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농민의 한탄

  • 입력 2018.04.08 18:43
  • 수정 2018.04.08 18:44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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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적채(붉은 양배추)의 꽃이 노랗게 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시선을 끄는 노란꽃 사이에서 한 여성농민이 허리를 숙인 채 적채를 수확하고 있었다. 지난 2일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의 한 들녘에서였다.

여성농민은 꽃이 필 때까지 적채를 놔둬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진즉에 끝났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생산비에도 터무니없이 모자란 경매가에 수확을 미루다 지금까지 왔다고 하소연했다.

최근에 휴대전화로 알려온 경매가는 적채 16kg 한 상자에 4,000원이었다. 만원을 받아도 각종 수수료를 제하면 5,000원이 남을까말까 한 상황에 4,000원이라니,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녀 또한 이럴 바에 일이라도 덜자는 마음에 밭 일부를 갈아엎었다. 그러나 전부를 갈아엎진 못했다. 종자값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란꽃이 아름다운 밭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그녀는 올해 초부터 농사가 죽을 맛이라고 했다. 올해 초 제주지역을 강타한 기상이변에 애써 키운 월동무는 모조리 갈아엎었다. 쓸 만한 상품이 없었다. 월동작물의 메카답게 브로콜리를 재배해 서울로 올려 보냈더니 수입산 브로콜리보다 가격이 낮았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는 말을 되풀이했다.

게다가 이달 들어 양파수확기에 접어들었으나 양파 또한 농협에서 산지폐기 물량을 신청 받고 있다며 양파마저 갈아엎을 신세가 됐다고 한탄했다. 그녀는 양파가 안정이 돼야 농민들이 다른 작물, 콜라비나 양배추 등으로 쏠리지 않을 텐데 라며 우려했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는 “이게 다 우리 밭도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부분이 외지인 소유라고 귀띔했다. 농사가 잘되건 망했건 간에 임대료는 꼬박꼬박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농사지은 지 20년이 넘었건만 이 같은 상황에 맞닥뜨릴 때면 농사짓고 싶지 않아 육지로 시집갔던 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허나, 남편 따라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시작한 일이 농사였다. 고정수입도 없이 농산물 가격 등락에 따라 롤러코스터 타듯 매번 힘겨웠던 삶으로 인해 자식들에겐 농사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아직까지) 그렇게 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녕 오죽하면 그러겠냐며 반문하듯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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