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청년 농활대’에게

  • 입력 2018.07.15 09:34
  • 수정 2018.07.15 09:38
  • 기자명 최용혁(충남 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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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충남 서천)
최용혁(충남 서천)

어느덧 들판은 푸르게 채워지고 이른 봄에 심은 작물들은 청년이 다 되어 갑니다. 파종해서 모내기까지는 난리 굿판이었습니다. 모를 시집보낸다는 나긋한 말도 있지만 오죽해야 ‘모싸움’이라고 하겠습니까. “모싸움 끝났는가?”, “욕봤네.” 보는 사람마다, 볼 때마다 들에서 나누는 인사는 우리의 동업자 정신입니다. 우리끼리만 했던 일은 아닙니다. 도시에 사는 친지들이나 일 좀 써먹을 만한 친구들은 기특하게도 휴가까지 내고 내려와 일을 거들거나 아니면 전화를 잘 받지 않았습니다. 일을 거들었거나 전화를 잘 받지 않았거나, 봄이 지나가는 동안은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공부하느라 바쁜 학기 중에도 사나흘 내려와 함께 일했던 ‘청년 농활대’들의 땀도 들판에 녹아 있는 것이라 어린 모는 더욱 짙푸른 나락이 되어 갑니다. 일상의 공부와 전쟁 같은 아르바이트와 불꽃같은 연애는 모두 무탈한지 동지의 마음으로 묻습니다.

연인원 3만여명의 대학생이 수십 년째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르지 않고 전국의 농촌을 누비는 현상을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전태일이 외친 ‘단 한 명의 대학생 친구’에 대한 응답일 수도 있겠고, 공부라는 것의 근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졸업하기 전까지 꾸준히 오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면 농촌, 농업이 뭔지 숙연히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끔씩 안부를 묻는 녀석들이 우리 농업 농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또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활은 농촌 봉사활동이 아니라, 나를 찾는 방식으로 나 아닌 것과 나누는 교감, 농민학생연대활동이라고 꼭 부연 설명을 하는 것이겠지요.

젊은 날, 가족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와도, 이처럼 함께 일하고 먹고 자고 일어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흔치 않습니다. 사람을 밑바닥까지 알게 하고 조직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맛보기에 적절합니다. 할 줄 모르는 일 하느라 몸도 고생이고, 일 돌아가는 눈치 보느라 마음도 고생입니다. 벽에 등을 기대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구태는 여전히 남아 농활대 규율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절대 민폐 끼치지 않는다는 상식을 위해 항일 독립군의 전통까지 들먹이다가 가끔씩 쌀과 김치가 떨어져 전전긍긍하기도 일쑤입니다. 지켜질 리가 없는 밤 12시 취침과 반드시 지켜야 하는 6시 기상 사이에서 땀과 모기와 근육의 떨림을 오로지 정신으로만 이겨내며 그래도 잃지 않는 웃음을 볼 땐 뭉클하기도 합니다. 아침부터 비오는 날이나 별 많은 밤에는 미래를 설계하며 친구들과 도란도란 삶을 나누는 낭만도 있는지요.

면서기까지 나와 농활 온 학생들 동태를 파악하던 때에서 봉사활동 점수로 인정까지 해 주는 오랫동안 참 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왔습니다. 속옷 한 벌로 열흘을 버티고 한 번도 씻지 않았다는 더 이상 지저분할 수 없는 자랑과, 밭을 매면서도 잠을 잘 수 있다는 생활의 발견과, 이상한 학생들로 몰려 마을 입구에서 천막을 치고 보낸 열흘과, 마침내 온 마을 사람들이 감동하여 함께 울음과 웃음으로 마을잔치를 벌였다는 전설은 반 이상 허풍일 테고 콧방귀를 뀌고 귓등으로 들어도 그만입니다만, 여름농활 일주일 정도면 기승전결도 있겠고 이야기가 생기게 마련인데, 사실 살다보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통장과 성적표에 찍힌 숫자보다는 이야기의 많고 적음이 아닐까 하는 것을 아직은 나도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농활도 예전 같지 않네하는 소리야 고대 이집트 벽화에도 나왔다는 실없는 걱정.문제가 있다면, 우리 농민들, 우리 마을의 품이 작아졌기 때문입니다. 술이 얼큰해지면 10여년 농사 선배들에게왜 지금 이렇게밖에 못하고 있느냐고 따지지만, 선배 농민들이 지켜온 것만큼의 가치를 우리 세대가 지켜갈 수 있을지를 아프게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젊었을 때의 꿈과 현실의 무게 사이에서 무릎이 꿇리기 시작하고, 세상 오만 것을 다 안다고 참견하는 인생 평론가에 접어드는 때에 청년들의 웃음이 죽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맑은 정신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내일 해도 그만인 일일랑 둘째 치고, 서로 깨우고 일으켜 가며 통장 잔액만 쳐다보는 농사와 성적표만 쳐다보는 공부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 아름다운 집을 짓는 데 벽돌 한 장이라도 함께 올려놓읍시다.

한 번 주고 마는 정처럼 덧없는 것은 없답니다. 봄에 오셔서 힘들었을 테고, 여름방학 동안 해야 할 일들도 많겠지요. 왔다 가고 나면 우리도 괜히 마음이 휑하고 밀린 일도 걱정이라 한나절은 술타령일지도 모르겠고 그리 되면 각시나 동네 양반들에게 잔소리깨나 듣기 딱 좋을 테지만. 부디 공부 열심히 하시고 연애도 열심히 하시고 짬 내어 여름 들판에서 뜨겁게 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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