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헌법 앞서는 규제프리존법

  • 입력 2018.09.21 20:20
  • 기자명 임영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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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환 변호사(법무법인 연두)

지난 8월 여당은 과거 정부시절 반대했던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규제프리존법)」을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는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지역별로 조율 사항이 남아 결국 통과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야합의로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규제프리존법의 역사는 전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규제를 철폐해 지역별 전략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규제프리존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규제프리존법의 주요내용은 착한 규제를 풀어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시민단체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규제프리존법을 반대했고 지금까지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 그런데 여당이 돌연 입장을 변경해 야당과 합의로 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자신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 공공성 확보 등을 위해 반대하던 민영화를 전격적으로 찬성한 것이다.

규제프리존법에는 다양한 분야가 담겨있고 농업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주로 농지법,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관련된 공정거래법, 농어촌정비법 등에서 정한 규제에 대한 예외 조항들로 구성돼 있다. 구체적으로, 엄격한 조건에 따라 농지를 위탁하거나 임대차할 수 있는 농지법 규정에 예외를 인정해 규제프리존 내에서는 농지소유자가 자유롭게 위탁 내지 임대차 할 수 있다. 농업진흥지역에 대한 해제 역시 농지법에서 정한 조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규제프리존 내에서 가능하다. 또한 대기업이 농업회사법인을 계열사로 운영할 경우 이 농업회사법인은 7년 동안 공정거래법에 따른 기업집단에서 제외된다. 마지막으로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임대기간이 정해진 매립지, 간척지 등이 규제프리존 내에 있으면 예외적으로 그 기간을 달리 정할 수 있다.

규제프리존법이 시행된다고 가정해보자. 대기업은 규제프리존 내에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해 농지 소유자로부터 대규모 농지를 자유롭게 임대하거나 아예 농지를 매입할 수 있고 아니면 국가 소유 간척지나 매립지를 수십 년간 장기 임대해 농업관련 사업을 펼칠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규제프리존 내에 있는 지자체장이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하면 대기업은 계열사인 농업회사법인을 통해 농지를 매수하고 추후 전용해 농업용도가 아닌 공장이나 상업부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가정이 터무니없는 과장일 수 있다. 하지만 규제프리존법이 통과되면 법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규제프리존법이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농지보전과 경자유전 원칙을 손쉽게 피해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현재 농지법이 상위법인 헌법에서 정한 원칙에 너무 많은 예외를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과 농지법이 농촌 현실과 법의 취지가 조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와중에 규제프리존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식량공급과 국토환경보전, 경자유전원칙이라는 농지의 기본이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농지가 관리·운영될 것이다.

나쁜 규제를 철폐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착한 규제를 없애는 것은 국민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규제프리존법에서 정하고 있는 농지법 등 농업관련 법률의 예외 조항은 헌법의 농지 이념을 앞서가도 너무 멀리 앞서가고 있다. 규제 철폐로 인한 피해가 농민과 국민에게 발생해서는 안 되므로 규제프리존법은 폐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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