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청년농 지원사업!”

[르포] 강원 화천 청년농민 임달래씨

  • 입력 2019.01.01 00: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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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농민 임달래(34)씨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자신의 집에 난방을 하기 위해 구들용으로 준비한 목재를 자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집을 지은 임씨는 “그래도 집을 짓고 나니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됐다”고 말한다.
청년농민 임달래(34)씨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자신의 집에 난방을 하기 위해 구들용으로 준비한 목재를 자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집을 지은 임씨는 “그래도 집을 짓고 나니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됐다”고 말한다.

 

우리 농업이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기 시작한 결과 농촌사회에서는 빈부격차가 뚜렷해졌다. 농촌에선 좋든 싫든 성공한 농민과 그렇지 못한 농민을 구분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경쟁에서 도태됐다는 이유로 ‘소농’의 꼬리표를 단 농민들은 대농을 우선한 일괄적 농정 아래 신음했다. 농정의 관심에서 멀어진 소농들은 농사짓는 행위의 가치, 농촌살이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해달라며 싸웠다.

농촌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한 청년농민들 사이에도 구분선이 있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결은 비슷하다. 부모의 안정적인 판로를 기반으로 농사만 지으면 되는 청년농민과 가진 것 없이 계란으로 바위를 깨보려는 청년농민의 입장은 결코 같다고 볼 수 없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청년창업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에서도 같은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돌아온 청년

임달래(34)씨는 올해 귀농 3년차다. 그렇지만 스스로 ‘농사꾼’이 됐다고 여긴 건 겨우 올해가 되고 나서였다. 강원도 화천이 고향인 임씨는 도시에서 버티다 “거기서 무슨 희망이 있냐”라며 설득한 아버지의 권유로 돌아와 사내면 광덕리에 자리를 잡았다. 1,500평의 땅을 사서 그 중 300평에는 아스파라거스 재배를 위한 하우스를 세우고, 남은 노지엔 혼작(섞어짓기)을 하기 위한 생태적인 밭을 만들었다. 두 달 전엔 밭 옆에 집도 지었다. 이렇게 터를 잡는 데만 3년이 거의 다 지나갔다.

수입도 없는 상태로 정착을 하려 발버둥치는 동안 몸과 마음의 고생은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땅과 집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은 힘든 결정이었다. 1,500평의 땅을 구한 대가로 금리 2%의 이자만 매년 450만원을 갚아야 한다. 정착을 위해 조그만 집을 지으려 받은 대출은 또 별개다.

땅을 빌리는 선택을 할 수는 없었냐고 물으니, 자신은 생태농업을 하고 싶었고, 힘들여 가꾼 땅에서 쫓겨나고 싶진 않았다는 답이 돌아온다. 애써 집을 지은 것도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심정의 표출이다. 그래도 지난해 10월 집을 지은 뒤엔 심리적으로 많은 안정이 됐다고 말했다.

 

지원사업이 생기긴 했는데

“대체로 후계농이 받는다고 생각하면 만족스러운 정책이에요. 하지만 누가 받든 이것에라도 만족하지 않으면 큰일을 당할 것 같아요. 분위기가.”

임씨는 청년창업농 영농정착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매달 100만원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그동안 만났던 ‘기반 있는’ 청년농민들처럼 임씨도 이 사업은 상대적으로 후계농들에게 적합한 지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영농정착’을 지원한다는 목적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정착이 더 어려운 청년을 기준으로 설계됐어야 하는 사업임은 자명하다.

임씨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후계농’ 계층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다. 고향에 부모님이 있지만 약간의 재정적 도움과 더불어 자신의 인맥을 제공해줄 수 있는 정도다. 물론 그 정도로도 아무 연고가 없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이지만, 어쨌든 땅과 살 집은 전부 대출을 통해 얻었고 본인의 농사는 아직 개척 단계에 있다. 수입은 아직까지 올리지 못하고 있다. 농한기에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부모님의 농사 일부를 떼어다 물려받거나 개척해둔 판로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하곤 비교가 안 되죠. 도시에서 벌었던 돈은 초기비용으로 진작 다 써버렸고, 그나마 이 사업으로 ‘유예기간’을 얻은 셈이죠.”

그렇게 정착에 자신의 여력을 다 쏟아낸 뒤 귀농 3년차에 받게 된 지원은 단비와도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업이 기대했던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 모습에 임씨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이 사업 대상자들의 일탈을 지적하며 문제가 시작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청년농민들의 지원금 소비를 사사건건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얼마 전엔 한 청년농민이 지원금으로 게임기를 샀다며 또 기사가 났다.

“저는 그런 소비를 하진 않지만, 그 청년이 충분히 이해가 돼요. 정작 필요한 농사와 정착에 돈을 쓸 수가 없어서 지원금을 쓸 데 없는 곳에 쓸 수밖에 없거든요. 분명히 그 사람도 저처럼 현금은 땅이랑 자재에 다 처박았을 거예요. 이제 자기 돈은 없고 지원이 있는데, 쓸 곳이 넘쳐나도 쓸 수가 없어요. 하지 않아도 되는 외식이 늘어요. 정말 필요한 곳에는 쓸 수가 없어서 돈이 남으니까.”

 

영농에도 정착에도 활용도 부족

구체적인 설명은 이랬다. 봄철엔 밭을 돌보느라 기계를 돌릴 기름이 많이 필요하지만, 매달 유류로 쓸 수 있는 한도는 25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농자재를 사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한다. 큰 금액을 한 번에 쓰는 것을 지양하기 때문이다. 30만원이 안 되는 예초기 하나 사는 것도 망설여진다. 농촌에선 보통 농자재를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외상으로 가져다 쓰고 한 번에 결제하곤 하는데 이것도 어렵다.

“항상 카톡이 와요. 예초기 같은 거 필요하니까 사고 싶은데. 그래요, 살 수야 있죠. 눈치 보며 사겠죠. 근데 싫은 소리가 들려요. ‘그건 그냥 개인 현금으로 사시죠.’ 하고. 그냥 사람이 여러모로 치사해지는 거죠.”

농사를 짓는데 절반도 채 쓰기 어렵다면, 그 나머지는 농촌에선 생활비로만 쓰기엔 넘치는 돈이다. 농한기에는 더하다. 식료품을 살 수 있다고 한들 혼자 매달 50만원 어치나 먹어치울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정착비용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기초적인 생활 비용인 인터넷, 전기, 난방, 통신비용 등에 대한 지출 역시 바우처 카드로 결제하지 못한다. 최소한 기초비용이라도 보장된다면 설령 농사에 실패해서 당장은 소득이 없어도 농촌에서 버티며 다음 기회를 찾아볼 수 있을 텐데, 결국 쓸 데 없는 지출만 장려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농민들 중에서도 제일 절박한, ‘기반 없고 현금 없는’ 청년농민들이 아쉬움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다. 영농정착 지원금인데, 영농에도 정착에도 100% 활용할 수가 없다.

“문제가 되고 나서 한 친구는 통신요금 결제가 막혔어요. 우리는 한 달에 먹는 거 해봤자 20만원도 안 쓸 수 있어요. 옷도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고요. 여기는 농촌이니까. 제일 기본적인 것부터 보장을 해야 농촌에 내려오죠. 아직 수입이 없어서 이렇다 할 현금이 없는데 어떻게 그 비용들을 충당하며 버틸까요. 그래서 현장성이 없다는 거에요.”

기초적인 부분이 이럴 진데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지원대상이 된 뒤 간 설명회에서 “세탁기를 살 수 있을까요?”하는 질문이 나왔을 때 관계자가 “살 수 있겠죠? 정착에 대한 사업이니까요”하고 대답했던 것도 임씨는 기억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이 크게 영농이랑 정착이잖아요. 그럼 정착을 위해 매달 10만원씩 모아서 냉장고를 살 수도 있는 거잖아요. 살고자하면 필요한 건데. 그러려고 200만원 짜리를 한 번에 긁어버리면 욕을 바가지로 먹어요.”

임씨는 카드가 농협에서 나오니 연결도 돼 있겠다, 남는 돈은 차라리 융자금이라도 갚을 수 있게 해주면 기반 없는 청년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라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공부해서 바꾸고 싶어

물론 없는 것보단 낫다. 하지만 더 나은 사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한 데도 정치인들의 의도대로 사업 주체와 청년농민들이 끌려가고 있는 현실에 임씨는 매우 분개하고 있었다. 임씨는 이야기하는 내내 궁금해 했다.

“기자님이 보시기에 어떠세요? 우리들이 좀 싸워보면 정책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바꿀 수야 있다. 이제 겨우 2년 동안 농업을 지켜봤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 농민들은 부패한 정권을 뒤엎는데 일조했고, 농민헌법을 만들어 농협을 움직였으며, 농민수당을 태동시켰다. 전부 아래에서 위를 바꾼 일들이다. 집단의 단결력, 강력한 명분, 전략적인 실행 방안이 돋보였다. 그러나 청년농민들에게서 이런 움직임을 기대하긴 아직 어려워 보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수 자체가 적은 데다 서로를 연결할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화가 많이 나는데, 정책을 이야기하는 건 정말 복잡한 일이더라고요. 이번 국감 사태를 계기로 저의 목소리를 언어로 풀어나가는 것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임씨는 요즘 글을 쓰고 있다. 아직 어떻게 보여줄 지도 정하지 못했지만, 꿋꿋이 귀농한 청년의 속사정을 자유롭게 써 보고 있다. 더 나아가선 지역의 청년들을 모아 자치 농정을 바꿔보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얼마 전엔 이 사업의 개선 필요성을 느낀 청년들이 자체적으로 연 토론회에 나가 열심히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정책 결정에 청년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처음에는 그냥 어떻게든 우리만 잘 살 수 있으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뭐 우아하게 살진 못하겠지만, 농사지으며 이 집에 살 수 있을 정도만 있다면야. 이기적이지도 않잖아요? 대부분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니까. 하지만 버티다 보니 언젠가부터 우리가 과연 어디까지 열심히 살아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한편으로 이건 다음에 들어올 청년 세대들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고요.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분들 덕에 지금 우리가 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이것도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그 뒤는 또 얼마나 힘들까. 투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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