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농민운동인가?
왜 여성농민운동인가?
  • 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 승인 2019.02.0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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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모순(矛盾)이 있는 곳에 운동이 있다. 이 한마디로 여성농민운동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여성농민들이 삶에서 겪는 문제는 남성과 다르고, 극복해야 할 생활상의 문제 역시 다르다면 저항이나 활동 역시 다른 형태로 진행돼야 하지 않을까? 이 당연한 상식을 왜 설명해야 하는가? 이것은 여성농민운동의 정체성과 지향을 이해하고 그들의 실천인 여성농민운동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물음이고 답이기 때문이다.

실천과 투쟁 통해서 성장한 여성농민운동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라는 자주적인 여성농민 대중운동 조직이 만들어진 지 30여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농민운동 현장에서 상당수의 여성농민활동가들은 아직도 왜 여성들을 따로 조직해야 하는지 종종 불편한 질문에 직면한다.

최근 여성농민운동사 정리를 위한 몇 개 지역 간담회에서도 이러한 고충을 털어놓는 활동가들이 있었다. 조직력이 취약한 지역일수록 여성농민조직이 농민회 산하에 ‘여성위원회’ 조직으로 존재하기를 바라거나 일부 지역은 농민회 산하 여성위원회로 존재하는 곳도 있다. 여성농민조직의 필요성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농민운동의 탄생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성농민운동이란 개념은 1984년 10월 개최된 여성농민 워크숍에서 정의되었다(당시 공식명칭은 농촌여성지도자였음). 워크숍에 참가한 여성농민활동가들은 농촌부녀, 농촌여성이라는 용어 대신 여성농민이란 명칭을 사용할 것을 결정했다. 이는 농촌이라는 공간적 개념, 부녀라는 비계층적 개념 대신 여성농민이라는 사회적 실천을 행하는 주체의 개념으로 전환을 의미한다.

여성농민운동은 여성농민들의 세력화를 지향해야 함과 동시에 농업문제+여성문제 등이 여성농민들에게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이 조직적 실천이 되기까지는 여성농민활동가 내부에서, 또는 농민운동 활동가들과 지난한 논쟁과 갈등을 거쳐서 운동이론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아마도 대한민국 운동 역사에서 왜 그 운동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도전을 받았던 사례는 아마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초기는 농민운동에 반대하는 배우자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다음으로는 각종 투쟁에서 앞장서는 여성농민들의 투쟁력 인정 등 다양한 이유로 여성농민운동을 지원하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농업과 가사의 이중고, 마을과 공동체의 봉건적인 문화, 분단과 외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의 삶을 해방하기 위한 주체로서 여성농민운동을 이해하는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많지 않다.

일터와 삶터가 분리되지 않는 농업과 농민운동의 특성상 부부가 함께 회의를 하기도 하고, 부부가 함께 투쟁 현장에 나서야 한다. 대부분 농사일은 남녀가 분담하지만 회의와 투쟁에 참가할 때 분담은 없다. 그것은 온전히 여성의 몫이다.

대회나 투쟁에서 앞장서서 싸우는 사람은 여성이지만 그들은 항상 단순 참여자에 불과하다. 여성농민운동은 삶의 조력자, 투쟁의 단순참여, 동원 대상이었던 여성농민을 한순간에 삶의 주체, 투쟁의 기획과 지도, 여성농민의 경험을 반영한 이슈와 요구를 제기하는 주체적인 여성농민으로 성장시켰다.

여성농민운동이란 개념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여성농민대중이 보여준 투쟁력과 여성농민운동의 독자적인 조직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한 활동가들, 초창기 농민회와의 힘든 논쟁과정을 지치지 않고 설득하면서 여성농민운동을 실천한 현장 여성농민운동 활동가들의 노력의 총합의 산물이다. 여성농민운동은 학문적 이론이 아닌 여성농민들의 강인한 현장투쟁, 아스팔트 농사를 통해서 획득된 실천이고 활동이다.

여성농민의 삶의 모순이 지속되는 한 자주적 여성농민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땅의 사람들'과 ‘전국여성농민위원회'가 엮은 ‘여성농민 위대한 어머니'.
여성농민의 삶의 모순이 지속되는 한 자주적 여성농민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땅의 사람들'과 ‘전국여성농민위원회'가 엮은 ‘여성농민 위대한 어머니'.

 

30살, 그러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질문 ‘왜 여성농민 조직인가?’

여성농민운동 전국조직이 만들어지기 전에 여성농민운동가들 사이에서는 개념에 대한 합의는 있었지만 운동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일정기간 지속됐다.

여성농민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농민문제를 해결하면 여성농민문제도 해결된다는 주장과, 농민문제와 여성농민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됐고, 또한 여성농민의 문제를 농촌문제+여성문제라는 병렬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여성농민의 삶에서 나타나는 모순(문제)은 국가권력과 가부장제의 결합에 의한 구조적 모순이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농업문제, 민족문제, 성문제 등이 여성농민의 삶을 통해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여성농민운동을 위해서는 여성농민의 농업노동과 가사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인정, 사회적 지위 획득, 여성농민의 주체적 삶을 저해하는 반봉건적인 사회문화, 외세의존적인 농업구조, 반민주적 사회구조 등을 타파하는 것으로 인식이 확대됐다.

이러한 문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여성들이 따로 조직 활동을 한다는 독자적 여성농민운동을 넘어서 여성농민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자신의 삶의 모순을 주체적인 힘으로 해결하기 위한 ‘자주적 여성농민운동론(자여농)’이 필요하다는 운동론이 대두됐다(1988년, 1991년).

즉 모순이 있는 곳에 운동이 있고, 그 모순의 담지자가 스스로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자주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여성농민운동의 조직과 활동 방향을 제시했다.

따라서 자주적 여성농민운동은 여성농민들 스스로 삶의 문제(여성의 정당한 노동가치, 주체적 참여, 자주적인 삶, 분단 극복 등)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성들의 방식과 역량으로 자주적 대중운동을 하는 조직이지, 단순히 여성들끼리 따로 농민문제를 제기하는 조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제시했다.

자주적이란 의미는 이론과 실천과 활동의 자립, 자주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자여농은 여성농민대중의 변혁의지를 강조하면서, 기존 농민운동에서 여성농민대중을 비조직적, 단순동원형, 보조자로 여기는 인식을 벗어나 여성농민활동가들의 실천을 통해 조직적, 대중적 지도성을 확립해 나가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또한 여성농민운동을 농민운동을 여성농민이 주체가 되어 수행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여성농민 대중들의 요구와 지향에 의거하여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운동임을 제시하면서 농민운동 내에 존재하는 여성농민운동에 대한 제 견해 및 경향성(자주적 여성농민조직 건설은 분파, 역량분산, 남성조직의 활성화만이 여성조직 활성화 가능 등)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식은 여성농민 조직이 미약하거나 혹은 조직이 없는 곳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 여전히 많은 농업정책이나 농민투쟁 과정에서 여성의 여건, 여성의 삶은 불평등한 가부장적 요소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다(여성농민의 품삯은 남성의 60% 수준, 마을 내 돌봄은 여성의 몫, 농사일 집안일 가사일 모두 여성의 독박, 땅의 소유는 80%가 남성, 마을이장의 90%가 남성, 농가중심적인 농민수당 등).

여성농민의 삶의 모순이 지속되는 한 자주적 여성농민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발간한 책 ‘여성농민 희망찾기'.
여성농민의 삶의 모순이 지속되는 한 자주적 여성농민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발간한 책 ‘여성농민 희망찾기'.

 

자주적 여성농민운동, 아직 멀지만 가야할 길

여성의 의제가 우리사회의 핵심적인 이슈로 등장한 것은 기실 긴 세월도 아니다. 그것 역시 겨우 30년의 역사를 지녔다. 성폭력이나 가사노동, 돌봄의 사회화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수많은 법이 만들어지고 정책이 만들어졌다.

여성농민의 삶은 일터와 생활의 장이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운명이 밀접히 연계돼 있다. 즉 노동공간과 생활공간의 개혁의 변화가 모두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여성농민들의 자주성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농촌에 일상화된 가부장적 문화를 극복하고, 여성농민들의 노동가치 실현을 위한 농산물 가격, 농업정책, 토지소유 문제 등 여성농민들의 자주적 삶을 위한 사회구조 개혁을 위한 투쟁 모두가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성농민운동은 여성농민의 삶을 억압하는 구조적인 제도 청산이나 개혁을 위한 투쟁 영역이 미약한 실정이다.

특히 이러한 문제를 농민운동과 함께 해결해야 하지만 농민운동, 배우자의 이해와 지원, 조력은 아직 멀기만 하다. 여성농민운동 조직이 왜 필요한가를 묻기 전에 여성농민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여성농민들이 차별 없는 세상에서 당당한 생산의 주체로, 자신의 운명의 주인으로, 평등한 삶을 누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까? 100년 아니면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할까? 이 시간들을 여성농민운동이 얼마나 앞당길 수 있을까?

다시 쓰는 미래의 여성농민운동의 역사는 ‘He for She…’가 가능할까? 역사쓰기를 하면서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져본다. 모순이 있는 곳에 운동이 있다. 따라서 여성농민의 삶의 모순이 지속되는 한 자주적 여성농민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모든 자리에 있었지만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했던 여성농민에 주목합니다. 새해를 맞아 ‘오미란의 한국여성농민운동사’를 월 1회 연재합니다. 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가 시간을 되짚으며 풀어내는 여성농민운동의 역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셨나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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