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운동에 ‘과학’을 한 방울 떨어뜨려볼까?

일본농민운동전국연합회 산하 식품분석센터 탐방
“데이터는 중립적, 그래서 더 효과적인 투쟁 도구”

  • 입력 2019.06.16 12:2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 이타바시구에 위치한 노민렌 식품분석센터에서 스미토 핫타 소장이 화학성분이 검출된 수입밀가루 제품을 들고 센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 이타바시구에 위치한 노민렌 식품분석센터에서 스미토 핫타 소장이 화학성분이 검출된 수입밀가루 제품을 들고 센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농민이 신음하고 있는 상황은 비슷하다. 일본농민운동전국연합회(노민렌)는 그 가운데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일본 농민운동의 기수다. 방법에 있어 정당한 요구가 적힌 깃발과 피켓을 드는 것은 한국의 농민들과 큰 차이가 없지만, 이들에게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과학적 연구를 이용해 보다 신뢰성 있는 근거를 만들어 도구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노민렌은 지난달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지역총회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아시아 각국의 농민대표들에게 산하 사단법인으로 있는 ‘노민렌 식품분석센터’를 소개하고 안내했다. 총회 취재 차 일본을 방문했던 기자도 함께 견학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노민렌 식품분석센터는 지난 1996년 일본의 농민들과 소비자들의 모금을 바탕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이 무렵 일본은 막 WTO에 가입해 농산물 개방의 정도가 심화되고 있었다. 식품분석센터의 전 소장이었던 미사 이시구로씨는 당시 일본 세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수입량이 증가하는 것을 체감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의 식품 안전 시스템이 이 물량을 감당하기에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식량 수입은 1981년부터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WTO에 합류한 뒤에는 전체 식품 수입량의 약 10분의 1만이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처지였다고 한다. 노민렌은 ‘집회·시위’를 넘어서는 효과적 대응 방법을 강구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산하 사단법인 식품분석센터였다.

처음에는 수입 농산물과 식품에 대해 조사를 의뢰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토론에 나서려 했다. 그런데 여러 장벽이 존재했다. 성분 검사는 농민들이 감당하기엔 비용이 비쌌을 뿐더러, 일부 기관들은 정작 검사 뒤 결과를 알려주거나 발표하기를 꺼렸다. 노민렌은 결국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인 연구실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돈이 문제였습니다. 가난한 노민렌…. 우리는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논의했죠. 식량문제는 농민들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해당되니까,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기금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996년에 약 2,000만엔(2억원)을 모았죠. 그 돈으로 많은 검사 장비를 구입했습니다.”

식품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스미토 핫타 소장은 총합 10억원에 이르는 검사 기기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센터 일과의 80%는 농산물이나 식품에 남아 있는 잔류 화학성분을 검출하는 것인데, 다양한 기기를 조합해 800여 종에 이르는 잔류물을 검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각각 GMO 성분과 방사능 수치를 잡아낼 수 있는 전용 검사 기계도 있었다. 현재 업무의 10% 정도는 방사능 검출 여부 의뢰라고 한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농민들이 굉장히 고통 받았는데요, 여기엔 용량별로 세 가지 종류의 검출 장비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방사능은 점점 줄어들고는 있지만 방사능 식품은 여전히 생산되고 있습니다. 각 정부에서 핵무기와 핵발전소를 확산시키지 않도록, 우리들이 노력해야겠죠.”

식품연구센터는 자체적 계획에 의한 연구 활동뿐만 아니라 농민과 소비자들의 의뢰도 받는다. 노민렌의 회원이 아니어도 검사를 의뢰할 수 있고, 그 결과를 생산한 농산물에 사용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데 쓸 수 있다.

“여기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이 있습니다. 99%는 중국산입니다. 하루는 전화를 한통 받았는데 대나무 젓가락에 대한 정보가 하나 있고 그 내용인즉슨 ‘금붕어가 사는 물에 젓가락을 넣어보니 죽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시험을 해봤더니 농도가 높은 화학 물질이 검출됐습니다. (자료를 보여주며) 이 물질이 많으면 보라색으로 변하는데 보시듯 농도가 매우 높지요. 정부는 알고 있었는데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었습니다. 냉동야채 건에 대해 보고서를 제출했을 때는 ‘너희 연구를 어떻게 믿느냐’는 반응이었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빠르게 대응했습니다.”

냉동야채 건이란, 지난 1998년 연구소에서 중국산 냉동야채에 대해 조사를 벌였던 일을 말한다. 당시 일본에서 냉동야채의 인기가 증가하고 수입이 늘어나자 일본산 신선 야채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노민렌의 간부들은 중국의 상황에 호기심이 생겨 현지 냉동야채 포장공장에 견학을 갔는데, 이들은 그 어마어마한 생산 규모와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뭔가를 살포하는 장면에 기겁했다고 한다.

“당시 중국 농민들은 안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습니다. 뿌리는 것이 화학 물질은 아닌데 단지 세균을 죽였다고 말하더군요. 일본으로 돌아와서 각종 화학물질에 대해 안전성 검사를 했는데, 어떤 것은 기준치의 3.5배가 검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냉동야채는 농산물이 아니며 따라서 검사 대상도 아니라고 말할 뿐이었죠.”

결국 노민렌의 조사결과로 인해 한 대형 식품회사가 시금치 판매를 중지한 뒤에야 일본 정부는 조사를 시작했고, 정부 측의 연구소는 심지어 더 나쁜 결과를 받아들게 된다. 두 달 뒤, 노민렌은 중국산 냉동 시금치 수입이 중단이 됐다는 승전보를 듣는다. 또한 식품 위생법 개정 및 ‘잔류 농약 포지티브 리스트(Positive List)’의 제도화로 이어졌다.

“사람들의 관심은 각자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연구소의 검사활동 때문에) 상품을 못 팔게 됐다며 비난하는 전화도 종종 받습니다. 그러면 저는 우리의 연구결과들을 설명하죠. 듣고는 사람이 먹기 위험하다고 끝내는 인정을 하죠. 과학적 데이터들이 얼마나 유용한지 아시겠죠?”

핫타 소장은 20년 동안 굉장히 많은 연구들을 수행했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본인이나 그 가족이 피해를 입은 적은 없다며 웃었다. 그는 세상에 세 가지 종류의 연구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정부기관을 위한 연구이고, 또 하나는 회사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사적 연구다. 그리고 이 둘과는 다른 나머지 하나가 바로 사람을 위한 연구이며, 노민렌 연구소는 바로 이 세 번째 유형의 연구를 위해 힘쓰고 있다 자신했다.

“그래서 노민렌의 농민운동에 있어 저희 연구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 연구결과들이 곧 저희 일본농민들의 투쟁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데이터는 중립적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러한 중립적 데이터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