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벼가 익어 고개 숙인 황금들녘 사이로 낡을 대로 낡은 콤바인 한 대가 탈탈거리며 나락을 벤다. 운전수는 농사경력 50여년의 서태주(72, 경남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씨. 요즘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포대형 콤바인(모델명 R1-241A)을 이끌고 부지런히 들녘을 오가건만 3조식이라 일의 속도가 더디다.
허나, 벼가 탈곡돼 나오는 포대 옆 발판에 서있는 아내 이갑이(63)씨는 나락이 가득 담긴 포대를 떼 내고 빈 포대를 다시 매다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세마지기 남짓한 논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한 바퀴 돌자 40kg 가마니 여섯 개가 콤바인 발판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즈음이면 아내 이씨는 콤바인 발판의 끄트머리를 까치발로 밟은 채 포대에 윗몸을 기대 버틴다. 함께 손발을 맞춰온 오랜 세월, 아내의 사정을 익히 아는 남편은 콤바인의 진행방향을 살피다가도 수시로 고개를 돌려 후미를 확인하더니 이윽고 콤바인을 세운다.
이어 발판에 쌓여있던 포대를 맞잡고 논둑으로 들어 올리는 부부. 첫 수확의 기쁨일까, 구릿빛 얼굴에 웃음꽃이 피며 하얀 이가 도드라진다.
아내 이씨가 말한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도 결국엔 우리가 늦어요. 기계도 구형이고 우리도 구형이라(웃음)….”
부부의 힘으로 오롯이 일궈 삶을 지탱해온 농사에 “아주 구형”이 돼버린 콤바인도 제몫을 톡톡히 했을 터, 지난 10일 추수를 갈무리하며 엔진을 끄는 남편 서씨의 말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함께한 지 30년도 넘었지요. 이거(콤바인)하고 고마 함께 인생을 마치면 돼요. 이제 (벼 베는) 칼날도 안 나온다 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