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업체의 자조금 거출 거부, 어떻게 볼 것인가

일문일답으로 본 사태의 본질 "독과점 계열업체의 횡포”
육계판 ‘솔로몬의 재판', 축산인·정부 현명한 결정 내려야

  • 입력 2018.12.09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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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하림을 비롯한 주요 육계계열업체들의 닭고기자조금 거출 거부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축산의무자조금제도의 근간을 닭고기 시장을 독과점한 계열업체들이 위협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이번 사태의 본질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해 본다.

(주)하림을 비롯한 육계계열업체들의 닭고기자조금 거출 거부사태는 닭고기 시장을 장악한 계열업체의 횡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전북 정읍에 위치한 하림 공장 내 모습.
(주)하림을 비롯한 육계계열업체들의 닭고기자조금 거출 거부사태는 닭고기 시장을 장악한 계열업체의 횡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전북 정읍에 위치한 하림 공장 내 모습.

자조금 거출을 거부하는 이유는?

‘남도 안내니 나도 내지 않겠다. 납부한만큼 자조금을 쓰고 싶다’는 얘기다. 닭고기자조금이 축산자조금의 조성 및 운용에 관한 법률(축산자조금법)에 의거해 운영되는 자금이란 걸 떠올리면 이 주장의 시비를 파악할 수 있다.

축산자조금법 1조는 이 법의 목적이 ‘축산업자 및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축산업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계열업체 논리대로라면 소비자는 1원도 자조금을 납부하지 않았으니 권익보호의 대상에서 빠져야 하는가? 계열업체의 논리는 자조금이 가진 공익적 개념을 저버리는 것이다.

자조금은 주식회사가 아니며 주식회사처럼 운영할 수도 없다. 동법 4조는 자조금의 용도를 규정하고 있는데 자조금을 납부한 축산업자가 자조금을 쓸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 의무자조금의 사업계획 의결은 동법 13조에 나오듯 자조금대의원회의 직무에 해당한다. 이들 대의원의 선출은 동법 8조에 따르면 지역별로 선출해야 한다. 납부한만큼 의결권을 갖는다는 조항 역시 없다.

법을 뛰어넘는 주장이란 말인가?

그렇다. 자조금 거출을 거부하는 것부터 불법이다. 현재 육계계열업체들은 집단으로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 내용이 잘못됐다면 법 개정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상황에 따라 불복운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축산자조금법은 육계계열업체만의 문제가 아닌 전 축종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육계만 따로 떼어내 법을 만드는 것 역시 축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일텐데 축산업계 전반의 이해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걸까. 계열업체의 독단적 행보에 축산자조금법이 흔들려도 되는건지 의문이 남는다. 육계시장을 독과점한 계열업체의 횡포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계열업체들이 왜 이같은 사태를 촉발했을까?

육계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자조금 예산집행에서 수급조절사업 중 냉동닭고기 비축, 이웃나눔 기부 행사 등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다며 계열업체들의 불만이 높다고 한다. 오세진 닭고기자조금위원장은 지난해 자조금 거출율이 예산대비 50%대에 그친데 따른 여파라고 한다. 육계협회 소속 계열업체들 중에서도 이른바 ‘무임승차’에 해당하는 곳이 있다. 육계협회도 노력하겠지만 우선 거출율을 높여야 계획한 사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하림을 비롯한 주요 계열업체들은 집단으로 자조금 거출을 거부하는 선택을 했다. 계열업체들 사이에선 자조금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닭고기자조금은 국내산 닭고기를 홍보하지만 계열업체는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한다. 이에 자조금으로 계열업체가 원하는 방식의 수급조절 실행이 불투명하자 손을 빼려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기실 수급조절의 방법으로 냉동닭고기 비축이나 이웃나눔보다 원종계 도태처럼 근원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만성적인 공급과잉의 원인이 계열업체간 점유율 경쟁에서 비롯됐다 보기 때문이다. 점유율 경쟁으로 촉발된 수급불안을 냉동닭고기 비축같은 방법으로 풀면 계열업체의 손해를 자조금이 메우는 모습이 된다. 이는 담합으로 비춰질 우려도 있다.

사태의 책임이 최근 관리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오 위원장에게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일부 농업전문지가 그런 논조로 보도하고 있다. 계열업체도 육계협회도 전국육계사육농가협의회도 공식적으로 오세진 위원장의 당선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내심은 모를 일이나 이들이 지금까지의 주장대로 축산자조금법 개정이 목표라면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회에 요구할 사안이다. 오 위원장은 법 개정 전까지는 법대로 자조금을 운영할 뿐이다. 그 또한 법대로 운영하겠다는 게 공식입장이다.

그런데 <농업인신문>은 ‘닭고기자조금 지지부진 특단 대책 필요'란 1면 머릿기사에서 “계열회사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온 오 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자조금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예측됐다”며 업계도 오 위원장이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고 의견을 내고 농식품부도 직접 개입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엉뚱하게 농식품부가 아닌 오 위원장에게 문제해결의 책임이 있다고 지목한 것이다.

<농축유통신문>은 한술 더 떠 ‘농축산물 자조금, 의무에서 임의 전환 첫 사례 나오나'란 기사에서 “오세진 위원장 또한 강경투쟁으로 다져진 운동권 인사다”라는 색깔론을 펴곤 오 위원장의 입장으로 갈등의 골은 더욱 메워지기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건가?

세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첫째, 두 신문의 보도대로 계열업체들이 오 위원장 개인을 비토하고자 닭고기자고금 거출을 거부하는 거라면 이는 선거불복으로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다.

둘째, 계열업체들이 이 사태를 촉발한 이유가 오 위원장 개인을 비토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면 두 신문은 억측으로 오 위원장을 코너에 몰아붙인 것이다.

세 번째는 위의 두 가정이 동시에 해당되는 사례다. 계열업체들은 내심 오세진 위원장을 비토하고 싶지만 선거불복으로 명분을 잃을까 공식적으로 나서지 않자 이들 신문이 앞장서 오 위원장을 책임져야 할 당사자로 몰아 계열업체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업전문지가 계열업체의 나팔수 노릇을 한 셈이다.

이번 사태는 육계판 ‘솔로몬의 재판'이라 할 수 있다. 주요 계열업체가 자조금 거출을 거부한 뒤 한 자조금관리위 관계자는 “사무국 운영비도 없는 형편이다”라고 하소연했다. 한우, 한돈, 우유에 비교하면 규모가 작은 닭고기자조금이 둘로 쪼개지면 더욱 사업이 쪼그라들 것이다. 계열업체는 이 허점을 파고들어 “거출비율만큼 자조금은 내꺼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닭고기자조금 사업이 자조금 거출 거부로 차질을 빚는 동안 닭고기 수입은 증가해 지난 10월까지 수입한 물량만 해도 2016년과 2017년의 수입량을 넘어섰다. 국내산 닭고기 홍보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닭고기자조금은 손발이 묶인 상태다. 올해 자조금 거출율은 지난 10월 기준 고작 22%밖에 안 된다.

아이를 둘로 나눌 순 없으니 축산인들과 정부가 솔로몬처럼 현명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공공연한 불의를 두 눈 뜨고 바라볼 수만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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