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47] 기계치(機械癡)

  • 입력 2018.04.06 09:59
  • 수정 2018.04.06 10:02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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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올해 첫 방제를 위해 자닮유황과 자닮오일을 1대 2로 섞어 100리터의 살포액을 만들었다. 아직 꽃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적게 100리터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겨울 내내 모셔두었던 동력분무기를 작동해 보니 모터에서 방제액이 새어 나와 분수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시간이 조금 지나니 더 세게 새어나오기까지 했다. 도저히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몇 번 끄다 켜다를 반복하면서 여러 번 시도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기계를 아무리 살펴봐도 멀쩡한 것 같았다. 앞으로 3~4일은 비 소식이 없어 오늘 방제해야 하는데…. 방제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일단 작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분무기 제조회사에 문의했다. 담당자는 양양, 속초, 강릉 등 영동지방엔 서비스센터가 없으니 문제가 있는 부품을 뜯어서 택배로 보내라고 설명했다. 아니 고장이 나면 회사가 어떻게든 기사를 현장에 보내 고쳐줄 생각은 하지 않고 저희들은 가만히 앉아 보내오는 기계만 앉아서 수리하겠다니 도시에서 살다온 나는 이해하기 어려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이 회사는 연간 수백 대의 동력분무기를 정부보조사업으로 농민들에게 판매하는 회사다. 판매한 지 1년도 안 된 제품임에도 이 정도 서비스도 안 해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영동지방에는 서비스센터마저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도 의아했다. 그 정도 회사면 정부보조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 옳고 정부는 이런 업자를 선정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웃 농민들에게 이야기하니 작은 농기계의 경우는 그런 식으로 택배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튼 다른 수리 방법이 없어 모터를 분리해 회사로 보내야 하는데 아직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고 방제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나는 농기계에 익숙하거나 만지는 것을 즐기는 유형이 아니라 어떤 기계든 별로 관심도 없고 소양이 없는 인간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농사일은 대부분 크든 작든 기계작업으로 이뤄진다. 동력분무기, 관리기, 예초기 등 소형 농기계뿐만 아니라 경운기, 이앙기, 트랙터, 콤바인 등 중대형 농기계 등을 이용한다. 그러니 웬만한 작은 고장은 직접 고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 기계만 보면 겁이 나고 걱정이 앞선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계치(機械癡)’임에 틀림없다. 국어사전에서는 기계치를 ‘기계에 익숙하지 않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에게 꼭 맞는 말인 것 같다.

기계를 잘 사용할 줄 모르니 몸이 고달프고 농작업 시간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농촌살이라는 것이 만날 일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니 오늘은 바닷가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해야겠다. 단비도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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