달린다. 그 시절 인천 주안에 살았던 친구가 내게 들려준 얘기는 이러하였다.

“모처럼 서울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밤 열한시 반쯤에 영등포 역전에서 합승 택시를 탄단 말이야. 그런데 주안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면 아직도 자정이 한 뼘이나 남은 거야. 20분도 안 걸린 셈이지. 택시가 일단 경인고속도로를 탔다 하면 굴러가는 게 아니라 숫제 날아간다고. 앞자리 조수석에 앉는 날엔 아예 눈을 질끈 감고 간다니까. 취중인데도 무서워서.”

그래서 사람들은 ‘총알택시’라고 불렀다.

이윽고 자정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길게 울린다.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빠져 나가버린 밤거리는 이따금씩 들려오는 경찰 순찰차의 사이렌과 방범대원들의 호루라기 소리로 채워진다. 도시 전체가 무슨 귀신영화 찍는 세트장처럼 적막에 휩싸인다.

일과를 마치고 피곤에 절어 귀갓길에 나선 사람들을 병아리 몰 듯 그처럼 정신없게 몰아친 것, 그리고 도시의 밤풍경을 적막한 유령의 그것으로 만들었던 것의 정체가 바로 야간통행금지였다. 간단히 ‘통금’이라고 불리던 이 제도는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해제되었다.

지나간 것은 다 조금씩은 그리운 법이다. 그러나 난 야간통행금지, 그것이 별로 그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통금시절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을 주섬주섬 떠올려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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