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62] 멧돼지와 스마트팜

  • 입력 2018.11.25 01:41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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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니사과 농사가 지난달 중순경 마무리돼 조금은 한가해 졌다. 그래서 지하수 대공도 파고 농막에 조그만 창고도 붙여 만들었다. 사과밭 이랑에는 호밀을 파종하기도 했다. 또 사과따기 자원봉사도 다니고 설악산의 만추도 즐기면서 모처럼 여유로운 11월을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아침이면 늘 하던 대로 과수원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깜작 놀랐다. 과수원 이랑이 마구 파헤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멧돼지의 짓이 틀림없기에 가장자리의 철망을 살펴보니 들어온 곳과 나간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귀농 첫해에 고라니와 멧돼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지난해 봄 그러니까 2년여 전에 홀로철망이라는 것을 인터넷에서 구입해 200m 정도 되는 밭 가장자리를 아내와 둘이서 모두 둘러쳤다. 150mm 쇠말뚝을 5m 간격으로 땅에 박고 망을 치는 것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해서 홀로철망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와 올해는 고라니는 물론 멧돼지 피해가 전혀 없었다. 이제는 못 들어오는가 보다고 안심을 했다.

그런데 웬걸 두해를 넘기지 못하고 고라니는 못 들어왔지만 멧돼지는 들어왔다. 초겨울이 되면 멧돼지는 단백질 축적을 위해 지렁이와 개구리 등 동물성 먹이를 찾는다고 한다. 유기농장에 온갖 개구리와 메뚜기, 지렁이 등이 많은 걸 어떻게 알고 용케도 황금시장을 찾아냈는지 모르겠다. 매우 똑똑한 놈임에 틀림없다.

과수원을 둘러 설치한 철망에는 야광 LED와 크래졸을 군데군데 설치했다. 윤석원 교수 제공
과수원을 둘러 설치한 철망에는 야광 LED와 크래졸을 군데군데 설치했다. 윤석원 교수 제공

아무튼 고춧대 등으로 철망을 보완했지만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또 뚫고 들어왔다가 나갔다. 면사무소에 연락했더니 유해조수 퇴치를 위해 명사수가 방문할 수 있다고 했다. 당장 저녁에 출동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틀씩이나 야밤에 출동했지만 허탕이었다. 결국 포수들은 사냥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동네 분들의 자문을 받아 야광 LED와 크래졸을 여기저기 설치했다. 그래서인지 오늘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 또 들어올지는 알 수 없다.

철망으로도 멧돼지를 완벽하게 퇴치할 수는 없으니 정부가 좋아하는 스마트팜을 만들면 완전한 퇴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사과농장 전체를 철골구조로 막고 유리나 비닐로 덮으면 멧돼지는 절대 못 들어올 것이고 첨단농법과 AI 등 스마트한 기술로 사과농사를 지으면 어떨까.

그런데 그러한 스마트팜이 사과농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조달 가능하다해도 수지가 맞지 않을 것이 뻔하다.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다.

현장과 정책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멧돼지 하나 퇴치하지 못 하는 소농에게 스마트팜이니 첨단농업이니 하는 것은 그림의 떡이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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