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기고] 농업·농촌의 미래, 소농에 달려 있다

  • 입력 2019.05.19 18:00
  • 수정 2019.05.19 21:01
  • 기자명 엄청나 예산군농민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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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 예산군농민회 사무국장]

최근 농민수당과 푸드플랜이 농업의 화두다. 농민들은 이제까지 사회가 애써 외면한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을 ‘농민수당’으로 요구하고 있고, 충청남도와 경기도 등의 지자체들은 푸드플랜을 통해 생산에서부터 폐기까지의 먹거리 순환구조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것은 기존 농업정책이 농사 규모 중심의 지원이나 거대 농식품 기업 중심의 먹거리 구조를 지향했던 점을 감안했을 때 농업·농촌에 대한 관점의 반영이 필요한 정책으로 보인다. 결국 ‘소농’을 중심으로 한 우리 농업에 대한 입장을 세워야 이런 인식이 가능하다. 효율화를 위한 규모화가 한국농업의 대안인 것처럼 여겨왔던 반백년의 농업정책의 전환의 필요성이 드러난 것이다.

이제까지 국가와 사회는 경쟁력 없는 농업에 보조금을 통해 그 살길을 유지시켜 준 것처럼 말해 왔다. 쌀에 주는 직불금으로 인해 이런 경쟁력 없는 농업이 더욱 악화되는 것처럼 선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1950~60년대 산업화 시절, 농업의 규모화는 생산력 증대와 농업소득 향상 등과 같은 농업 자체의 요구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다.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농촌에서 도시로 유인하기 위해 농업의 구조조정을 진행했으며, 도시 노동자의 낮은 임금 유지를 위해 식료품 가격의 저가 정책을 펼쳤다. 농업의 효율화는 농업의 낮은 경쟁력이 아니라 산업화를 주요 골자로 하는 한국경제 발전을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한국사회 산업화에 있어 농업의 기여는 이뿐만이 아니다. 농민들은 열심히 농사지어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을 교육시켰고, 그 자식들은 지금의 한국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농업·농촌의 자본이 산업화의 밑천이었던 셈이다.

2019년, 규모화와 효율성을 골자로 하는 농업정책은 농업소득 1,000만원이라는 최악의 현실을 만들어 냈다. 농촌은 고령화됐고 인구소멸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농업에 대한 거짓이데올로기와 규모화를 위한 막대한 재정정책 속에서도 규모화는 실패했다. 여전히 한국농업을 유지하는 것은 소농이다. 규모화가 상당히 진행됐다는 벼농사에서조차 전체 농민의 72% 이상이 1ha 미만의 중소농이다.

소농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나라가 산다. 몇 년 전 충남도의 대표 농업공약은 ‘억대농가 1만호 육성’이었다. 농업의 보랏빛 미래를 홍보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도의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억대농가 1만호를 위해 농업의 근간인 소농은 외면했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했다는 말은 들은 바가 없다. 당시 충남도가 간과한 것은 억대농부 몇 명을 육성한다고 해서 지역과 농업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변변한 옷가게조차 없는 농촌 현실에서 억대 부농의 소비는 지역이 아닌 도시에서 이뤄졌을 것이고, 지역에서의 제한된 소비로는 지역활성화를 도모하기에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농민의 주머니가 두둑해야 그 돈으로 밥도 사먹고, 술도 먹고, 머리도 하고, 영화도 본다. 하지만 현재 웬만한 읍·면소재지를 나가봐도 이곳이 소재지인가 싶을 정도로 썰렁하기 그지없다. 농협 간판이 아니었으면 지나칠 정도다. 소득저하와 인구감소로 인한 당연한 현상이다.

이것은 결국 농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농업의 근본을 이루는 소농의 처지가 개선돼야 지방이 산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를 개선하는 근본 정책일 것이다.

산업화를 이끈 농업이 이제 소멸위기 농촌을 살릴 것이다. 소농을 중심으로 한 농업정책의 전환은 결코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것이며 한국사회와 한국농업의 실질적 대안이다. 농사짓는 농민의 모든 노동력에 대한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순환구조를 방해했던 규모화와 단작화, 효율화 농정의 한계와 실패를 인정하고 새 방향의 틀을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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