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기후·비용보다 인프라 부족이 문제
바나나, 기후·비용보다 인프라 부족이 문제
  • 권순창 기자
  • 승인 2019.06.09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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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부족·높은 가격에 판로 난망
후숙 시스템으로 유통 약점 필연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국산 바나나는 모두 무농약으로 재배한다. 제도(PLS)가 허용하는 농약이 없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수입산과의 가격경쟁력이 없는 상황에서 가격 외의 장점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유통거리가 짧은 만큼 수입산처럼 내수용보다 이른 시기에 수확할 이유가 없고 방부·훈증처리를 거치지도 않는다. 안전하고 신선한 바나나를 공급한다는 자부심은 국내 바나나 농가들이 농사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문제는 판로다. 국내에서 바나나가 생산된다는 걸 아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으며 그것이 무농약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가격 또한 수입산의 3배에 육박하기 때문에 원활한 판로를 뚫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나마 택배거래가 활발한 농가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그렇지 못한 일반적인 농가들은 상당한 고충을 겪고 있다. 대형마트 등에 소득 마지노선인 kg당 4,000원 정도에 납품하는데, 거래처의 세일출하 요청에 따라 3,000원대 초반에 밑지고 출하하는 일도 빈번하다.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 일부 농가가 덤핑판매로 시장을 흔들기도 한다. 극단적으로는 한 해 생산량 전부를 출하하지 못한 농가도 있다.

바나나 농사 3년차인 제주 남원읍의 고권배씨는 “농가의 사정을 얘기하면 ‘판로도 확보 않고 생산했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생산을 안하면 판로가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 (인프라가 없어서) 교섭 자체가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4일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김순일씨가 바나나를 수확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바나나는 현재 ‘후숙’이라는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한승호 기자
지난 4일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김순일씨가 바나나를 수확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바나나는 현재 ‘후숙’이라는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한승호 기자

유통과정도 골칫거리인데, 이에 관한 문제는 대부분 후숙으로 귀결된다. 현재 일부 농가는 자체 후숙시설을 설치 또는 임대해 쓰고 있지만 수입과일 후숙시설에 위탁처리하는 농가, 시설 없이 상온에서 후숙하는 농가 등 형태가 다양하다. 시설이 미비하거나 요령이 부족한 경우 후숙과정에서 벌써 20% 이상의 감모가 발생한다.

바나나를 후숙한 뒤 출하하면 유통기한은 길어야 1주일이다. 여타 과일에 비해 빠른 변질은 유통의 최대 핸디캡이다. 또 계절에 따라 출하 일주일 내지 보름 전에 수확해 후숙에 들어가는데, 소비지 재고상황에 따라선 출하를 못하고 농가가 큰 손해를 봐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즉, 그 어느 농산물보다도 출하조절이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남원읍 바나나 농가 김순일씨는 “외국에선 바나나를 후숙해서 유통하지 않는다. 초록색 상태로 판매하고 소비자가 집에서 후숙해 먹거나 요리에 사용한다. 우린 노란 상태로 유통하니 유통기한이 짧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긴다. 유통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바나나는 우리나라의 자연적인 환경과는 맞지 않는 열대성 작물이다. 재배를 위해선 평당 25만원의 시설비와 4만원 이상의 경영비를 투입해야 한다. 농민들은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며 바나나 농사를 이어 오고 있다. 2중보온이 가능한 하우스를 고안해 사용하는가 하면, 난방비 절감을 위해 겨울철 실내온도를 낮추는(25℃→15℃) 재배법을 고안한 경우도 있다.

정작 환경이나 비용보다 더 큰 문제는 산업 인프라에 있다. 판로와 유통구조 등 빈약한 인프라는 농민들이 바나나 농사에 뛰어드는 데 가장 큰 장벽이 되며 이미 뛰어든 농가들에겐 가장 큰 고민거리다. 국산 바나나의 성패는 이같은 인프라 구축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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