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농업계 ‘스마트팜 밸리’에 첫 문제제기

상주 농단협, ‘같은 처지’ 김제 농민들과 함께 토론회 열어
“유리온실 속에서 자란 청년이 농민이 될 수 있겠나”

  • 입력 2018.08.26 10:32
  • 수정 2018.08.30 10:19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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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20일 상주농민단체협의회 주최 ‘스마트팜이란 무엇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김제의 한 농민이 사업에 대한 반대의견을 역설하고 있다.
지난 20일 상주농민단체협의회 주최 ‘스마트팜이란 무엇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김제의 한 농민이 사업에 대한 반대의견을 역설하고 있다.

 

지난 2일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개호)는 경북 상주와 전북 김제를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대상지 2곳으로 전격 발표했다. ‘스마트팜’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사업 선정 소식부터 접한 지역 농민 사회가 본격적으로 내용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상주시농민회(상주시농민회)와 한국농업경영인 상주연합회 등으로 구성된 상주농민단체협의회(상주농단협)는 지난 20일 ‘스마트팜 혁신밸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전북 김제에서 온 김제시농민회원 40여명을 비롯해 상주 지역 농민들과 기초의원, 경북도 및 상주시 관계자 등 250여명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이날 토론회의 배경에는 상주-김제 두 지역의 농민 간 교류활동이 있었다. 상주와 김제의 농민회는 지난 2002년부터 서로의 지역을 오가며 매년 ‘교류한마당’이라는 행사를 열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지역이 스마트팜 혁신밸리의 사업지로 함께 선정됐다. 고필호 상주시농민회 사무국장은 “올해는 교류 행사 대신 지역농민들 및 같은 처지의 김제 농민들과 함께 토의하는 자리를 상주 농단협에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토론회는 정주호 경북도 친환경농업과 사무관이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다른 두 명의 토론자가 사업의 문제점을 제시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들 뿐만 아니라 객석의 지역농민들도 그동안 알려진 우려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사실상 경상북도와 상주시를 대상으로 질의하는 공청회에 가까운 모양이 됐다. 사업계획의 소개를 마친 정 사무관은 “경북도는 농민들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추후 사업구상은 농민단체와 함께 논의하며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토론자로 초청된 조경희 김제시농민회 교육위원장은 “해마다 쓰이는 시설 개선 지원 예산이 있고, 굳이 이 사업이 아니어도 청년농 교육 역시 가능하며, 밸리 안에 지어진다는 APC 역시 농협 예산으로도 얼마든지 지을 수 있다”며 “모든 농민에게 쓰여야 할 이 큰 돈이 소수 농민, 대기업, 연구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는 ‘7가지 논점’을 통해 강력한 반대의견을 내놔 주목을 받았다. 이 상임대표는 그중에서도 △현장 농민들 역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선택하는 ‘현실적인 스마트팜’과 대규모 자본과 기업이 참여하는 ‘스마트팜 밸리’는 완전히 다른 점 △농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이 사업을 혁신성장의 정책으로 부를 수 없는 점 △스마트팜 밸리에서 청년농업인 육성이 불가능한 점을 근본적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특히 이 사업이 전면에 내건 ‘청년창업농 육성’이라는 목표에 대해 이 대표는 “농가와 지역이 소통하며 가르치고, 비바람과 가뭄을 같이 견디며 동고동락한 청년만이 위대한 농업유산을 물려받은 농민으로 거듭날 수 있다”며 “단지 안에 있는 숙소에서 온실로 출퇴근하고, 공무원·연구원·기술자·관광객만 만나는 청년이 우리의 들녘과 마을의 미래를 걸 농민으로 성장할 리 없다”고 못박았다.

상주지역 농민들도 스마트팜이 진정한 농민을 육성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한국농수산대학교(한농대) 상주지역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농민 이재경 씨는 “대학에서 3년을 농사 가르쳐서 졸업한 학생들도 적응을 못해 지원받은 국비를 돌려주면서까지 농사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상당수”라며 “학교에서 배운 것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을 접목해도 농촌에서 버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과연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에게 이것이 정답인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정우진 상주 4-H연합회장은 3~5년 동안 스마트팜 속에서 농사를 지은 청년이 그 뒤 독립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민이 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한편 “생산성이 향상됐을 때 일어날 농산물 가격 등의 시장문제 역시 스마트팜에 참여하는 청년농민에게 똑같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던졌다.

상주 지역 농민들은 이외에도 유지에 한해 최소 수십억원이 들어갈 대규모 단지를 상주시 예산으로 운영할 경우 상주 농업 예산의 실질적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력하게 피력하며 기술 실증 위주의 소규모 연구단지로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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