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이익은 ‘농부권’ 다음”

‘씨앗에 대한 권리를 농민에게’ 토론회 개최
전여농, 종자산업법 개정 논의 포문 열어

  • 입력 2018.07.01 11:26
  • 수정 2018.07.02 09:39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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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문학의집 서울에서 열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창립 29주년 기념 토론회 ‘씨앗의 권리를 농민에게'에서 패널들이 종자산업법 개정과 관련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문학의집 서울에서 열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창립 29주년 기념 토론회 ‘씨앗의 권리를 농민에게'에서 패널들이 종자산업법 개정과 관련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우리 씨를 뿌리고, 거둘 권리.’ 그간 토종종자 보존·전파 사업을 활발히 펼쳐온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김순애, 전여농)이 종자주권 보호를 주요 의제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올해로 창립 29주년을 맞은 전여농은 지난달 27일 서울 남산 문학의집에서 이를 기념하는 후원행사와 함께 ‘씨앗에 대한 권리를 농민에게’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올해 전국을 돌며 농민들의 의견을 들었던 농정개혁위원회의 순회 공청회에서 전여농 각 지역조직들은 지난해 개정된「종자산업법」등 종자 관련 법안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며 개정을 요구해왔다. 이번 토론회는 개정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자리라는 게 전여농의 설명이다.

발제자로 나선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종자를 다루고 있는 우리 법 체계를 소개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종자산업법의 주요 조항들을 예로 들며 “현재 종자산업법은 기본적으로 종자산업의 육성 및 지원이 목적이고 씨앗에 관한 법이 아니다”라며 “모든 내용은 종자 산업을 위해 존재하는, 즉 산업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법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종자산업법은 본래 유럽에서 시작된 ‘식물신품종보호를 위한 협약(UPOV)’에 우리나라가 가입하면서 제정됐다. 식물에 지적재산권을 부여한다는 명목으로 탄생한 UPOV는 종자생산에 대한 권한을 육종사업자에 부여함으로써 이 분야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이 막대한 재산권을 갖는 계기가 됐다.

김 교수는 본래 우리나라가 종자산업법에서 품종보호권을 제한해 농민이 자가채종할 권리를 일부 인정하도록 했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이제는 오히려 농민의 자가채종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11년 농식품부는 종자산업법을 종자산업법·식물신품종보호법 두 개로 나누려는 시도를 하면서 두 개의 법 모두 본격적으로 종자에 관한 모든 권리를 민간에 넘겨줄 것이며 이를 육성하기 위해 적극 지원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고 비판했다.

박미정 전여농 식량주권위원장은 김 교수와 함께 법이 ‘농부권’을 보장해야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종자는 기업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것이며 수많은 세대를 거쳐 수많은 농부들에 의해 조금씩 인간에게 적합하도록 개량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라며 “역사적으로 종자는 판매되기보다 농민들의 손에서 손으로 나누어져 왔으므로 종자에 대한 소유권은 농민에게 있다”고 보다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식물신품종보호법은 농민의 자가채종권을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자가채종이 허용되는 작물에 대한 고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제 우리나라의 법 제도는 종자기업의 독점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닌 자가채종한 토종종자를 이웃과 나누며 보급·확산하고 있는 농민들의 권리, 농부권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 나선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는 “작년에 콩 500평을 파종했는데 올해부터 모종을 한다. 식량종자조차도 모종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 됐는데 그 모종을 이제 육묘업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는 생존권 박탈”이라며 종자산업법 개정을 강조했다. 지난해 개정된 종자산업법은 오로지 정부에 등록된 규모를 갖춘 육묘업자만이 종자생산을 할 수 있도록 명시해놓았다. 변 대표는 “그래서 종자와 관련된 모든 법, 이 모든 법 상위에 있는 농부의 인권법, 바로 종자법을 새로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근진 농림축산식품부 종자생명산업과장은 “종자산업법이 분리된 것은 성격이 다른 두 사안에 관해 명확히 법을 제정하자는 취지”라며 “개정 이전에도 종자산업 분야 수입은 꾸준히 있었고, 우리 종자회사가 개발한 품종을 해외에서 채종해 들여오는 것까지 상당부분 수입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채종에 불리한 우리나라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산업계의 조치”라고 해명했다.

또 자가채종이 허용되는 작물에 대해 고시가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작물의 고시 여부에 따라 규약상 문제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고 있다”며 “국제적인 추세를 따라 결국 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도 농민들의 의견을 들어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육묘허가제에 대해서는 소규모 농가가 시설을 갖추지 않고도 육묘업에 등록할 수 있도록 농업계 의견을 들어 예외조항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전여농은 토론회 뒤 창립 29주년 기념 후원의 밤 행사를 열었다. 농업계뿐만 아니라 민중기반 시민단체와 정의당·민중당·녹색당 등 진보 계열 정당의 주요 인사들이 찾아 농정개혁과 촛불민주주의, 자주통일을 함께 이뤄가자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내년 창립 30주년을 맞는 전여농은 이날 ‘3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발족, 30년사 편찬과 기념행사 등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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