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와 이름에 걸맞는 농협 사업
덩치와 이름에 걸맞는 농협 사업
  • 김순재 전 조합장
  • 승인 2018.10.1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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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 전 조합장
김순재 전 조합장

농촌에 살면서 지역의 지명과 전래하는 격언들을 생각하면서 그 내용들을 분석해 본 적이 많았다. 그러면서 생각도 하지 못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하고, 도대체 이해가 불가능한 내용들을 발견하고는 ‘어찌 저런 일들이 미리 예측돼 생겨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숱하게 했다.

예를 들어 필자가 사는 지역에는 ‘구룡산’이라는 해발 400m 가량의 산이 있는데 그 산 밑으로 ‘룡-용’자가 마을 이름-지명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홉 군데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은 매우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또 다른 예로 혼인 후 처가를 방문해 중산간지인 그 곳의 지명-마을 이름에 유달리 물과 관계된 오래된 지명들이 있어, 중산간지에 ‘무슨 이런 지명들이 있지?’ 했는데 이후 그 곳에 댐이 들어서면서 물과 관계된 지명 대부분이 수몰돼버린 것도 보았었다.

이름으로 실질의 내용을 예언(?)한 희한한 경우는 우리 마을도 그러하다. 필자가 사는 마을은 법정‘리’로는 ‘월잠리’이고 월잠리에는 3개의 자연 마을이 있다. 월잠리 3개 마을은 지명이 가월·동월·판신이다. 가만히 따지고 보니 ‘달이 물에 잠긴다는 월잠’이나 ‘달이 하나 더 있다는 가월’이나 ‘달이 같아서 두 개라는 동월’은 같은 뜻으로 해석됐다.

생뚱맞게도 유독 우리 마을 이름만 판신 혹은 판개로 돼 있어, 그 유례를 보니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이름으로 ‘둑 공사가 시작된 곳·둑을 고치기 시작한 곳-판신·판개’였던 것이고 월잠리 내의 기존 2개 마을은 둑 공사로 인해 저수지가 생겨서 마침내 과거에 만들어진 이름-달이 물에 잠겨서 2개가 되거나 달이 물에 비춰져서 같아진다는 내용이 실현됐던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이름을 짓건, 마을이 만들어지면서 지명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우리 선조들이 상당한 예견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며 전래의 이야기들이 미신 등과도 관련된 것이 있지만 하나하나를 매우 중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끼가 구멍이 크면 죽는다’

경상도에서만 나고 자란 필자는 어린 시절 어른들의 대화에서 “끼가 구멍이 크면 죽는다”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었다. 농촌에 정착해 살아가면서 그 말을 생각해보니 ‘끼’는 ‘게’의 방언인 듯 했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처신은 재앙을 부른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필자가 어렸던 시기에 옛 이웃 어른들이 무슨 근거로 분수에 맞는 처신을 ‘게’구멍에 비유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시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주거환경 개선이 한창일 무렵에 형편에 맞지 않게 빚을 내 집을 크게 넓히는 이웃들을 비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열악한 주거 조건들을 개선하는 일부 이웃들에 대한 ‘반 시샘, 반 비꼼’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하고 심각했던 당시에 당장 생산적인 것에 기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주거에 대한 지나친 투자는 위험을 초래한다는 뜻으로 이야기 한 듯 했다.

과거에 그러했다고 하더라도 필자는 ‘분수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고 새겼었다. 종종 큰 결정들을 할 때는 이 속담을 새기곤 했다. 되새겨 검토하는 일이 나쁘지는 않으니 그 적절성을 재삼 검토했었다.

농협 투자, 늘 면밀히 검토해야

조합장을 하면서 여러 투자 요청을 받았었다. 농협이 받은 예·적금 여유분의 투자도 많이 권유 받았고 시설 투자에 대한 권유도 집요하게 받았었다. 투자 요청에 대한 즉답은 늘 ‘검토해 보겠습니다’였고 많은 투자가 검토 대상이었다.

예·적금 여유분의 돈을 금고에 넣어 두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농협이 가진 시설이 부족하면 일을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기에 어느 시기에 어떻게 투자하느냐는 늘 고민의 대상이었다.

한편으로는 조합장으로 재직하면서 번듯한 뭔가를 이뤄야한다는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작은 투자는 여럿의 의견을 받아서 절차를 거쳤고, 큰 투자는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먼저 받고 여럿의 의견을 거치고 절차를 거쳐서 집행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들은 숱한 이야기 중 하나가 “조합장이 결정해서 팍! 밀어붙이면 된다”였다. 정말 여러 곳에서 그리 들었다. 결정이 났을 때는 강하게 밀어붙이기도 했었지만 결정을 밀어붙이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질타도 많이 받았다.

농협의 자산 규모에 따라 투자 규모도 달라지지만 전문성이 아니라 선거에 따라 경영주체가 결정되는 농협의 투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농업협동조합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사업에의 투자는 결과를 바르게 이끌기 위한 필요·충분한 조건들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저금리의 나름 안정적인 추세이지만 고금리였던 10여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자산을 초과해 무리한 투자를 감행한 지역농협들은 거의 합병되어져 망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부적절한 검토방식을 거쳐서 금융에 투자한 숱한 농협들이 망했다. 무리하게 시설물에 투자한 농협들도 많이 망했거나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산을 초과해 투자하는 것은 정밀한 검토가 필요함에도 많은 농협들이 그 규정을 지키지 않아 숱한 조합원의 자산을 소멸시키는 어리석음들을 범했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투자 실패는 조합원들에게 손실을 끼치는 결과를 초래함에도 조합원들의 대의기관인 ‘대의원회’가 너무 쉽게 인준을 하는 경우도 자주 들었었다.

물론 그런 농협의 경우 대개 관련 자료를 상세히 공개하지는 않는다. 부적절하게 지나친 투자로 ‘끼가 구멍이 커서 죽는 결과’를 내온 것이었다. 이건 옛 어른들의 말씀만 새겼어도 피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농협 사업의 실패는 궁극적으로 조합원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업 혹은 투자를 진행하는데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사진은 한 지역농협 경제사업장에 마련된 농자재 판매장 모습. 한승호 기자
농협 사업의 실패는 궁극적으로 조합원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업 혹은 투자를 진행하는데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사진은 한 지역농협 경제사업장에 마련된 농자재 판매장 모습. 한승호 기자

재생산이 불확실한 투자

필자가 조합장으로 있었던 동읍농협의 경우 1년 12개월 365일 중에서 매년 10월 25일부터 11월 10일까지는 단감선별장이 부족하고 매년 11월 5일부터 12월 15일까지는 저온저장고가 부족했다. 당연히 농민들은 시설확충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조합장으로서 불편함을 해소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지만 그 노력 내용은 시설확충이 아니라 일반 농가·영농법인·작목반의 시설을 단기간 임대해 사용하는 방향이었다. 일 년 365일 중에서 30일만 부족하고 나머지 335일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에 투자를 더 진행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손실이 너무 컸다.

그래서 많은 민원에도 불구하고 시설투자를 감행하기가 힘들었고 부자재를 활용해 기존 시설물들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임대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었다. 전국의 여러 농협을 둘러보면서 탐날 정도의 훌륭한 시설들이 있었고 우리 자산으로 충분히 결정할 수 있었음에도 투자는 소극적으로 했었다.

필요한 투자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경영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으면 매우 주의해야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설 투자가 자산에 비해 적정하다고 해서 농협이 경영을 통해 재생산(이익)을 이뤄내지 못하면 조직-농협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투자가 적절한 규모였다 하더라도 ‘끼가 먹을 게 없는 곳에 자리-집을 틀어서 포식자는 피해도 굶어 죽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본질을 벗어나는 투자

농협 사업은 언론과 조합원들로부터 시달리기가 쉽다. 농협의 본질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구설에 쉽게 오르는 것은 농협이 가진 공공성 때문이다. 많은 유혹이 있겠지만 농협이 투자를 함에 있어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우 주의해야 한다.

농협의 본질에 맞다 하더라도 농협은 지역의 영세 소상공인들과의 경쟁도 매우 주의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 전국의 많은 농협들의 투자 내역을 살펴보면 수익을 위해 본질을 벗어난 투자가 상당히 있음을 알 수 있다.

농협의 경우 농약회사, 종자회사, 비료회사엔 투자를 했는데 농기계회사엔 투자하지 않는 이유가 이해가 잘 안됐다. 이는 중앙회 조직도 지역농협도 그렇다.

소극적인 투자나 안정성만 추구하는 투자가 문제될 수도 있지만 적정한 방식으로의 투자 고민이 충분하지 않아 본질을 벗어난 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당하는 황당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런 경우는 솔잎에 있어야 할 송충이가 잡초에 붙어 있다가 제초제를 맞아서 죽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내년 3월 13일 조합장 동시선거를 앞두고 여러 제보가 필자에게도 흘러 들어오고 있다. 그 내용들 중에서 상당수는 사실로 보이며 직접 자료를 확인한 경우도 있다. 대개 그런 경우에 ‘이 자료를 제게 보여주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되물어본다.

도대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자료들을 보면서 그 처신-행태가 씁쓸하지만 이 시기까지 해당 자료를 갖고 있다가 지금에야 터뜨리려고 하는 데에 대한 순수성도 충분히 의심되기에 쉽게 동조하는 편은 아니지만 몇몇은 정리해야 전체 농업협동조합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농민들에게는 늘 농협과 조합장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시기에 농협의 여러 사업에 대해 공격하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농협의 주인으로서 거의 ‘쪽박을 깨버려도 좋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제보의 상당수는 조직의 부도덕하거나 불법적인 내용에 집중돼 있다. 제보 내용들이 이해가 안 되고 부끄러운 게 많다.

대개가 횡령이고 배임

농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업을 하도록 만드는 기회가 현장의 농민들에게는 이제 4년에 한 번씩 주어진다. 조합장 탓 말고, 이사회 탓 말고, 대의원회 탓 말고 농민들이 직접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내년 사업을 점검하는 총회를 앞두고 있는 시기이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려 농협 사업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지역 정서에 휘둘리지 말고 냉정히 해야 할 시기이다. 부당한 농협 사업에 대해 옹호할 생각도 없지만 농협의 거대한 부정직함을 보호할 생각도 없다. 최근에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지역농협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이 있다는 농협중앙회의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종결이 됐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 농협중앙회장은 지난 선거에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었다. 필자도 당시 선거에 출마한 사람이었기에 매우 처신에 주의하고 있었음에도 들려오는 씁쓸한 이야기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 내용은 현 중앙회장과 함께 입건되고 기소된 한 명은 필자가 중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농협장직을 사퇴하고 농협중앙회가 지분의 상당부분을 지닌 회사의 사장으로 가 있다는 것이고, 앞의 농협중앙회장을 역임하며 그 직무와 관련돼 처벌받은 누구는 농협중앙회가 실질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회사의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투자 중의 으뜸은 사람에 대한 투자인데 지도감독권이 있는 상부조직의 처신이 떳떳하지 않으니 지역농협들이 바르게 돌아갈 턱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농협의 부당한 사업에 대한 제보들은 이미 농협중앙회가 전산으로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는 오래된 내용들이었다. 대부분의 농협에 대해 중앙회는 2년 단위로 정기감사를 시행하는데 발견이 충분히 가능한 내용들이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농협중앙회가 감사과정을 거치며 은폐하거나 축소한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서 결국은 농협이 비리 집단으로 매도될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자정의 시기를 놓치고 절차를 지키지 않고 공공성을 잃는다면 농협은 농민과 우리 사회에 복무하기가 힘들다. 정권 초기인 지금 농협중앙회를 부득불 손봐야 할 정도로 그 내용이 너무 많고 부끄럽다. 필자가 보기에 대개가 횡령이고, 배임이다.

‘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를 매월 1회 연재합니다.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을 역임했던 김 전 조합장이 들려주는, 늘 곁에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농협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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