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락시장에 사람이 있다

송기호 변호사

  • 입력 2019.03.17 18:00
  • 기자명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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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농민에게 가락시장은 어떤 곳인가?

80년대 후반에 가락시장의 무·배추 경매 시세는 나의 일과를 좌우했다. 당시 나는 영암 개간지 지역에서 꽤 잘나가는 청년 일용직이었다. 개간지 무·배추를 캐서 가락시장 출하 준비를 하는 일이 나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농민들은 가락시장 시세를 살피면서 출하 여부를 결정했다. 출하하겠다고 일단 결심이 서면, 나와 같은 농업노동자를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휴대전화가 없던 때였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나를 찾는 집 전화 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한 때는 영암 청년들과 같이 개간지를 임차하여 직접 무와 배추를 싣고 가락시장으로 출하를 하기도 했다. 나 같은 임시 농업노동자 또는 잠시 농민에게도 이렇게 가락시장은 중요했다.

이제 법률사무소를 가락시장 안에 두고 있으니, 시장과의 인연이 깊나 보다. 3년 전에 변호사 사무실을 서초동에서 이곳으로 옮기다 보니 매일 시장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시장에는 사람들이 있다. 농민들이 고생하여 생산한 농산물을 시장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은 하역 노동자들이다. 이분들이 트럭에서 농산물을 내려 경매장에 진열한다. 지금처럼 산지 농협이나 작목반 공동 배송을 통해 출하하는 농민들은 하역 노동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가락시장은 1,300여명의 하역 노동자들의 일터이면서 삶터이다. 대부분의 경매가 밤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주로 야간에 노동을 한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휴게 공간은 매우 열악하다. 지금은 군대에도 없어진 침상형 집단 내무반에서 생활한다. 신발을 따로 벗어 둘 공간조차 없어 내무반 침상 밑에 신발이 있는 구조에서 작업 대기하고 휴식을 한다. 몸을 담그고 쉴 샤워실은 없다.

농민이 출하한 농산물을 사서 분산시켜 주는 핵심 사업자들이 ‘중도매인’이다.

이들만이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가락시장에는 과일과 채소 경매에 참여하는 1,300여개의 중도매인 회사가 있다. 수산물 경매에는 450여개 회사가 있다.

그리고 이들 경매권역에서 경매를 거쳐 나오는 농수산물을 도소매로 판매하는 ‘경매후 도소매인’이 <가락몰>에만 약 1,000개, <식품종합상가>에 300여개의 회사가 있다(시장에서는 이 분들을 ‘시장 유통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사에 등록한 시장 안 노점상도 약 250명 정도 된다. 이 회사와 점포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적게 잡아도 1만명이다(3인 근로자).

하루에 약 5만대의 차량이 들어오는 가락시장은 1만5,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일터이며 삶터이다.

이 사람들이 시장에서 어떻게 사는가는 농민에게도 중요하다. 가락시장의 진정한 ‘소프트 파워’는 시장 사람들에게 나오기 때문이다. 수산 중도매인이 밤새 경매에서 일한 뒤, 비린내가 밴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을 공간조차 없는 현실은 중도매인의 자존감을 높이지 못한다.

시장은 1만5,000명의 사람에게 전쟁터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장을 삶터로 하여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며, 서로 대화하고, 삶을 나누는 복지 공간이 필요하다.

16만평 가락시장에 사람이 자존심과 긍지를 지킬 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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