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소비자·정부 합심해 ‘과정 중심 친환경농업’ 만들자

친환경농업계 전문가 좌담회
‘생태환경 보전’ 핵심 가치 삼고 정책 펼쳐야

  • 입력 2019.02.03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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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역 회의실에서 친환경농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좌담회를 가졌다. 생산자·소비자단체 및 학계·정부·친환경인증기관 대표자들이 모여 향후 친환경농업의 발전을 위해 어떤 경로를 택해야 하는지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그 동안의 친환경농업이 결과 중심, 인증제 중심 농업으로 귀결됐던 점과 앞으로는 생태환경 보전 중심의 농업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정리 강선일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역 회의실에서 친환경농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향후 친환경농업 정책을 생태환경 보전 중심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역 회의실에서 친환경농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향후 친환경농업 정책을 생태환경 보전 중심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한승호 기자
심증식 본지 편집국장
심증식 본지 편집국장

심증식 : 친환경농업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 동안 친환경농업은 생태환경 보전 등의 진보적 의제가 중심이 되기보단 농업경쟁력 강화 차원의 정책이 이뤄져왔다. 진보진영에서도 진보적 의제에 천착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의 친환경농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영재 : 현장 분위기를 보면 (친환경농산물의) 소비는 늘어나나 현장 생산농가는 줄고 있다. 친환경농업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이에 친환경농업계에선 지난해 한국유기농업학회와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작업을 벌였고, 지난해 말 ‘2030 친환경농업 혁신비전’을 만들었다. 그 동안 친환경농업이 결과 중심 농업, 안전한 농산물 생산 중심의 ‘산업’으로 귀결됨으로 인한 문제점이 많았기에, 친환경농업의 갈 길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한 정리작업을 했던 것이다.

윤주이 :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면 친환경농업이 생태환경 보전을 위한 다양한 역할 기능을 해야 함에도 그 기능에 대해 학자들도 소홀했다는 반성이 든다. 안전성 중심의 친환경농업에서 생태환경, 생물다양성, 수질 등을 보전하는 농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곽금순 : 친환경농업에 종사하는 생산자들이 생산비를 보장받아야 하는데, 공급이 많이 되면 가격이 당연히 싸진다는 식의 시장논리에 따라 친환경농산물도 움직이다 보니 생산자·소비자가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친환경농업의 근본적인 문제를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곽금순 한살림연합 상임대표
곽금순 한살림연합 상임대표

박인숙 : 그 동안 친환경농업은 학교급식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했다. 2003년 이래 전국적으로 친환경 무상급식이 확대되면서 친환경농업의 가치에 대한 인식도 확대됐다. 생협 등 먹거리운동 진영의 활동을 통해 시민들에게 친환경농업의 가치를 알리기도 했다. 다만 행정단위에서 공공급식 사안을 더 적극적으로 다뤄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또한 로컬푸드가 강조되는 현 시점에서 그 개념에 대한 방향 정리가 필요하다. 친환경농업이라는 지향을 분명히 담보한 로컬푸드 운동이 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상혁 : 농식품부에서도 농업환경의 전체 문제를 제도적으로 푸는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올해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의 구체화를 위한 실무작업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담당 공무원들도 많은 공감을 하고 있기에 제도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심증식 : ‘과정 중심의 농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친환경농업계에서 제기된다.

김영재 : 친환경농업 정책은 지금처럼 인증자 중심으로 가면 한계가 있고, 그걸 강조하면 할수록 결국 인증문제에 빠져 규제 중심 제도로 갈 수밖에 없다. 현재 논의되는 공익형 직불제 내용에 농업의 생태환경적 가치를 어떻게 담을지에 대해 친환경농업계가 중지를 모아야 한다. 직불금 확대 과정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농업의 생태환경 보전 성격을 중심으로 한 설득이 필요하다. 아울러 생태환경을 저해하는 농업요소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

윤주이 : 국제기준을 봐도 친환경농업은 점차 과정 중심으로 가는 추세다. 반면 우리나라는 점차 결과 중심 제도가 강화됐다 보니 현장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어왔다. 친환경인증 농가 수는 줄어들고 생산량도 줄어들었다. 친환경농업이 더 활성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 농가들에 규제 족쇄를 채우기보다 좀 더 유연하게 제도를 운영하는 게 활성화의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철호 : 과정 중심 친환경농업을 만들기 위해선, 그 ‘과정’을 면밀히 살필 수 있는 인증기관들이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 그럼에도 그 동안 인증기관은 언론에서 친환경인증 관련 문제가 터질 때마다 주눅 들게 되고 제대로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한편으로 인증제도와 규정은 날이 갈수록 강화됐다.

친환경농업 현장 상황을 제일 잘 아는 주체는 농민과 인증기관 심사원이다. 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구조가 개선되고,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상혁 : 농식품부는 현재 친환경농민 대상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려 한다. 물론 그 동안에도 교육이 없었던 건 아니나 인증제도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인증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심사절차가 어떤지에 대한 내용 위주였다. 기술교육도 함께 진행하긴 했지만 농민에게 크게 도움 되는 내용은 아니었다. 의무교육을 신규자, 갱신자 교육으로 나누고, 갱신교육 때도 최소 1시간은 친환경농업에 대한 기본 사상과 철학을 교육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한다.

인증제도가 너무 잔류농약 검사에만 집중해 온 측면도 있었다. 그것을 조금씩 개선해서 너무 검사에 의존하지 않는 방향으로 만들겠다. 다만 심사원의 인증재량권이 넓어지는 데 따른 리스크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심사원의 직업윤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는 만큼, 제도개선도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박인숙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대표
박인숙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대표

박인숙 : 사회적 합의와 공감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선 인증제는 바꾸기 힘들다. 생산 과정을 소비자와 시민들이 함께 알고 참여하면서 같이 만들어가는 인증제가 되지 않으면 수치적인 증빙을 요구하는 인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국민농업 개념이 나오면서 소비자까지 아우르는 농업으로 가자는 이야기가 최근 많이 나오는데, 친환경 인증과정에서도 ‘협치’와 ‘참여’가 핵심이 돼야 한다.

심증식 : 친환경농산물의 판로 문제도 오래된 문제인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상혁 : 일단 로컬푸드 문제에 대해 고민이 많다. 로컬푸드가 확대되면서도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언급은 부족하단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 동안 로컬푸드와 친환경농산물을 어떻게 연계시킬지에 대한 별도의 전략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강제적으로라도 그렇게 해보려 해도 어렵더라. 지역 내에서 로컬푸드 개선 주체가 지역농협이라면 농협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매장에 납품하는 기회를 주는데, 이게 대도시 소비지역이 아니다 보니 기회를 줘서 납품해도 시골에선 차별화가 안 되는 것이다. 일반농산물만 판매하게 될 때가 많았다. 로컬푸드에 친환경농산물이 자리잡기 위해선 먹거리 선순환 체계 속에서 친환경농업계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윤주이 한국유기농업학회 회장
윤주이 한국유기농업학회 회장

김영재 : 이 사안은 직매장 중심·단체급식 중심 로컬푸드로 나눠서 봐야 한다. 단체급식 로컬푸드는 정책적으로 접근할 시 ‘친환경농산물’이라고 반드시 못 박아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직매장 중심 로컬푸드의 경우, 지금 현재 로컬푸드 생산방식에서 PLS 제도가 도입되면 대부분의 농산물을 공급할 수가 없다. 빨리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게끔 유도해야 한다. 지금의 농업생산방식으론 PLS 제도에 적응할 수가 없다. 로컬푸드 체계가 잘 운영되는 일부 지역에선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는 걸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박인숙 : 로컬푸드와 관련해 푸드플랜을 농식품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데, 이게 현재는 ‘지역 내 친환경농산물 우선’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분위기다. 조례로도 로컬푸드 공급의 우선순위를 정한 바 있다. 지자체 내에선 그냥 일반 로컬푸드를 공급하는 위주로 가려 한다. 농식품부와 지자체에서 방향을 잘 잡아주면 좋겠다.

심증식 : 그 동안 친환경농업의 목적과 가치에 대한 교육, 홍보가 부실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돼 왔다는 지적도 많다. 교육을 해도 ‘예비군 교육’ 식의 형식화된 교육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곽금순 : 소비자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 생협 소비자들은 생산현장 방문 및 교류를 통해 어떻게 친환경농산물이 생산되는지 그 과정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농업 생산과정을 알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학교교육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친환경농산물은 어떤 가치를 담은 먹을거리인지에 대해 교육이 돼야 한다.

이상혁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과장
이상혁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과장

김영재 : 농민들 중에도 친환경농업을 소득 창출 중심 목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추세다. 초창기 한국 유기농업을 시작했던 농민들처럼 가치철학으로 무장한 농민이 늘어나야 친환경농업이 지속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항상 교육해야 한다. 조직화가 잘 된 생산단위는 조직 차원에서 스스로 교육하고 서로 농사가 잘 되는지, 문제는 없는지 알아서 살핀다. 일상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가치 내재화가 중요하다고 본다.

심증식 : 교육 또한 생산자 중심의 운동 차원에서 진행돼야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영재 : 강조하고 싶은 건, 친환경농업의 생산기반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산지 조직화가 시급하다. 조직화가 잘 된 곳은 문제를 스스로 풀어가고, 지방농정의 한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과의 연대도 잘 이뤄갈 수 있다. 정책적으로 여러 산지육성 정책이 있는데, 시설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산지 조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심증식 : 기존의 농자재·보조금 지원 위주 친환경농정을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도 늘어나고 있다. 지원정책은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이철호 한국친환경인증기관협회 회장
이철호 한국친환경인증기관협회 회장

김영재 : 지난해 12월 비전선포식에서도 거론한 ‘친환경농업의 관행화’에 있어 농자재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 정책부터가 농자재 지원 중심 구조로 가면서, 농민들한테 그 자재 쓰지 말라고 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 구조를 하루아침에 바꾸긴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첫째, 농민들이 친환경농자재를 필요에 맞게 자가제조할 수 있는 방향, 둘째, 경종·축산농가 분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 셋째, 유박과 같은 수입농자재보다 국산자재를 쓰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꿔가야 한다.

윤주이 : 경축순환을 통해 토양을 보전하고 건강한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구조로 가야 하는데, 현 시점에서 보면 농업학자와 축산학자 간에 일단 말이 안 통한다.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축산분뇨의 경우 유기질 함량이 많은데 그게 악취문제 중심으로만 이야기되는 것도 문제다. 경종·축산농가 간 소통 및 전문가 간 소통을 강화해서 경축순환농업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편으로 농식품부가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을 통해 생태보전 중심 친환경농업을 추구하고자 하는 만큼, 예산 편성도 그에 맞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인숙 : 공공급식 확대 차원에서 계획생산, 계약재배를 늘리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학교급식의 경우 각지의 먹거리통합지원센터나 학교급식지원센터를 통한 공적 시스템을 갖춰서, 생산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유통비용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곽금순 : 공공급식 논의를 할 때 대부분 1차 생산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친환경농산물 가공품 공급을 공공급식에 늘려야 한다. 경기도의 경우 무농약 가공 배 주스를 학교급식에 공급하는 등 가공 관련 논의가 이뤄지는데, 서울은 가공분야 개선이 아직 안 되고 있다. 친환경농업 쪽에서 가공분야를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공급식 등 각 분야에서 친환경가공품의 판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상혁 :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현재의 양분 과다투입 위주 농자재 지원 정책은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보며, 실질적인 관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환경농업에 대해 농업환경 전반적인 틀을 살피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영재 : 친환경농업 업무는 농식품부 친환경농업과에서 다룬다. 행정조직 개편을 통해 적어도 국(局) 단위에선 다룰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철호 : 인증업무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인력 체계도 보강했으면 한다. 전문성 있고 농업현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현장과 동떨어진 친환경인증제가 유지됐다고 생각한다. 현장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인력이 충원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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