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이뤄낸 위대한 기적

전남 청산도‘구들장논’현장답사

  • 입력 2008.05.25 20:17
  • 기자명 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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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막기 위한 촛불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농민들도 그 촛불을 살려내기 위해 여의도에서 아스팔트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 19일 전여농 회원들과 함께 농성장에 토종씨앗을 나누러 가게 되었다. 토종씨앗을 보신 농민단체 회장들도 종자를 보고는 달라고 손을 내미시니 종자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모습이다. 신이 절로 난다. “소중한 씨앗 잘 키워야 겠네”, “수수, 조 농사가 경관이 좋지”, “무농약으로 해야 된다고? 힘들겠네” 긴장감이 감돌던 농성장이 화기애애해진다. 씨앗을 나누면서 느끼는 충만함... 얼마 전에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전라남도 완도에서 배로 30분 하늘과 땅과 바다가 모두 푸르러 청산이라는 청산도에 다녀왔다. 토종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임인 씨드림(seedream)과 전국귀농운동본부, 흙살림, 불교귀농학교 회원들이 토종과 전통농업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고, 청산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등고선을 따라 개간된 구들장 논에 대한 현장답사를 위해 갔다.

▲ 바닥에 돌을 깔고 흙을 채워 만든 청산도의 구들장 논.
도착하여 우리는 제일 먼저 청산면사무소에 들러 조선시대 서유구 선생의 임원경제를 번역한 정명헌 팀장으로부터 임원경제지에 나타난 조선시대 전통농업에 대한 발제를 들었다. 김석기 흙살림 전통농업위원은 다카하시 노보루가 조선팔도를 돌면서 조선시대 농업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코스를 되밟아가며 전통농업 연구를 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한 발제가 이어졌다. 이어서 문헌과 실제 농촌지역에 남아 있는 전통농법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전통지식에 기반한 전통농법을 복원하여 귀농민들에게 보급하는 안철환 귀농본부 홍보출판위원장으로부터 들었다.

관행농업과 세계 먹거리 체계에 대한 대안으로 혹자는 세종대왕농법, 전통농업, 태평농업이니 하며 다양한 농법을 제안하며 어려운 농업현실을 극복해 나가려고 하고 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참석자들은 워크숍을 통해 모두 공히 전통지식에 기반한 환경보전형 농업만이 우리 농업을 회생시켜 나갈 수 있다는 대안임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청산면 상서리 이장님의 협조로 마을회관 숙소에서 청산면의 토종씨앗과 전국 각지에서 가져온 토종씨앗을 나누는 행사를 진행하였다. 뒤웅박 팔자라는 말을 만들어낸 뒤웅박, 향이 좋고 가뭄에 강하다는 밭 찰벼, 목화, 할머니의 시어머니 대부터 심었다는 조, 수수 등의 이력도 함께 듣는 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청산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마을 탐험을 시작했다. 아시아 최초로 슬로우시티(slow city)로 지정된 마을답게 아담한 집들을 끼고 도는 돌담길은 가슴속에 남는 풍경을 우리에게 전했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섬사람들은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주고자 했다. 안완식 한국토종연구회 고문과 함께 들어간 농가에서는 새벽일을 마치고 돌아온 한 여성농민이 오랫동안 대를 이어 심었던 검정 강낭콩, 홍화씨 등 보유하고 있는 토종종자를 내어 주었다. 토종씨앗을 지키는 일에 함께 할 수 있다면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귀한 송화주, 잇꽃주 등 직접 담근 전통주도 함께 건넸다. 또 방문한 한 농가에서는 300년이 넘게 물려 내려온 나무함지박, 본인이 농사지을 때 사용하던 농기구 하나하나를 수백 년 동안 보관하고 있다며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 곳에서 우리는 잠시 동안이지만 느리게 살며 전통적인 삶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보았다.

아름다운 청산도에서 보고 느끼는 것 중에서 가장 가슴 벅찬 감동은 구들장 논이다. 물이 많지 않고 돌이 많다보니까 등고선을 따라 논을 뜨면서 바닥에 돌을 채우고 20cm가량 흙을 채운 모양이다. 구들장 논은 폭우가 쏟아져서 흙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퇴수와 물꼬를 논바닥을 통해 내려 보내는 지혜로움을 발휘한 청산도 농민의 수 천년을 이어 온 노고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이 논이야말로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유지하고자 했던 농민들의 위대함이 만들어 낸 귀중한 역사적 자원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숙여졌다.

 〈한영미 전여농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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