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바람’ 불어도 못자리는 한다

철원 올해 농사 시작 풍경

  • 입력 2019.04.07 18:00
  • 기자명 정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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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정경숙 기자]

철원의 봄은 ‘똥바람(매서운 봄바람을 뜻하는 지역 속어)’과 함께 온다. 밤새 물을 얼린 바람을 맞으며 농민들은 들판으로 출근하고, 흙먼지 들이키며 모판에 흙을 담고 못자리를 한다(사진). 한 해 농사의 시작이라 어느 때보다 공을 기울이고 정성을 다 한다.

민통선 안 들판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며 못자리를 하는 농민이 있어 다가갔다. 벼농사만 3만평 정도 한다는 박씨는 “대민지원 못 받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내년에도 지원을 받을런지 걱정”이라고 했다.

‘국방개혁 2020’에 따라 철원에 주둔한 군부대가 후방 포천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6년 이후 3,000명 넘는 병력이 빠져나갔다. 봄·가을 영농철에 병력을 지원받아 부족한 일손을 덜어왔던 철원의 농민들에겐 반갑지 않은 상황이다. 다행히 올해는 6사단과 3사단 측에서 관례대로 병력지원을 해주기로 해 농부들은 한시름 덜었다. 박씨를 도우러 온 김씨는 “품앗이는 옛말이다. 요새는 사람이 돈이다. 인건비는 올라가는데 군인들 가버리면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걱정”이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모판 나르던 병사에게 할 만하냐고 물었다. 올해로 스무살이라는 한 일병은 “부대 안에만 있으면 답답해요. 나오니까 좋다”며 웃는다. 난생 처음 삽질을 해본다는 권 일병은 “힘들긴 한데, 쉬면서 하니까 할 만 하다”고 한다. 일머리 모르고 서투르기 짝이 없어도 농민들에겐 귀하기만 한 일손들이다.

점심 때가 되자, 박씨는 병사들을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달렸다. 내린 곳은 철원근대문화유산전시장에 마련된 ‘못자리 공동취사장’이다. 철원군과 철원농협이 민통선 안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을 위해 2000년부터 열어온 임시 식당이다. 올해는 지난 2일부터 23일까지 공휴일 포함 총 22일간 점심을 제공한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하루 700~800명 정도가 이용한다고 한다. 집밥과 다름없는 맛과 서비스에 농민들의 만족도가 꽤 높다. 김씨는 맞벌이라 아내가 해주는 밥 먹기 어렵다며 “혼자 벌어서는 살기 힘든 세상”이란다.

식사가 끝나고, 농민들과 병사들은 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삼삼오오 모여서 한담을 나누거나 담배를 핀다. 박씨는 “올해는 냉해나 안 입었으면 좋겠다”며 차에 올랐다. 달리는 차 뒤로 똥바람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매섭게 불어댄다. 어미의 심정으로 모를 키울 농민들이 근심 없이 살 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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