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구제역 백신 상용화, 빨간불 켜졌다

FVC, 메리알과 기술제휴 난항 … 백신 생산 계획 차질 불가피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또 다른 괴작, 사업타당성 바로 따졌나

  • 입력 2018.10.14 10:46
  • 수정 2018.10.14 10:47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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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한국형 구제역 백신 상용화 계획이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동물약품업계에서는 애초부터 사업 타당성이 없었다는 견해가 새어 나오고 있다. 이명박·박근혜정부가 빚어낸 ‘괴작’을 문재인정부 100대 국정과제로 둔갑시켜 타당성 없는 사업을 붙들고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본부장 박봉균)는 지난해 9월 구제역 백신 제조시설 구축 지원사업 대상자로 FVC(대표 박영호)를 선정했다. FVC는 녹십자수의약품·고려비엔피·코미팜이 참여한 컨소시엄으로 한국형 구제역 백신을 국내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이어 검역본부는 지난 7월 FVC와 구제역 백신 국내 생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단계적으로 구제역 백신 생산 원천기술을 이전하기로 했다.

업무협약 직후 만난 박영호 FVC 대표는 “사업비는 약 690억원(융자 70%, 자부담 30%)이지만 유지비 등을 합하면 총 1,000억원 가량 들어가는 사업이다”라며 “회사 입장에선 돌아오는 이익이 크지 않다고 예상되니 어려운 사업이긴 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박 대표는 “사업을 하지 말아야할 99가지 이유가 있다면 반드시 해야할 이유는 하나다. 국가가 재난형질병에 대한 방역기술을 보유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라면서 “백신 제조시설 완공은 2020년이며 2022년 하반기엔 시생산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

FVC가 일정한 품질의 백신을 대량 공급하려면 상용화 경험이 풍부한 해외 백신사와의 기술제휴가 필수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그러나 FVC가 현재까지 메리알사와의 기술제휴 합의를 맺지 못하면서 백신 제조시설 구축 사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FVC와 메리알사 간의 기술제휴는 사업상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측면이 있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요청 답변에서 “FVC는 메리알사와의 기술제휴 합의가 지연됨에 따라 사업기간 준수를 위해 다른 국내외 백신회사와 기술제휴 체계 구축 검토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밝혔다.

민간기업 입장에선 백신개발 사업 자체가 여러 변수를 감당해야 하기에 상당한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는 면이 있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이 제조시설은 국내 전체 백신 수요를 충족 해야하기에 계속 백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의 변이와 해외에서의 유입도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검역본부가 관련한 기술개발을 책임진다해도 민간기업이 축산현장의 변화에 적극 대응하며 수익성도 함께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다.

처음엔 5개 제조사가 구제역 백신 생산시설 구축 사업에 참여할 의향을 비췄지만 정작 FVC엔 3개 제조사만 참여한 이유도 사업타당성, 특히 사업의 경제성이 낮은 점이 원인이라는 관측도 있다. 구제역 청정화까지 소요될 기간과 해외수출 여부도 변수로 꼽힌다.

동물약품업계 일각에선 사업 타당성부터 제대로 짚었어야 했다는 탄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오영훈 의원이 농식품부에게 받은 <구제역 백신 생산시설 건립 타당성 조사> 연구결과보고서를 보면 검역본부에서 시행한 연구용역은 구제역 백신 최적화에 소요되는 시간은 3년, 최적화 뒤 국내 수요량 100%를 한국형 백신이 충족하는 걸 전제조건으로 가정해 타당성을 분석했다. 연구용역의 전제조건을 맞추려면 해외 제조사들의 백신은 오는 2024년까지 완전히 국내 시장에서 철수해야 한다.

이에 한 업계 관계자는 “민간 제조업체는 아무런 기술축적도 안됐으니 상용화 생산 경험이 없는 검역본부만 믿을 수밖에 없다. 또, 우리나라 구제역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 “상당히 리스크가 큰 사업인데 당위성만으로 밀어붙인 게 지금의 결과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융자사업이니 결국 민간기업이 오롯이 부담을 안아야 하는데 이렇게 리스크가 큰 사업에 제대로 투자할지도 의문이다”라며 이제라도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내다봤다.

구제역 백신 국산화는 지난 이명박정부에서부터 장기적으로 추진된 사업과제로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2015년 1월 우리나라 특성에 맞는 백신 국산화와 양산체계 구축을 지시한 바 있다. 이어 문재인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 이를 반영해 2020년까지 한국형 구제역 백신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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