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한라산 테우리⑥ 그때 그 산에 ‘테우리’가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한라산 테우리⑥ 그때 그 산에 ‘테우리’가 있었다
  • 이상락 소설가
  • 승인 2019.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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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제주의 견습 테우리 소년이 은퇴를 앞둔 베테랑 테우리를 따라 한라산 중턱을 오른다. 소년은 말 테우리 노릇의 ‘오름에서 한라산까지’ 모든 것이 궁금하다.

“할아버지가 모는 말이 예순 마리나 된다면서요, 그 말들을 어떻게 다 알아봐요?”

“오래 하다보면 말들하고도 얼굴을 익히는 법이야. 정 모르면 엉덩이에 찍힌 내견을 보고 구분하기도 하고,”

“점심은 어디서 먹어요?”

“다른 테우리들 하고 어느 내창에서 만나자고 미리 약속을 했다가 거기 모여 먹는 거란다.”

평소에, 자신이 관리하는 말들이 주로 풀을 뜯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테우리들은 여럿이서 한 데 어울릴 겨를이 없다. 대신에 점심때가 되면 어느 내창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그 자리에서 둘러앉아 차롱에 싸온 밥을 함께 먹는다. 내창이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말한다. 그러니까 점심 먹는 시간 외에는 철저히 혼자 그 드넓은 산속을 헤매고 다녀야 한다는 얘긴데, 하지만 테우리의 하는 일이 워낙 분주하기 때문에 외로움 따위를 느낄 틈이 없더라는 것이 송종오 할아버지의 얘기다.

테우리들은 수시로 자신이 관리하는 말의 수효를 점검하고, 가능하면 그 말들을 한 무더기로 모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한 사람의 테우리가 50마리의 말을 관리한다고 할 때 그 50마리가 흩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한데 무리지어 있는 경우란 거의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말들을 수시로 이리저리 찾아나서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무리 속에 다른 테우리가 관리하는 말이 섞여 있을 경우에는 해당 테우리에게 말의 소재를 알려주거나, 아니면 그 편으로 말을 몰아다 주기도 한다.

말을 찾아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다보면 날이 저무는 수가 있다. 쾌청하게 맑은 날이라면 모를까 흐린 날은 해가 졌는지 안 졌는지 모르고 있다가 어둠을 만나는 수가 종종 있다. 그런 경우 섣불리 나섰다가 길을 잃어버리면 큰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 어쩔 수 없이 궤에서 밤을 지낸다, ‘궤’는 동굴의 제주 사투리다.

제주에는 여기저기에 동굴이 많다. 어떤 때는 아예 사나흘 밤을 궤에서 지내기도 했다. 테우리들이 자주 드나드는 동굴 속에는 밥해먹는 자리가 따로 있고, 식량이나 반찬을 보관해두는 자리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마지막 밤을 보내고 하산할 때에는, 남은 식량이며 반찬 등을 가지고 내려오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다. 남은 양식이나 반찬은 단지에 넣고 뚜껑을 잘 덮어놓고 내려온다. 악천후 등을 만나 불시에 동굴을 찾을지도 모르는 다른 테우리들을 배려해서다.

말들을 한라산 자락에 놓아먹였기 때문에, 이 골짝 저 둔덕을 제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부러지거나 혹은 죽은 채 발견되는 말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 경우 말 주인을 산으로 데리고 와서 확인을 시켜야 한다. 다리가 부러져서 가망이 없는 말의 경우, 그대로 방치해두는 것이 관행이었다. 말도 자연의 일부인 셈이고, 제가 알아서 돌아다니다 다쳤으니 그대로 썩어서 한라산의 흙이 되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소는 잡아먹어도 말고기는 먹지 않았다. 말의 젖꼭지가 사람처럼 두 개라는 사실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요즘이야 말고기 요리가 각광을 받는다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4.3 사건 때였다. 그 산간 마을 전체에 소개령이 떨어지고, 이른바 ‘토벌대들’이 민가를 모두 불태워버렸다. 주민들은 물론 테우리들도 말을 모두 버리고서 해안지방으로 대피를 했고, 산으로 쫓겨 올라갔던 사람들이 배고픔을 못 견딘 나머지 그 말들을 잡아먹어야 했던 것이다.

이제 한라산엔 목장 관리인은 있어도, 전통적인 의미의 테우리는 없다, 풍속사 사전에서나 만나 볼 수 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중산간 마을 교래리엔 왕년의 테우리 송종오 노인이 산다. 해질녘이면 가끔 기침을 콜록이며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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